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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완

전 충북도 중앙도서관장

집에서 느긋한 걸음으로 50여 분 거리에 있는 박물관 나들이는 사시사철 언제고 좋다. 그중에서도 문 닫는 월요일이 좋다. 휴관일의 박물관은, 옥외 계단 양쪽에 수문장처럼 앉아서 빙그레 웃고 있는 두 녀석의 해태를 독차지해 만날 수 있어서 좋고(이 녀석들은 못된 놈을 보면 뿔로 받아버린다고 한다), 뒤뜰 언덕 정자에 걸터앉아 폼을 잡고 앞산의 멋진 풍광을 감상할 수 있어서 좋다.

연한 초록의 연두, 오월을 앞둔 늦사월의 산을 바라보고 있자니,보티첼리의 그림 '봄'에서처럼 아름다운 비너스가 큐피드를 데리고 신록(新綠) 속에서 걸어 나올 것 같고, 뒤이어, 순조 때 열네 살 나이에 전국을 유람했던 소녀 김금원이 남장을 벗어던지고 뛰어나올 것만 같다. 조선시대에는 산천을 유람하는 여성을 실행부녀(失行婦女: 바람난 여자)라 일컬으며, 사족(士族) 부녀로서 산천에서 놀이를 즐기는 자는 장(杖) 100대에 처하기도(경국대전) 했다는데….

옆 숲에서 수꿩이 냅다 소리를 지르며 푸드덕 날아오른다. 길을 묻던 나그네도 놀라고, 순백의 탱자나무 꽃도 우수수 떨어진다. '예끼, 장끼 이놈아.'

크고 단단한 가시가 위협적인 탱자나무를 촘촘히 심으면 귀신도 뚫지 못한다고 하여, 옛날에는 적군의 접근을 어렵게 하기 위해 성 밖에 탱자나무를 식재하기도 했고, 귀양지 집 둘레에 탱자나무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죄인을 가두기도(위리안치) 했다. 그러고 보니 탱자나무는 오래전부터 '적대적 건축' 자재로 쓰였던 것이다. 담장에다 유리 조각을 박았던 것이나, 노숙자들이 눕지 못하도록 공원 벤치 사이에 팔걸이를 하는 것과 같이. 여자 친구에게 줄 장미꽃을 꺾다 가시에 찔린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인생'의 한 구절을 생각하며 하늘을 본다.

"인생은 축제와 갈은 것 / 하루하루 일어나는 그대로 살아가라"

아가들이 예쁘고 잘 웃는 것은 구름을 닮아서일 게다. 자연은 언제고 한결같다. 사람도 늘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인연을 끊지 않으려는 고운 심성을 가진 사람처럼….

산기슭 꽃밭에서 백발의 노인이 일하신다. 오래전부터 들르고 싶었는데 제주도의 정낭처럼 출입구에 금줄이 쳐 있어 늘 아쉬웠던 곳이다. 허락을 받고 들어가 뵈니 '노인 청년'이시다. 정년퇴직 후 20년 동안 가꾸셨다는 1천여 평 정원에는 온갖 화훼(花卉)들이 그득하고 백화가 만발했다.

"개방은 안 하시는 거죠?"

"개방하면 다 망가져요. 비탈이 졌으니 저 밑 길에서도 잘 보이구요."

"비용도 많이 들텐데요?"

"두 늙은이 병원비보다 적게 들지 않겠어요?"

정원의 노인(庭老)에게서 향기가 느껴진다.

"눈,비 그리고 사람 이 세 가지는 멀리서 보아야 아름답다."

최윤희 책 '멋진 노후를 예약하라'에 나오는 말이다. 팔순 '노부부의 정원'도 멀리서 보니 한눈에 더 아름다웠다.

진화인류학자인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는, 진화라는 게임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적자(適者) 생존'이 아닌 '다정함의 생존'이라며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했다. 일리(一理)가 있고 전적으로 공감하는 내용이다. 수십 년을 겪어보니 다정과 친절만큼 좋은 것도 없을 성싶다. 다정은 '정이 많음'으로, 정(情)이란 '사랑이나 친근감을 느끼는 마음'이고, 친절은 '대하는 태도가 매우 정겹고 고분고분함'이니, 다정을 실천하는 것이 친절인 것이다. 희망도 가슴도 사랑도 인생도 꽉꽉 채워지는 늦사월, 다정하고 친절했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이조년의 '다정가'를 읊조려 본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 제 / 일지춘심을 자귀야 알랴마는 /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늦둥이처럼 예쁜 늦사월이 사랑하자고 손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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