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국립해상공원이라는 명성에 자부심을 갖고 살던 이 지역 주민들은 더 이상 미래는 없다며 좌절에 빠졌으나 전국민들이 연일 동참하는 자원봉사에 힘입어 겨우 희망을 갖게 됐다.
검은 기름을 뒤집어 쓴 충남 태안군 소원면 만리포해수욕장을 찾아 이 지역 주민들의 힘겨운 연말보내기와 새해소망을 들어본다.
![](https://www.inews365.com/data/photos/200712/pp_20817_1_1199028513.jpg)
29일 찾은 만리포 해변. 전국에서 밀려든 자원봉사자들의 물결로 기름띠 등이 많이 제거된 가운데 주민들은 좌절을 딛고 새해에 새로운 희망을 걷고 있었다.
ⓒ 김규철1958년 반야월 작사, 김교성 작곡의 ‘만리포 사랑노래’의 가사이다.
가수 박경원이 불러 세상에 알려진 이 노래는 서해안의 대표적 해수욕장인 만리포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널리 알렸다.
그러나 기자가 찾은 만리포해수욕장은 이 노래의 가사처럼 은모래도 초록바다도 아니었다. 은비늘로 표현되는 바다는 과거에 묻히고 무지개빛의 기름띠가 바다와 모래를 덮고 있었다.
이제 백사장이라는 단어는 최소한 이곳에서는 당분간 듣기 어려워질 것 같다. 기름으로 인해 흑사장이나 유사장(油沙場)이라는 표현이 차라리 적합할 것 같다.
주민들은 지난 7일 자신들의 눈앞에서 벌어진 유조선 충돌사고를 결코 잊을 수 없다.
그때만 해도 주민들은 이처럼 큰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입을 모은다.
유조선과 예인선이 충돌하고 뒤이어 원유가 파도 대신 밀려오는 광경을 보면서 주민들은 대재앙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을 가졌다고 한다.
이후 코를 지르는 원유냄새가 머리속까지 지끈 거리게 할 정도로 자극을 주면서 며칠동안 약을 먹어야만 견딜 수 있었고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말에 심각성을 느끼게 했다.
건설업과 식당임대업을 함께 해온 김봉연(65)씨는 “처음에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했는데 해변에 나와보니 길게는 100m에서부터 짧게는 30여m 폭의 기름띠가 밀려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이제 태안은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주민들이 모두 나서서 통, 양동이, 삽 등을 들고 방제작업에 나섰지만 도구가 부족해 철수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씨는 “해경이나 해수부, 소방방재청 모두 기름이 언제 도달할지도 모르고 있었다”며 “막대한 돈을 들여 연습은 왜 하느냐, 이는 세금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정부를 비난했다.
식당과 민박으로 생계를 이어온 최복환(65)씨도 “그동안 식당운영과 민박임대 등을 통해 대학교에 다니는 자식도 가르치고 나름대로 여유있게 생활해왔는데 이번 사고로 인해 단골손님이 모두 끊기게 돼 노후대책이 막막해졌다”고 말하고 “방제작업이 마무리돼도 2~30년간은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손님이 다시 온다는 보장을 할 수 없다”며 연신 담배만 피웠다.
바닷가에서 2개의 모텔을 운영하고 있는 조항식(48) 씨는 “해마다 연말연시가 되면 하루에 3만5천~4만명이 만리포해수욕장을 찾아 예약률이 80%를 넘고 주말이면 방이 꽉 찼으나 모두 취소됐다”며 “우리를 돕기 위해 만리포를 찾은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10개의 방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 나름대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택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만리포 주민들은 모두 불만과 근심에 싸여있지만 반면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 표현한다.
이들은 “태안군 소원면에만 만리포해수욕장 등 10개의 해수욕장이 있는데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의 자원봉사자들이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 고맙다는 말 밖에 할 수 없다”며 “2만여명의 소원면 주민들은 모두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8일에도 만리포에는 수천명에 이르는 자원봉사자들이 해변 백사장에서 바닷바람과 씨름을 하면서 나름대로 기발한 아이디어를 이용해 기름을 제거하는 작업을 벌였는데 오일펜스에 짚을 깔아 기름을 빨아들이게 하는 사람, 모래사장을 파 물이 고이게 한 뒤 양동이에 천을 깔고 기름과 물을 분리하는 사람 등 다양한 방법들이 선보였다.
서울 방배동에서 부인과 함께 이곳을 찾은 배흥환(56·서울 서초동 한사랑 비전교회 담임목사)씨는 “막막한 줄만 알았는데 이정도 회복된 것만 보더라도 희망을 느끼게 된다”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꿈을 잃지 말아달라”고 주민들에게 부탁했다.
태안 / 김규철기자 qc2580@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