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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완

전 충청북도 중앙도서관장

추석 며칠 전 산책 중에 가지가 길 위로 휘어 나온 두 그루의 밤나무를 보았다.

아이 주먹만한 밤송이들이 만삭의 산모처럼 오늘내일 오늘내일 하는 것 같았다.

석류 붉게 익어 새빨간 알을 토해내듯 내일쯤에는 저놈들도 네 갈래로 쩍쩍 벌어질 것이다.

임자있는 나무가 아닌가 하고 주위를 살폈으나 국유림의 자생 밤나무였다. 장대를 가지고 터는 것도 아니고 도로에 떨어진 밤을 줍는 것은 법에 저촉되지 않을 것 같았다.

'산림자원법'에 의해 임산물 무단채취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기 때문에 여간 주의하지 않으면 안될 일이다.

담을 넘어 남의 집으로 휘어 들어간 가지에 달린 감과, 문창호지를 뚫고 들어간 주먹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명쾌하게 정리했던 조선의 청백리 백사 이항복의 일화가 생각났다.

다음날, 밤송이침을 대비하여 모자를 챙겨 쓰고, 꼭두새벽 송이밭을 오르는 사람처럼 동트기 전에 밤나무 아래에 도착했다. 간밤에 분 바람 탓에 밤송이와 알밤 들이 길위에 널렸다.

밤송이를 두 발로 벌리고 밤을 빼내다 가시에 찔리는 따끔함이 토종벌 치셨던 아버님을 그립게 한다.

"꿀을 따 먹으려면 벌에 쏘이는 것 쯤은 각오해야 하느니라"

밤송이를 열어젖히고 튀어나온 알밤들은 누비처네(포대기) 안에서 신이나 들썩이는 등에 업힌 아가의 까까머리처럼 반질반질하다.

푸른 밤송이 속에 숨어있는 푸릇한 밤톨은 조지훈의 시 <승무>에 나오는 여승을 연상케 한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 하얀 고깔에 감추오고?'

큰 것 작은 것 가리지않고 줍다보니 양쪽 주머니가 불룩해졌다.

우리 네 식구가 먹을 만큼이다. 참나무 육형제 중 알이 가장 작은 졸참나무 도토리로 쑨 묵이 제일 맛있듯 밤도 굵은 것보다는 잔 것이 더 맛있다.

옛날 시골 마을에 어지간한 집은 밤나무 한 두 그루씩은 가지고 있었다. 밭을 지키는 밭지기처럼 밭둑이나 그 근처에 밤나무가 서있게 마련인데, 구황식량이나 관혼상제에 쓸 요량으로 조상님들이 심어 놓으신 것이었다.

밤은 우리 나라 제사상에 놓는 4가지 기본 과일 중 '조율이시(棗栗梨柿, 대추·밤·배·감)'라 하여 대추에 버금가는 과일이다.

왼쪽 가슴에 '코닦이 손수건'도 달기 전인 대여섯 살 때 일이다.

"아부지, 오늘은 누구 제사야?"

"고조할아버님 제사다."

"고주박할아버지 제사라구?"

제삿날은 일년 동안에 쌀밥을 먹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날로, 쏟아지는 잠을 쫓느라 한겨울 한밤중에도 찬물에 세수를 해야만 했다. 제사상에 올릴 밤을 치는 것은 나이 든 큰형님 담당이었다. 단단한 겉껍질을 깐 후 작은 칼로 속껍질을 처서 하얀 밤속을 제기에 쌓기 좋게 모양을 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제사를 모시는 장남에게 유산을 더 많이 상속할 수 있게 했던 것처럼 지차(之次)들은 범접할 수도 없는, 우리 집안의 내력인 장손의 몫이었다.

제사가 끝나면 밤은 막내둥이 차지였다.

"대추는 씨가 하나이므로 임금을, 밤은 한 송이에 3톨이 들어있어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의 3정승을, 배는 씨가 6개 있어서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의 6조판서를, 감은 씨가 8개 있으므로 조선8도를 각각 뜻함으로 동편에서부터 대추, 밤, 배, 감 순으로 진설(陳設)해야 한다"는 아버지 말씀은 중학생이 돼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추석에 내려온 애들과 함께 반은 쪄서 먹고 반은 밤밥을 지어 먹었다. 잘 익은 밤을 입에 넣고 어금니로 톡 터뜨린 다음 조그만 티스푼으로 발라먹는 잔재미는 가족의 정과 추억을 쌓기에 충분했다. 가시돋친 밤송이 안에는 세톨박이 혹은 두톨박이 밤이, 엄마 품의 아기처럼 융단같은 밤송이살에 싸여있었다. 밤송이를 닮은 고슴도치도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앞가슴 쪽에는 가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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