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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완

전 충북도 중앙도서관장

순천 선암사 무우전 돌담길에 천연기념물 무우전매(梅)가 희게 붉게 피었다. 대문 옆에 예쁜 홍매가 다소곳이 서 있는 무우전을 조심스레 들어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한불교태고종 종정이 머무시던 전각으로 일반인 출입이 통제된 영역이었다.

무우전 왼쪽에 있는 부엌 문틀에,딱 여느집 문패만한 크기의 '각황전 입구' 표지판이 붙어있다. 나무 뚜껑 솥단지들이 걸려있는 것을 보니 차를 덖는 곳인가 보다.

샛문으로 나가니 뒤뜰에 채마밭과 정원이 적당히 자그마하다. 근대, 열무, 쑥갓, 얼갈이 배추, 치커리의 팻말이 박혀있고 이름 모를 들꽃들이 꽃대를 내밀고 있다.

ㄷ자 승방인 무우전 가운데 멍석만한 크기의 반질반질한 뒷마당 앞에는 1칸 법당인 각황전이 숨겨진 보물처럼 점잖게 앉아있다. 꽃담 아래 오래된 나무 의자에 앉아 그윽한 매향을 흠씬 들이키고 나오니, 무우전 툇마루에서 나이 지긋한 스님과 노스님이 정담을 나누고 계신다. 점심 공양을 마친 노승께 문안하러 오신 듯하다.

쉬었다 가시라는 말씀에 넙죽 앉아서 조계산 능선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자니, 당호(無憂殿)처럼 근심이 사르르 죄다 녹아내린다.

"스님, 여기서 무우전매를 바라보니, 옛날 김해 사또가 매화 나무에도 세금을 매겼다는 일화가 생각나네요."

"어디 그뿐인가요."

설악산 울산바위가 울산에서 옮겨 왔다며 울산 지역에서 해마다 울산바위 산세(山貰)를 받아가던 것을, 동자승의 지혜로 다시는 세금을 물지 않게 되었다는 '울산바위설화'를 시작으로 술술 풀어내시는 노스님의 이야기에서, 담 너머에 있는 600년도 더 된 무우전백매와 같은 고태미(古態美)가 느껴진다.

뜰아래 피어난 노란 수선화를 보고 환하게 웃으시던 노스님은, 우리가 큰마당을 지나 대문을 나설 때까지 문고리를 잡고 계셨다.

"큰스님이 부쩍 외로움을 많이 타시네요. 매화꽃으로 둘러싸인 무우전에 계시지만, 매향이 아무리 좋다고 한들 어디 사람 냄새만 하겠어요?"

정호승의 시 '선암사'와 함께 '수선화에게'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스님의 허락을 얻어 무우전 옆에 있는 달마전 4단 석조(물확)를 만나는 기쁨도 누릴 수 있었다. 달마전은 태고종 유일의 총림선원인 칠전선원 안에 있어 일반인의 드나듦이 제한되는 곳이다. 스님들의 참선에 방해될까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걸어 물확이 있는 뒤꼍으로 통하는 후원(後院: 사찰의 전통 공양간)으로 들어섰다.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부뚜막과 반들반들 윤나게 닦은 가마솥 위에 조왕(·王: 부엌신)이 모셔져 있다.

절집 부엌은 잘 닦인 놋그릇처럼 정갈하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부지깽이로 부뚜막 두드리며 염불 익혔을 행자승 생각에, 군불 때며 '불멍'했던 소싯적이 언뜻 스쳐갔다.

뒷문을 나서니 그 유명한 4단 석조가 졸졸거리며 반긴다. 수백 년 야생차 밭을 지난 조계산 청정수가 대롱 나무통을 타고 내려와 층층이 흘러내린다. 1단의 물은 부처님께 올리는 청수나 차 달이는데 쓰이고, 2단의 물은 음용수로, 3단의 물은 밥 짓고 채소ㆍ과일 씻는데 사용하며, 4단의 물은 허드렛물로 쓴다고 한다. 표주박으로 가만히 떠서 몇 모금 마셔보니, 첫 번째는 물맛이더니 두 번째는 매향(梅香)이 일고 세 번째는 단맛이 났다.

무우전매의 꽃과 향을 느끼고, 노스님의 귀한 말씀도 듣고, 4단 석조의 물맛까지 보았으니 이 아름다운 일들을 기록하지 않을 수가 없다.

금둔사 납월매, 선암사 무우전매, 송광사 송광매, 화엄사 흑매 등, 탐매(探梅)여행에서 만난 고매(古梅)들에게서 늙어서도 사랑받는 방법을 배웠다.

얼음 같고 백옥 같은 자태와 매운 절개가 있는 매화는 노태(老態)가 날 수록 귀한 대접을 받는 법이다.

조선후기 유박의 '화암수록'에서 뽑아 적는다.

"매화는 운치가 빼어나고 격조가 높은 천하의 우물(尤物: 가장 좋은 물건)이므로, 똑똑하거나 어리석거나 잘나거나 못나거나 누구나 감히 이의를 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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