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몇 해 전 정부가 동물의 잔인한 도축을 처벌하고 개고기 취급업소에 대한 위생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구육(狗肉)의 식용에 대한 찬반논란이 뜨거웠다. 최근 어느 포털사이트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개고기 식용금지가 74%로 나타났고 합법화하자는 주장은 22% 라고 밝혔다.

이런 국민의 정서와는 달리 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식용을 위해 개를 팔고 사는 경우가 많다. 이는 흔히 말하는 ‘보신탕’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도살장으로 실려 가는 개의 슬픈 눈을 보고도 천연덕스럽게 그의 살점을 먹을 수 있을까?

불교에서는 무엇보다 개고기의 식용에 반대하고 있다. 보신탕을 금기하고 있는 것은 살생의 구조를 부추기는 배경이 되는 탓도 있지만, 개와 인간과의 연기적 관계 때문이라는 논리가 더 설득력이 있다. 개와 인간과의 역사를 생각하면 개고기를 먹는 일은 또 다른 인과의 윤회다. 그래서 개와 인간의 관계는 사랑을 나누는 공존의 인연이라고 봐야 옳은 것이다.

개를 잡는 광경을 본 사람이 있다면, 그 장면을 상상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가장 비참하고 잔인하게 죽이는 것이 개의 도살 현장이다. 아마도 인간이 먹기 위해서 살생하는 동물 중에서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죽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인간의 손에 의해서 죽을 때의 그 눈을 보라. 원한과 배신의 핏발로 가득 차 있으며, 그 원망은 살점마다 스며든다. 정말 무섭지 않은가. 우리는 그런 살점을 먹으며 보양식이라고 말하지만 과연 건강을 담보해 줄 것인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개는 조상의 환생이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즉, 조상이 죽어서 집안에 개로 태어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그래서 개는 인간과 가장 닮은 행동을 하면서 친근감을 표시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전생의 가까웠던 인연이 개로 환생하여 가족 곁으로 올 수 있는 것이므로 그저 단순한 관계는 아니다. 이렇게 따진다면 개고기를 먹는 것은 조상들에게 불효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옛 어른들은 개는 인간과 비슷해서 오륜(五倫)이 있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 개한테도 다섯 가지의 배울 점이 있다고 가르쳤던 것이다.

첫째는 불개부모(不改父母)이다. 개는 부모가 준 털의 색깔을 바꾸지 않는다. 백구(白狗)로 태어났으면 죽는 날까지 털의 색깔은 유지된다. 그만큼 가문과 혈통을 중요하게 여긴다.

둘째는 불폐기주(不吠其主)이다. 개는 절대 자신의 주인을 물거나 배반하지 않는다. 이 말은 주인에 대한 충성과 복종이 절대적이라는 뜻이다. 고양이는 때때로 주인을 할퀴지만 개는 주인을 업신여기거나 가볍게 보지 않는다.

셋째는 행음유시(行陰有時)인데 음양의 이치를 가릴 줄 안다는 말이다. 개는 일 년에 두 번 정도 발정을 하므로 종족번식이 교미의 목적일 뿐 인간들처럼 즐기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넷째는 적소성대(積小成大)이다. 개는 엄격한 서열이 정해지며 그 순서에 따라 질서가 이루어진다. 그래서 작은 놈은 큰 놈이 나타나면 꼬리를 내리고 자리를 피해준다. 이를테면 견공(犬公)들의 공존 원칙이다.

다섯째는 일폐군응(一吠群應)으로써 한 놈이 짖기 시작하면 온 동네 개가 다 짖는다는 의미다. 개는 자기 영역을 철저히 지킨다. 그렇기 때문에 밤손님이 찾아오면 동네 개들이 합심하여 마을을 지킨다. 이처럼 서로 협동심을 발휘하여 상부상조하는 개의 생리다.

이상은 개의 특성을 나타낸 말이기도 하지만 우리들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교훈이기도 하다. 개는 인간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동물이다. 그만큼 인간과 교감하며 정을 나눌 줄 아는 지혜로운 중생인 것이다. 정말로, 식용을 위해 개를 키우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