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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02.22 16:10:33
  • 최종수정2023.02.22 16:10:33

김은정

세명대 교양대학 부교수

바쁜 일정 한가운데 있을 때면 퇴근 후 여유로운 저녁식사 한 끼를 기대하며 마음을 달랜다. 특히 몸과 마음이 지친 날은 집에서 소박하게 끓인 맑은 된장국 생각이 간절하다. 얘기를 듣던 친구가 "그게 너의 소울 푸드인가보다"한다. '소울 푸드(soul food)'. 우리나라에서는 음식 장르를 지정하지 않고, 마음을 달래주는 음식이나 혹은 추억이 있는 음식을 폭넓게 '소울 푸드'라고 부르지만, 원래 '소울 푸드'라는 명칭은 미국 남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전통 음식을 뜻하는 말이다. 맥앤치즈, 콘브레드, 버팔로윙 등이 대표적 메뉴다.

미국 흑인 음식문화의 발자취를 되짚은 다큐멘터리 <하이 온 더 호그(High On the Hog)>에서 요리 역사학자 트위티는 흑인 전통 음식이 '소울 푸드'라 불리는 이유를 그들의 미국 정착사와 연결하여 설명한다. 과거 흑인들이 서아프리카에서부터 미국 땅으로 이주한 이후로 노예로 살아가야 했던 일상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참담함으로 얼룩진 나날 중에도 고향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스스로를 대접하고, 서로를 위로했다. 그들은 먼 옛날 조상과 현재의 그들,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들까지 모두의 정신(soul)이 음식을 통해 연결된다고 믿는다고 한다. 음식은 그들에게 단순한 물질적 개념을 넘어, 과거와 미래를 관통하며 영혼의 뿌리를 이어주는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받아들여진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는"당신이 먹은 음식으로 뭘 하는가를 가르쳐 주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줄 수 있어요"라고 한다. 누군가는 음식을 먹고 몸을 살찌우는 데에만 쓰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음식을 먹고 좋은 유머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음식이 사람과 만나 그 사람의 삶이 되고, 정신이 되고, 그리하여 결국 본질을 이룬다는 조르바의 이야기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전통 음식을 '소울 푸드'로 부르는 맥락과 맞닿아 있다. 마찬가지로 각자의 사연으로 마음을 위로하는 음식을 '소울 푸드'로 부르는 우리나라식 사용법도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그러고 보니 '소울 푸드'가 인연을 이어주는 중요한 매개체로 활용된 최근 드라마가 떠오른다. 잘나가는 학원강사로 높은 연봉을 받는 능력자이지만, 엄청난 스트레스 탓에 밥 한 끼를 제대로 삼키지 못하고 죄다 게워내는 남자가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어느 반찬가게의 도시락을 먹게 된다. 그 도시락은 잘 삼켜진다. 맛있다. 그리고 어려웠던 시절 은인이 베풀어준 추억의 맛을 떠올리게 한다. 남자는 그 맛이 자꾸 생각나 반찬가게를 찾아가고, 결국 도시락을 만들어주는 사장님과 사랑에 빠진다. tvN 드라마 <일타스캔들> 이야기다.

여러 상황이나 조건으로 보아 현실적으로 쉽게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두 인물의 마음을 강하게 잡아 이끄는 중요한 요소가 음식이라는 설정은 다소 개연성이 약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부자라 하더라도 따뜻한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한다면 그 삶이 얼마나 팍팍하고 황폐할지 충분히 짐작하기에, 마음을 달래는 식사를 제공해주는 '유일한' 사람에게 마음이 끌린다는 설정이 개인적으로는 억지스럽지 않게 느껴진다.

몇몇 지인이 모인 자리에서 각자의 소울 푸드에 대해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각기 종류는 다양했지만 비싼 고급요리는 우리 대화에 등장하지 않았다. 대신 가슴 따뜻해지는 사연들이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에서 그 흔한 김밥이나 떡볶이가, 혹은 크림스프가 누군가의 삶에 그렇게 커다란 의미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것이 '소울 푸드'다. 당신에게도 '소울 푸드'가 있는가?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다면 마음이 헛헛할 때 찾아 먹을 수 있도록 마음을 달래줄 음식을 하나쯤 미리 생각해두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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