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영화로 보는 인문학 - '문신을 한 신부님'

짜릿하고, 도발적인 종교 영화

  • 웹출고시간2023.04.10 17:13:48
  • 최종수정2023.04.10 17:13:48

안소현

사) 여성문화예술기획 충북지부장

어린 시절 우리 집 앞에 성당이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신앙이 불교라서 내가 성당에 가는 날은 크리스마스이브 정도였다. 그래도 성당 마당은 우리 자매들의 놀이터였고 마당에 있던 성모 마리아상을 보면서 자랐다. 고등학교가 미션스쿨에 배정되면서 성경 과목 점수를 위해서 한동안 교회를 다니기도 했다. 사람들이 쓰던 하얀 미사포가 예뻐 보이기 시작하던 20대에 나는 영세를 받았다. 율리아나가 나의 천주교 이름이다.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면서 주일을 지킬 수 없는 환경이 잦아졌고 그저 힘들 때 기도하는 정도였다. 50대가 되기 시작할 무렵에 가끔 산에 오르기 시작했고 명당에 자리 잡은 사찰에 들르기 시작했다. 맑은 공기를 마시고 엄숙한 법당에서 부처님께 삼배를 드린 후에 가만히 눈을 감고 좌정하면 천국이 따로 없다.
어느 정치인이 자신의 종교가 기·천·불(기독교, 천주교, 불교)이라고 했다. 스님을 만나고, 신부님을 만나고, 목사님을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모든 종교는 하나로 통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나도 기·천·불이 아닐까. 자신의 종교를 존중하듯이 남의 종교도 존중해야 한다. 나의 이상야릇한 종교관을 대변해 주는 영화를 보고 나는 '바로 이거다!'라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2019년 영화 '문신을 한 신부님'을 소개한다.
◇ 신부가 되고 싶은 '다니엘'

'다니엘'(바르토시 비엘레니아)은 신부가 꿈이지만 소년원에 수감 중이다. 신문가판대와 가게를 털고, 마약도 하며 방탕한 생활을 하고 사고로 친구를 죽여서 소년원에 들어온다. 열심히 목공 일도 하고 신부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영적인 깨달음을 얻게 되면서 신부가 되고 싶지만, 소년원 신부님은 '범죄 전력'이 있는 자는 신부가 될 수 없다고 하신다. 신부를 꿈꾸지만 신부가 될 수 없는 20대 청년 '다니엘'은 소년원에서 사제복을 훔친 채로 가석방한다. 존경하는 '토마시' 신부님의 소개로 폴란드 어느 마을 목공소에서 일하게 된 다니엘은 목공소에 도착하지만, 건장하고 거친 일꾼들을 바라보면서 목공소 일이 선뜻 내키지 않는다.

◇ 가짜 신부 '다니엘'

'다니엘'은 목공소를 돌아 나와서 텅 빈 성당 예배당에 앉아 있다. 마침 주임 신부가 요양 중이라 신임 신부를 기다리던 성당 관계자는 다니엘이 사제복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고 신임 신부로 착각한다. 다니엘도 얼떨결에 자신이 '토마시' 신부라고 소개한다. 주임 신부의 병세 악화로 당장 고해실에 들어가야 하는 '다니엘'.

기절했다가 깨어난 주임 신부는 며칠만이라도 자신의 역할을 도와달라고 부탁하자 다니엘은 교구에 알리지 말 것을 단서로 달고 수락한다.

담배 연기를 도넛 모양으로 만들면서 미사를 준비하는 '다니엘'

"제가 어찌 주님을 대신할까요. 저렇게 순결한 분을. 제 인생도 벅찬데... 진심으로 기도하고 주님과 대화하세요."라고 찬송을 시작하자 순수하고 환희에 찬 다니엘의 표정에 신도들의 합창이 이어진다.

다니엘의 책상 위에 신도들이 보낸 감사의 선물이 수북이 쌓여간다. 마을 사람들은 교통사고로 숨진 6명의 사진을 걸고 추모하는 중이다. 그러나 함께 사망한 운전자는 죄인으로 몰려서 장례식도 못 치르고 있다. 단지 사고일 뿐인데 죄인으로 몰리는 운전자의 장례식을 시장과 유족들의 반대에도 강행하는 '다니엘'은 장례식 행렬에서 진짜 '토마시'신부와 마주친다. 사제관에 찾아와서 주먹을 날리며 자신이 미사를 주관하겠다고 '다니엘'을 협박하자 다니엘은 성당 안의 신도들 앞에서 사제복을 벗는다. '다니엘'은 상체에 새겨진 문신을 드러내며 당당하게 신도들 사이를 걸어 나간다.

'다니엘'로 인해 진정으로 위로받고 감동하고 개심한 신도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그는 왜 신부가 될 수 없는가.

소년원으로 돌아온 다니엘은 피멍이 든 채로 식사를 한다. 가짜 신부 노릇을 했다는 소문으로 수감자들과 주먹질을 하고, 악에 받친 모습으로 생활하지만 당당한 다니엘의 모습이 클로즈업된다.

과거의 악행이 현재의 선행으로도 지울 수 없을까.

'다니엘'에게는 잔인한 결말이지만 종교에 대한 존재의 의미를 던져준다.
◇ 속 시원한 고해성사

"12살 아이가 담배를 피워요"

"아이에게 담배를 사주세요,"

"아이에게 담배를 사주라고요?"

"아니면 교우님 담배를 주시든지요."

"저 담배 안 피우는데요."

"냄새가 납니다."

그제야 가끔 핀다고 말하는 여신도.

성당에 잘 안 나오는 불량 청소년들에게 함께 술을 마시며, 축제 때는 사제복을 입고 고성방가하는 신부님이 낯설지만 신도들은 자신들을 너무 잘 알아주는 신부님이 내 편 같다. 손가락질당하는 마을 사람들에게도 내 편에 서서 대변해 주는 신부님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신부님도 사람이고 나쁜 짓을 한 나도 신부님처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

◇ 화합과 평화를 구가하는 종교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에 노미네이트되며 <기생충>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떠오른 걸작 '문신을 한 신부님'은 파격적이고 통렬한 스토리로 전 세계 국제영화제 33관왕 휩쓸며 영화계를 놀라게 한 작품이다.

종교가 인간에게 위로와 반성의 기회를 주는 것이 '존재의 목적'이라면, 권위와 가식의 가면을 벗고 신도들의 내면에 잠재된 진정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들어주고 안아주고 보듬어줘야 할 기독교, 천주교, 불교, 이슬람교가 서로 배타적으로 편 가르기 하지 말고 더 숭고한 정신과 가치 추구를 위해 함께 손을 잡고 평화와 사랑의 노래를 구가해야 하지 않을까.

종교는 평화와 사랑과 화합으로 위로와 힘이 되어주길 바라면서 묵주반지를 끼고 신륵사 불상 앞에서 삼배를 한 후, 한 줄 끄적여 본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임병렬 청주지방법원장

◇청주지방법원장으로 취임한 지 2개월이 지났다. 취임 소감은?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 2019년도에 법원 최초로 법원장 후보 추천제도가 시행돼 올해 전국 법원을 대상으로 확대됐다. 청주지방법원에서는 처음으로 법원장 추천제도에 의해 법원장으로 보임됐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법원장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또 2018년 법관 정기 인사에 의해 청주지방법원과 첫 인연을 맺게 된 것을 계기로 쾌적한 근무환경과 친절한 법원 분위기, 도민들의 높은 준법정신 등으로 인해 20여 년간의 법관 생활 중 가장 훌륭한 법원이라고 느껴 이곳에서 법관 생활을 이어나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때마침 대법원에서 시행하는 '장기근무법관 지원제'가 있었고, 청주지방법원 장기근무 법관으로 지원·선정돼 6년째 청주지방법원에 근무하고 있다. 평소 애착을 느꼈던 청주지방법원의 법원장으로 취임하게 돼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한다." ◇ 올해 중점 추진하는 사업은? "첫째로 좋은 재판을 위한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 좋은 재판은 투명하고 공정한 재판절차를 거쳐 당사자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고 결과에 승복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법관 언행 개선과 법원 직원의 의식개선, 법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