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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뜸했던 이정골 산책길에 나섰다.

용정축구공원을 지나 낚시터가 내려다보이는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시원한 계곡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왼쪽 오른쪽 산등성이로부터, 물든 낙엽들이 햇살에 반짝이며 파란 가을 하늘을 배경삼아 교태롭게 춤을 추며 내려온다.

붉은 잎이 온 산에 가득한 늦가을이다.

산마루에서 숨을 고르던 낙가산 단풍이 시원한 갈바람을 타고 산기슭까지 내려왔다. 산그림자가 드리운 저수지도 울긋불긋 물이 들었다.

"단풍은 멀리 봐야 아름다워요."

"사람도 멀리서 봐야 진득하고 아름다워요."

산자락 작은 농원에는 우리가 아롱이, 흰둥이, 검둥이라 이름 붙인 지킴이 견공 셋이 있다.

오랫만에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드니 뒷다리를 구부리고 앉아 두 귀를 쫑긋하고 꼬리를 흔들며 짖어댄다. 줄에 매인 몸이라 달려오지는 못하고 반가워 죽겠다는 자기들만의 가지껏 표현이리라.

트로이 전쟁에 출정한 주인 오디세우스를 20년 동안 기다렸던 충견 아르고스처럼….

가을걷이를 끝낸 주름진 노인이 밭둑에 앉아 여유로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도리깨에 탈탈 털린 참깨와 들깨는 꽁꽁 묶이어 밭가에 세워지고 김장용 채소들은 한편에 줄을 지어 서 있다.

쪽파와 대파들은 바람에도 꼿꼿하고, 볏짚에 묶인 배추들은 속을 꽉꽉 채우고 있다.

그 옆 서리맞은 무 잎들은 시위하듯 이랑에 너부러져 있다.

얼음같이 차가운 물에 김장하느라 오리발처럼 빨갛게 얼었던 어머님의 손이 떠올라 가슴이 저려온다.

동네 어귀 정자에는 시래기 거리 무우청이 줄줄이 걸려있고, 그늘막이 느티나무에는 세월이 지나간 듯 커다란 가슴 구멍이 뻥 뚫렸다.

흙돌담에는 바싹 마른 호박잎과 줄기들이 늘어져있고 담장 위에는 펑퍼짐한 늙은 호박이 배를 내밀고 덩그러니 앉아있다.

감나무 꼭대기에 까치밥으로 남겨진 홍시는 산까치가 오기를 기다리며 오늘도 대롱대롱 외로이 매달려있다.

송상현, 이이 등 9명의 선현을 배향하고 있는 신항서원 앞 은행나무 고목에 빨간 담쟁이덩굴이 타고 오르고 있다.

뿌리 깊은 나무는 죽어서도 살아있을 때보다 더 오래 서 있을 수 있는 법이다.

아프리카 나미브사막의 낙타가시나무가 살아서 300년, 죽어서 600년을 버티고 서 있는 것처럼….

은행나무 밑에는 노란 양탄자가 깔리고 단풍나무 아래는 빨간 양탄자가 깔렸다.

상수리나무도 수라상에 오르려는 듯 금빛 옷으로 갈아입었다.

가을도 철이 들어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숲에 가면 '두루루룩 두루루루룩' 빠르게 드럼치는 듯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딱다구리가 부리로 나무를 쪼는 소리가 아닐까 하고 추측하면서도 반신반의 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새가 어떻게 드릴처럼 구멍을 뚫을 수 있을까 하고.

그 소리는 오색딱다구리가 번식기에 내는 소리임을 최근에야 알았다.

동물은 교미·산란·출산·육아 등을 하는 번식기에 특별한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도….

"엄마,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철도 없고 눈치도 없는 막내가 물으면 어머니는 늘 한결같으셨다.

"아무것도 아니란다."

안 보면 보고 싶고 가끔이라도 생각나는 사람, 이름만 들어도 좋은 사람, 잊혀지지 않는 사람, 죽었어도 그리운 사람이 있다.

아! 나는 누구의 기억에 남을 수 있을까?

동구 밖 3m도 넘는 선돌 장승의 해맑은 미소가 보는 이를 웃음짓게 한다.

탐스러운 햇살이 내리쬐는 만추(晩秋)에 메타세콰이어 황금길을 걷는다.

화가가 스케치하듯 생각나는 단어들을 마음에 모았다가 집에 돌아와 하나씩 꺼내어 펼치면 한 폭의 그림처럼 한 편의 글이 된다.

로케이션 매니저처럼 산책에서 담아온 풍광을 지인들에게 보내어 반필면(反必面:밖에 나갔다 돌아왔을 때 반드시 부모를 뵙고 귀가했음을 알림)한다.

하루에 막걸리 한 잔을 먹을 수 있는 500원만 있으면 매일매일이 소풍날처럼 즐겁고 행복했던 <귀천(歸天)> 시인 천상병.

돈 많고 힘 있는 트럼프보다 그의 삶이 훨씬 좋아 보인다.

낙엽지는 이 가을의 화두는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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