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웹출고시간2019.12.08 14:52:31
  • 최종수정2019.12.08 14:52:31
청주에서 국도 25번을 이용해 보은으로 가는 길은 이젠 옛기억이 됐다.

피반령 고개를 넘어 보은을 오가던 길은 미원-보은 국도 신설과 청주-상주간 고속도로 개통으로 통행량이 뜸해졌다.

피반령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경주 목사로 부임하던 관리의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험한 고개를 넘을 때 가마꾼이 고개를 넘어가기 힘드니 내려서 걸어가길 청했다. 화가 난 목사가 기어서 고개를 넘으라고 하여 가마꾼의 손과 발이 피로 물들었다는 이야기로 '피발령'이라 했다. 한자 표기로 '피반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피반령을 넘어서며 비운의 역사 속에서 천재 시인이라 불리던 오장환 시인에 대해 소개하려 한다.
2006년에 개관한 오장환 문학관은 충북 보은군 회인면 오장환 생가 옆에 있다.

문학관 안에는 '휘문'에 실린 초기 시와 방정환 선생이 만든 '어린이'지 '조선일보'등에 발표한 오장환 시인의 동시, 이육사 시인에게 보낸 친필 엽서, 해방 후 중학교 5,6학년 교과서에 실린 시 등이 전시돼있다.

해마다 9~10월 오장환 문학제가 이곳에서 열리며 백일장, 시그림그리기 대회, 시낭송대회, 문학강연 등이 진행된다.
1918년 보은군 회인면에서 태어난 오장환 시인은 10세에 안성으로 이사하고 14세 때 휘문고를 들어가 정지용 시인에게 시를 배우게 됐다. 6세에는 학교문예지와 조선문학에 '목욕간'을 발표하고 18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지산중학교에 입학 19세에 졸업 후 서울로 이사한다.

20세에는 명치대학 문예과에 입학하여 첫시집 '성벽'을 자비로 출판한다. 21세에 명치대학을 중퇴하고 관훈동에 '낭만서방'을 개업했다고 한다.

이후 22세 두 번째 시집인 '헌사'를 출판하고 1945년 28세에 신장병으로 입원 중에 광복을 맞았다.

29세에 3번째 시집 '병든 서울'을 출판하고 '해방기념조선문학상' 대상 후보에 선정됐다.

30세에 결혼 후 네 번째 시집 '나 사는 곳'을 간행하고 '석탑의 노래'가 국어교과서에 실렸다. 그리고 신장병을 치료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갔으나 치료가 안돼 33세 고국으로 돌아와 소련기행시집 '붉은 기'를 간행한 뒤 1951년 3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오장환 시인은 박두진, 이중섭, 정지용, 이육사, 서정주, 김광균 등 문학친구들과 시대의 아픔과 역사를 함께 했다.

그중 충북 옥천 출신인 정지용 시인과는 1931년 4월 휘문고등학교를 입학하면서 사제 지간으로 만나게 된다.

오장환의 시에 사용하는 어휘나 기법 등이 정지용의 영향을 받은 글들임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정지용 시인도 오장환 시인을 특별히 아꼈던 것으로 전해진다.

'오장환 시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접시꽃 당신'이라는 시로 유명한 시인인 도종환 국회의원이 오장환문학관의 명예관장이기도 하다.

청주에서 보은으로 가는 추억의 옛길을 이용해 보시고 회인에 있는 오장환 문학관에 들러 천재 시인의 삶도 돌아보면 귀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충북도 SNS서포터즈 권영진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