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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인문학 - 비루한 권력의 페르소나 '타르'

  • 웹출고시간2023.05.15 16:53:07
  • 최종수정2023.05.15 16:53:07

안소현

사) 여성문화예술기획 충북지부장

"다음 평론에 꼭 '타르'에 관해 써 주세요."

예술 비평을 하는 지인의 추천으로 2022년 토드 필드가 제작한 이 영화를 보았다.

케이트 블란쳇은 내가 가장 신임하는 연기인이다.

여성으로서도 매력적이지만, 가끔 남성성을 겸비한 묵직한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그녀의 연기는 가볍지 않다. 영화를 정해 놓고 글을 쓰다 보니 참 난감했다.

속 시원한 시나리오나 그럴듯하게 완벽한 오케스트라 연주를 감상하기 힘들었다.

이 영화 안에는 케이트 블란쳇, 그녀 자신만이 존재했다.

권력을 유지하려는 파렴치한 군상과 부끄러움을 모르는 파멸한 권력자의 병적인 페르소나의 절정을 보여준다.

예술작품이 인간의 아름다움과 선함만을 추구하지 않고 비굴함과 추악함을 표현해야 함 또한 권리이자 의무라고 생각하며, 이 영화에 대한 느낌을 스케치해 보겠다.
◇영화 '타르'는 여성주의 영화인가

이 영화는 베를린 필하모닉 최초의 여성 수석 지휘자, 리디아 타르(케이트 블란쳇)가 주인공이다. 관객들이 여성의 권리 신장이라는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이 영화를 본다면 완전히 어긋난 시나리오 전개에 당황할 것이다. '타르'는 권력과 욕망, 서서히 몰락해 가는 권력의 끝에서도 시니컬한 미소를 짓는 추한 인간의 군상을 보여준다. 리디아 타르는 여성이 아니라 그저 수석 지휘자이며 한 아이의 아버지(레즈비언)이며 욕망 앞에 눈이 먼 인간의 내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불편한 영화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다.

◇적극적이지 않아서 완벽한 연출

지금까지 베를린 필하모닉의 여성 수석 지휘자는 없었다. 성공한 여성, 최초의 여성 지휘자라는 편견보다는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한 자의 내면을 집요하게 파헤치는 심리극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의 오프닝 장면이 굉장히 길다. 실제 작가인 애덤 고프닉과 리디아 타르의 '뉴요커' 인터뷰 장면으로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수석 지휘자인지 격조 있고 차분한 어조로 긴 대사를 읊고 있다. 이 장면은 대부분의 관객들이 지루해했던 장면이다. 이러한 지루한 장면은 관객들로 하여금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권력자의 긴 대사를 참고 들어야 하는 부하직원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적극적이지 않은 연출이기에 케이트 블란쳇의 중저음 목소리의 위력이 진가를 발휘한다. 그녀의 여유로움은 욕심이 없고 깊이 있는 예술가의 초상인 듯 내면의 욕망을 절대 드러내지 않는다.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 5번

'타르'는 말러 교향곡 5번 실황 녹음을 준비하고 있는, 베를린 필하모닉 최초의 여성 수석 지휘자 리디아 타르에 관한 영화다. 베를린 필하모닉과 8개의 말러 교향곡 실황 녹음을 진행한 타르가 교향곡 5번만 녹음하면 단일한 교향악단과 말러 교향곡 9개를 모두 실황 녹음한 유일무이한 마에스트로가 된다. 이는 타르가 멘토라 지칭하는 말러의 권위자, 레너드 번스타인도 이루지 못한 성과다. 말러가 겨우 건강을 회복한 1901년에 교향곡 5번 작곡을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교향곡 5번 1악장은 '신중한 속도로, 엄격하게, 장례 행렬처럼'이라는 연주 지시에 따라 장송곡 리듬을 기반으로 비장하고 장중하게 연주되는데 이는 말러가 겪은 투병 과정의 고통이 반영된 결과라는 설이 있다. 타르는 건강을 회복한 구스타프 말러가 알마 쉰들러에게 보낸 연서인 4악장 아다지에토(첫째 딸의 죽음, 말러의 알마에 대한 구속으로 시작된 아내의 외도로 불안정한 상황, 지휘의 강행군으로 숨을 거둠)의 비극적인 여운을 젊은 사랑으로 태어났다고 공언한다. 자신에게 다가올 사랑을 합리화시키는 듯하다. 그러나 영화에서 말러의 곡이 한 번도 제대로 연주되지 않았다. 주인공 타르의 복잡한 상황과 강박관념을 표현하는 도구로 이 교향곡을 이용했을 뿐.

◇욕망에 얽힌 계약적인 인간관계

여성 최초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 타르는 레즈비언이다. 마에스트라 타르를 중심으로 4명의 여성이 있다. 연인인 제1 바이올린 주자 샤론(니나 호스)은 내부 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타르가 처음 베를린 필하모닉으로 오면서 타르 자신의 권력을 잡기 위해서 꼭 필요한 존재였고, 샤론 역시 자신의 자리를 고수하기 위해서 수석 지휘자의 권력이 필요했다. 그들은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는 정식 부부이며 공생관계이다. 과거의 연인이었을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조수 프란체스카(노에미 메를랑)와 타르의 방해로 지휘자로서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리디아 타르를 파멸로 이끌었던 크리스티아. 그리고 새로운 인물, 러시아 출신의 첼리스트 올가(소피 카우어)로 향한 갈피 잡기 힘든 욕망으로 올가가 차에 내린 인형을 주기 위해 음침한 건물로 찾아가지만 거대한 개에 습격을 당하고 계단에서 넘어져 얼굴이 엉망이 된다. 이 장면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 이들의 인간관계는 순수함보다는 계약적이며 주도면밀한 공생관계다.

예술가들에게 '뮤즈'는 창조를 빙자한 부도덕과 욕망의 배출구 같다.

'올가'의 구두 소리만 들어도 '타르'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돌아갈 길은 여전히 남아있다.

과거에 저지른 잘못된 행동, 비겁한 선택과 어리석은 판단으로 실망과 불신으로 모든 것을 다 잃었지만, 음악으로 돌아갈 길은 남아있다는 깨달음은 타르는 필리핀으로 떠난다. '숫자 5'에 대한 강박에 속이 뒤집히지만, '지옥의 묵시록' 촬영을 위해 말론 브란도와 함께 필리핀에 왔던 악어가 살아남아서 그 강에 정착했다는 사실은 타르의 삶을 예견하는 일종의 복선처럼 느껴진다.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던 악어처럼 낯선 땅으로 들어간 타르도 안정을 찾게 될 것이라는 암시와 같다. 타르의 지휘로 연주가 시작되는 결말에서는 그가 받아들인 삶의 처지가 비루하지만, 담담하게 자신의 지휘에 집중하는 타르의 얼굴을 통해 숭고함이 느껴진다. 비극적인 결말을 가진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을 '새로운 젊은 사랑의 시작'으로 표현한 '리디아 타르'의 해석이 생각나는 장면이다. 결국 남아있는 것을 통해 다시 일어나는 법이다.

영화 '타르'를 보면서

지나친 권력과 욕망으로 저지른 악행에도 절대로 사과하거나 반성하지 않고

부끄러움도 없이 비루하게 자리 잡은 군상들이 떠오른다.

"교향곡은 세상과 같다"고 말한 말러의 말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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