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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새해가 시작되면 사자법어(四字法語)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다. 한 해 동안 마음의 등불이 되는 좌우명으로 삼으라는 마음에서다. 아주 오래 전에 대만의 불광사를 방문했을 때 그곳의 조실스님이 해마다 신년인사를 사자법어로 만들어 신도들에게 배포하는 것을 보고 무척 감동을 받았다. 그 후 나 또한 매년 사자법어를 정하고 글귀를 써서 나누어 주는 것이 어느새 연례행사 되었다.

올해에는 세배하러온 이들에게 빨간 봉투에 세뱃돈을 넣고 ‘일일호일(日日好日)’이라는 글귀를 써 주었다. 이는 나를 찾아온 손님들에게 전하는 일종의 연하(年賀)문구인데, 중국 당나라 때의 고승이었던 운문(雲門)선사의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법어에서 따온 말이다.

이 법어는 삶의 변화를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는 가르침이다. 어제의 하루와 오늘의 하루는 본질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 다만, 사람들의 분별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뿐이다. 그러므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흉일(凶日)과 길일(吉日)이 따로 없기 때문에 ‘날마다 좋은 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도연초(徒然草)의 작자로 유명한 일본의 겸호(兼好)법사는 이런 글을 남겼다.

“좋은 날이라도 악을 행하면 반드시 흉하고, 나쁜 날이라도 선을 행하면 반드시 길하다. 길흉은 사람에게 달린 것이지 날에 달린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마음과 행동이 나쁜 날도 만들고, 좋은 날도 만든다는 뜻이다. 즉, 주어지는 길일이나 흉일은 없다는 것이므로 만들어가는 가는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하루하루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런 시들한 날이 아니라 늘 새로운 날이 되어야 한다. 철저한 자각과 창조적인 노력으로 거듭거듭 태어난다면 순간순간이 늘 새롭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날마다 좋은 날’이 주는 메시지는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가르침이다.

중국의 종념선사에게 새해 아침에 어떤 사람이 물었다.

“올 한 해 어떻게 마음을 쓰시겠습니까?”

이 말에 종념선사가 대답하였다.

“그대들은 하루 12시간이 부려먹지만, 나는 12시간을 부려먹는다.”

여기서 종념 선사가 말한 12시간은 자축인묘(子丑寅卯)의 12간지를 말하는 것이므로 요즘의 표현으로 따지자만 24시간이 된다. 즉, 그러니까 어리석은 사람들은 하루 24시간에 끌려서 다니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하루 24시간을 마구 부려먹는다는 뜻이다.

현대인들의 일상은 하루 24시간에 휘둘리며 살아간다. 날마다 시간에 쫓겨서 정신도 없고, 허둥지둥 도망치듯 생활하는 게 우리들의 초상이다. 그러면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왜 살고 있는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 시간에 끌려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시간을 부려먹는 사람이 진짜 주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시간에 끌려 다니면 시간의 노예가 되는 것이지만, 이와 반대로 끌고 다니면 시간의 주인이 되는 이치이다. 타성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은 하루 24시간이 괴롭고 지루한 시간이겠지만, 주체적 삶을 사는 사람은 하루 24시간이 아쉽게 느껴질 것이다. 여기서의 주체적 삶이란, 주어진 인생이 자기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를 자각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러므로 주체적 삶의 자세는 24시간을 부릴 줄 아는 사람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는 시간에 끌려가는 삶을 사는 사람과, 시간을 끌고 가는 삶을 사는 사람이 있는 셈이다.

시간에 끌려 다니면 열심히 살아도 자기 인생이 되지 못한다. 당당하게 자기 몫을 다하는 인생이 되려면 주인이 되어 시간을 종처럼 마음대로 부려 먹어야 한다. 따지고 보면 누구에게나 똑 같이 24시간이 주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 자체가 우리를 구속하거나 감시하지 않는다. 사람에 따라 길고 짧을 뿐이다. 그래서 ‘시간이 없다’라고 말하는 그 순간이 시간을 놓치는 시점일 수도 있는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날다마 좋은 날은 주어지는 조건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조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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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