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동두천 -3.6℃
  • 맑음강릉 -0.4℃
  • 맑음서울 -3.2℃
  • 맑음충주 -2.7℃
  • 구름많음서산 -1.6℃
  • 맑음청주 -1.4℃
  • 맑음대전 -0.6℃
  • 맑음추풍령 -2.6℃
  • 맑음대구 -0.2℃
  • 맑음울산 0.5℃
  • 구름조금광주 0.6℃
  • 맑음부산 2.3℃
  • 흐림고창 -1.7℃
  • 구름많음홍성(예) -0.8℃
  • 제주 3.5℃
  • 구름많음고산 3.9℃
  • 맑음강화 -3.4℃
  • 맑음제천 -4.4℃
  • 맑음보은 -2.0℃
  • 맑음천안 -1.5℃
  • 구름조금보령 0.5℃
  • 구름조금부여 0.4℃
  • 맑음금산 -0.9℃
  • 구름많음강진군 1.1℃
  • 맑음경주시 0.5℃
  • 맑음거제 2.8℃
기상청 제공

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웹출고시간2018.12.02 13:34:45
  • 최종수정2018.12.02 13:34:45
[충북일보=제천] 제천은 삼국시대부터 한말까지 외세에 맞서 나라를 지켜온 호국정신의 성지다. 한말 박세화, 류인석, 이소응, 이강년, 황학수, 우덕순 등 나라가 어려울 때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분들의 숭고한 의병 정신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경술년 치욕적인 국치 소식을 듣고 일제의 국권 찬탈에 맞서 지식인으로서 순도(殉道)라는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하고 23일간의 단식으로 순절하신 한말의 대유학자 의당 박세화 선생의 흔적을 따라가봤다.

제천시 금성초등학교에서 안쪽으로 들어서면 가을걷이가 끝난 논과 밭, 마을을 지키는 750년된 은행나무 등 한적하고 여유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산자락이 끝나는 마을 안쪽에 위치한 병산영당.
먼저 좌우 지붕보다 중앙 지붕을 한 단 높게 꾸민 솟을대문이 눈에 들어온다. 의당 박세화 선생은 1906년 덕산면 억수리에 용하구곡의 이름을 따 용하영당을 건립했다. 6.25 전쟁으로 소실되자 1951년 청풍면 장선리 병산골에 박세화 선생의 제자들이 병산영당을 세웠다. 소실의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으나 스승을 기리는 제자들의 애틋한 마음이 엿보인다.

시간이 흘러 건물이 퇴락하고 충주~금성간 도로 개설로 철거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던 1994년 박세화 선생의 제자인 양암 유지혁 선생의 서재였던 현재 장소 금성면 사곡리에 영당을 신축했다고 한다.

병산영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 겹처마 맞배지붕 집이고 양 측면에는 풍판을 설치했다.
건물 중앙 윗부분에 박세화의 문인인 이원우가 쓴 '병산영당(屛山影堂)이라는 편액이 보인다.왼쪽 옆으로는 커다란 바윗돌과 모과나무가 자라고 있고 영당 뒤편으로는 양암 선생의 묘소가 있다.

바윗돌은 병산영당의 안광영 도유사가 의당 박세화 선생의 제자 양암 유지혁 선생에게 글을 배운 곳이다. 아이들이 사다리를 타고 바위에 올라가 주변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놀이터가 되어 주기도 했다.
영당 안에는 주자, 우암 송시열, 의당 박세화, 회당 윤응선, 직당 신현국, 사암 안재극, 확재 이원우, 해산재 양재명, 양암 유지혁 아홉 분의 영정이 봉안돼 있다. 매년 봄(음 3월 15일)과 가을(음 9월 15일) 두 차례 걸쳐 제향을 올리고 있다. 제향에는 후손과 유림뿐 아니라 제천시

공무원, 시민들이 참여해 의당 선생의 커다란 뜻을 되새긴다.

왼쪽 첫 번째에 의당 박세화 선생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고 위패를 모시고 있다. 박세화 선생은 월악산 용하동에서 용하영당(후칭 병산영당)을 창건하고 제천에서 20여 년 동안 수 많은 문도를 지도했다. 1905년 춘추대의 정신으로 월악산에서 의병을 일으켰다가 8개월간 일제 한성사령부에 연행돼 고초를 겪었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글 읽은 선비로 책임을 통감한다"며 23일간 절식 끝에 순국한 선비정신의 표상이자 한말의 대유학자다.
이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학문은 배움에 그치지 않고 의로운 실천으로 연결돼야 한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준다. 단식 중지를 종용코자 찾아온 일제 헌병의 말장화를 곰방대로 내리치며 물러가라고 호통친 일화는 지금도 회자된다. 일제와 타협하지 않으려는 선생의 기상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영당 내부에는 의당 박세화 선생의 마지막 유묵이 걸려 있다. 단식 6일째 의당 박세화 선생은 제자들의 슬픔에 예의조선(禮義朝鮮) 4대자를 써서 의당학파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절명시(목숨이 끊어지기 직전 지은 시)를 남긴다. 두 폭의 전지에 '예의조선' 네 글자를 쓰신 뒤 "당당한 나의 예의조선이 견양되어 망하니 슬프구나! 차마 말할 수 없을 지경이구나" 라고 탄식하셨다고 한다. 나라와 도 둘 다 생각하신 선생의 하해와 같은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일체의 곡기를 끊고 문인들과 이별의 준비를 한 뒤 마지막으로 2편의 자정 절필시를 지어 문인들에게 전했다고 한다.

[五言絶句]

道亡吾奈何 도가 망했는데 내 어찌해야 하는가

仰天一慟哭 하늘을 우러러보고 한바탕 크게 통곡하노라

自靖獻聖賢 자정하여 성현께 내 몸을 바치니

嗚呼君莫惑 오호라 그대는 미혹되지 말지어다. *역해:안광영(安光榮 : 병산영당 도유사)

병산영당을 둘러보며 배운 바를 실천하신 의당 선생의 진정한 선비 모습을 마음속에 새겨본다.

/ 제천시SNS서포터즈 이호영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