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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 - 오송역의 설맞이

한때 완행열차 머무는 시골 간이역
지난해 11월 초현대식 시설로 개통
이용객들 "귀성길 행복" 환한 웃음

  • 웹출고시간2011.01.31 19:51:16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간이역(驛).

이 말만 들으면 마음의 시계는 과거로 돌아간다.

낭만과 그리움이 교차하면서 추억의 갈피속에 저장해 두었던 옛일이 마치 빛바랜 흑백필름처럼 오롯이 살아난다.

그곳엔 여유와 느림의 미학이 있었다.

그래서 간이역은 인생의 쉼터처럼 느껴지고 때론 어머니의 품처럼 자애로웠다.

오송역도 한때는 그런 간이역이었다.

충북선 완행열차가 조치원을 출발해 처음으로 머무는 조그만 시골 간이역이었다.

사람들은 이 곳을 통해 청주와 조치원을 오가며 고단한 삶을 살아왔다.

조치원 장터를 다녀온 아낙들의 손에는 주전부리가 쥐어져 있었고, 그것은 가난을 앞섶에 주렁주렁 달고 다니던 까까머리 아이들에게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었다.

토요일 오후에는 청주로 유학나간 학생들의 물결이 오송역을 가득 메웠다.

물들인 검은색 교복과 모자를 입은 남학생, 멋진 세라복을 입고 허리를 곧추 세우며 걷는 여학생.

그들은 작게는 한 집안의 희망이었고, 동네사람들에게는 부러움과 자랑의 대상이었다.

이처럼 숱한 사연과 추억을 간직한 오송역이 세월의 징검다리를 건너 천지개벽을 했다.

고향가는 길은 언제나 설레고 정겹다. 설 명절이 사흘 앞으로 다가온 31일 청원군 오송역 플렛폼에서 귀성객들이 승무원의 안내를 받으며 열차에 오르고 있다.

ⓒ 김태훈기자
지난해 11월 KTX 오송역이 개통되면서 옛 오송역은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경부고속철과 호남고속철의 분기역이란 막중한 역할 때문인지 새로 생긴 오송역의 위용은 한마디로 '원더풀'이었다.

어림잡아도 청주공항보다 훨씬 크고 시설도 초현대식이다. 날아갈듯한 지붕은 금방이라도 하늘로 오를 듯한 학을 연상케 했다. 동행한 사람은 인천공항에 온 것같은 착각이 들 정도라고 했다. 2층으로 올라가자 티켓을 판매하는 창구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시간대별로 오송역에 정차하는 KTX 시간표가 전광판에 가지런히 나타났다. 티켓 창구 한편에는 상가지역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을씨년스럽다. 달랑 하나만 운영중인 매점이 덩치 큰 오송역에는 걸맞지 않았다. 지난해말부터 창궐한 구제역 때문에 승강장으로 이어지는 출입구는 방역매트를 밟고 들어가야 한다. 드디어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올라 다다른 승강장. 엄청난 KTX 길이 탓인지 일반 역의 승강장과 비교도 안될 정도로 규모가 어머어마하다. 순간 휙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물체가 빠르게 반대편 승강장을 지나친다. 부산발 서울행 KTX라고 한다. 요즘말로 '한방에 훅갔다'는 말이 연상될 정도로 빠른 속도에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곧이어 서울발 부산행 KTX가 승강장으로 서서히 들어섰다. 미끈한 KTX는 마치 잘생긴 메기(?)같았다. 이윽고 KTX가 정차하자 한무더기의 승객들을 토해냈다. 설이 불과 1주일 앞으로 다가온 탓인지 개중에는 선물꾸러미를 들고 있는 승객도 보였다. 어렵사리 그 승객에게 쫓아가 몇마디 말을 건넸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KTX을 이용하시니까 어떻습니까" 순간 당황한 승객은 머뭇거리다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빠르고 편리하네요. 앞으론 고향길이 행복할 것 같습니다. 세상 너무 좋아졌습니다"

이번엔 걸음을 재촉하는 대학생이나 사회 초년생쯤으로 보이는 20대 청년을 불러 세웠다. 오송역을 어떻게 이용하게 됐느냐고 묻자 "오송역이 개통됐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이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고속버스나 무궁화호 등을 이용할때 보다 시간이 절반으로 준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졸업을 앞둔 대학 4학년인데 부모님께 취직했다는 소식을 알려드리기 위해 미리 귀성했다"며 "올 설은 어느해보다 즐겁고 보람찬 설이 될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승객을 내려 놓고 KTX가 떠난 자리에는 다시 적막감이 찾아왔다. 하지만 희망의 여운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며칠뒤면 설이다. 희망의 여운이 오송역을 통해 오가는 모든 이들에게 깃들길 바라는 마음은 지나친 욕심일까. 또다시 멀리서 기적이 운다.

/김정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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