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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군SNS서포터즈 - 환희산과 송강 정철의 정송강사

  • 웹출고시간2019.09.15 14:14:25
  • 최종수정2019.09.15 14:14:59
진천 문백면에 위치한 환희산을 알게 된 것은 봄에 송강 정철의 위패를 봉안해 놓은 정송강사를 방문했을 때 묘소가 있는 곳이라는 정도였다. 이후 건강을 위해 등산을 다니다 보니 진천에도 산이 꽤 많은 것을 알았다. 그중 봄에 가보지 못한 정철의 묘소도 가보기 위해 환희산을 찾았다.

환희산은 402m 높이의 산으로 기쁨을 안겨주는 산이라는 뜻이 담겨있다고 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정철의 묘소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들어가는 입구에 사람들의 왕래가 없는지 종아리까지 풀이 자라있고, 약 10분 정도 오르막을 오르니 양지바른 곳에 정철의 묘소가 보인다.
충청북도 기념물 제106호인 이 묘소는 정철선생과 부인 문화 류씨를 합장한 곳이라는 설명이 있다. 그리고 아래에는 둘째 아들의 묘가 있다. 원래 경기도 고양시 원당읍 신원동에 있었는데, 현종 6년(1665)에 손자 양(瀁)이 송시열과 상의해 지금의 자리로 이장했다고 한다.

그런데 산을 어디로 올라가는지 표시가 없어 검색한 지도를 살피며 갔다. 묘의 둘레길로 조심스레 오르니 산을 오른 흔적들이 보인다. 사람들이 자주 밟아 생긴 길을 보아하니 마을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길인 듯 하다.

높지 않은 산이라고 만만하게 볼 산은 없다. 산이 높지 않으면 가파르다는 것은 그동안 등산을 다니며 몸소 익힌 것이다. 사람들이 그리 많이 다니지는 않는지 길도 좁고 정비가 돼있지 않아 걷기가 조심스러웠다.

푸른 나무들만 보이는 산은 조금은 지루할 수 있지만 간간이 보이는 그 산만의 모습도 분명 있다. 진천 환희산은 유독 버섯들이 눈에 많이 띄었는데 일반적으로 우리가 볼 수 없었던 색깔로 자라있는 버섯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가파른 길과 가끔 나오는 평평한 길을 걷다 보니 정철 묘소에서 약 30분 정도 걸려 환희산 정상에 도달했다. 정상 표지석은 언제 봐도 반가운데 특히 환희산은 길이 잘 나있지 않고 초행길이었기에 조금 긴장을 해서인지 더 반가웠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어디로 내려가야 하나 둘러보니 올라온 길을 포함해 세 갈래의 길이 나있다. 등산을 가면 산악회에서 나무에 걸어놓은 표식을 볼 수 있는데 세 군데 모두 많은 표식들이 있어 조금 헷갈렸다. 별다른 표시가 돼있지 않아 확실히 사람의 왕래가 뜸한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망설이다 표지석 뒤쪽으로 내려갔는데 10분쯤 내려가다 길이 끊어져 다시 정상으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길로 내려가려니 아니면 또 올라와야 하나 싶어 시도 하기 겁이 났다. 분명 물탱크 있는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고 했는데 저쪽 길일까 의심 하게 됐다. 할 수 없이 올라왔던 길로 다시 내려가기로 했다. 다음엔 물탱크 있는 쪽으로 올라와 정상을 찍고 오늘 올라왔던 길로 내려가볼 것이다. 오르는 길이 오르막이니 당연히 내려가는 길은 미끄러워 게처럼 옆으로 내려와야 했다.
초행길에 조금 헤매기도 하고 힘들었지만 산 정상을 밟은 성취감은 말할 수 없이 좋다. 정상에서 내려오면 몸은 힘들지만 마음만은 상쾌하다. 같이 간 지인이 정송강사를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고 해서 점심을 먹으러 가기 전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정송강사 입구에 느티나무 보호수와 무궁화가 잘 어우러져 피었다.

홍살문을 지나 약 5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정송강사 입구가 나오고, 계단을 오르면 재실과 송강 정철선생 시비가 나온다.
다시 계단을 오르면 문청문을 지나 정송강사중건사적비와 유물전시관이 나온다. 봄에는 문이 닫혀 있어 보지 못했는데 이번엔 열려 있어 정철이 남긴 유물도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정철은 조선시대 천재 시인으로 불리는 만큼 그가 남긴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성산별곡 등은 무척 유명해 학창시절 배웠던 기억도 난다.
그리고 술을 무척 좋아했던 정철에게 절주하라는 뜻으로 선조가 하사한 은배와 옥배의 복제품이 같이 전시돼있다. 정치인이었던 정철은 임금 앞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을 정도로 강직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지만 왕은 그의 청렴함과 한결같은 강직함을 좋아했던 듯하다.

충의문을 지나면 정철을 모신 사당 송강사다. 잠시 묵념을 하고 방명록까지 쓰고 안을 둘러보니 정철이 남긴 글귀가 병풍에 적혀있다. 하나하나 읽고 나서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새삼 달라 보인다. 한없이 청명하고 깨끗한 하늘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라를 근심했던 정철을 위로해 주는 듯하다.

/ 진천군SNS서포터즈 황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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