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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1.08.10 16:47:44
  • 최종수정2021.08.10 16:47:44

김규완

전 충청북도 중앙도서관장

창덕궁 후원은, 남쪽으로 뻗은 북악의 매봉 자락에 자리 잡은 궁궐 뒤편에 있다고 해서 후원(後苑)이라 하는데, 야산을 이용한 자연미를 최대한 살린 조선왕실의 대표적 정원(9만여 평)으로 중국의 이허위안(이화원), 일본의 가쓰라리큐(계리궁)와 함께 아시아 3대 정원으로 꼽히는 곳이다.

중국의 정원은 석가산(石假山)을 쌓고 태호석(太湖石)으로 바위 풍경을 조성하는 등 대규모의 인위적인 공간이 주경(主景)을 이루고 있고, 일본의 정원은 산·천·바다·돌 등의 자연 경관들을 인공적으로 조성한 데 비해, 한국의 정원은 자연 경관을 주(主)로 삼고 인공 경관을 종(從)의 위치에 두면서 차경(借景 : 경치를 빌리다)의 원리를 이용해 자연을 정원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유럽 등지의 정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분수 대신,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고 폭포를 만든 창덕궁 정원(庭苑)은 다분히 인위적인 베르사유 궁전 정원이나 알함브라 궁전 정원과도 구별된다.

창덕궁 후원에는 서로 사뭇 다른 10개가 넘는 정자가 있다. 궁궐 동산에 있는 정자임에도 고향 동산의 정자처럼 누구나 올라갈 수 있는 친근함이 느껴진다.

관물헌 담장 밖 후원 가는 숲길 나지막한 고개를 넘으면 나타나는 열십자(+) 모양 지붕의 부용정(芙蓉亭)은, 땅을 상징하는 네모난 큰 연못(부용지, 300여 평)에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 같기도 하고, 연못가에 핀 한 송이 청초한 연꽃 같기도 하다.

정자 맞은편 언덕, 정조 시대 개혁정치의 본산이었던 왕립도서관 '규장각'을 바라보니, 간서치(책만 보는 바보) 이덕무와 함께 공자의 말씀이 떠오른다.

"모든 일은 자신이 하기에 달렸다"

규장각 오른쪽에 희우정(喜雨亭)이 있다.

원래는 초가로 된 '취향정'이었으나, 숙종 16년 여름 가뭄 때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고 바로 비가 내리자, 임금이 기뻐하며 이름을 희우정(喜雨:기쁜 비가 내렸다)으로 바꾸고 지붕도 기와로 했다.

비오는 날 정자 쪽마루에 앉아 빗소리를 들으며 부용지 연꽃잎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면, 상림십경(창더궁 후원의 열 가지 아름다운 경치) 중 하나인 희우상련(喜雨賞蓮:희우정의 연꽃 구경)의 기쁨을 오롯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화당과 춘당대를 지나, 한 장의 판돌을 쪼아 만든 불로문을 들어서니, 두 개의 기둥을 연못(애련지)에 걸친 채 서 있는 애련정(愛蓮亭)이 반긴다.

낙양각(정자 기둥에 액자틀처럼 커텐 모양으로 장식한 테두리) 사이로 펼쳐지는 삼면의 경치는 경회루의 낙양각 풍경에 버금간다 하겠다.

더러운 물 속에서도 오염되지 않고 청아한 꽃을 피우는 연꽃을 사랑하며….

연경당 선향재 뒤편 녹색 비단을 펼친 듯 수목이 우거진 농수정(濃繡亭)에서 산소를 실컷 들이마시고 후원 깊숙한 존덕정으로 간다.

육각형 지붕 아래 또 다른 지붕을 한 겹 덧대고(겹지붕), 지붕을 받친 기둥 역시 두 겹으로 세운 존덕정(尊德亭) 안에는 정조가 쓴 '만천명월주인옹자서'라는 글이 걸려 있다.

'만개의 개울이 달빛을 받아 빛나고 있지만 하늘에 있는 달은 오직 하나다'

존덕정 맞은편에는 부채를 펼친 독특한 모습에 파초 잎 모양의 재미있는 현판을 달고있는 이색적인 정자 관람정(觀纜亭)이 있다.

연못가에 닻을 내린듯한 비단 돛단배에 오르니 기둥 낙양각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는 '사륜정기'에서 "사방이 툭 트이고 텅 비고 높다랗게 만든 것이 정자"라고 했다.

관람정 건너편 언덕에는 경관이 빼어난 승재정(勝在亭)이 있고 관람정을 지나 옥류천으로 가는 산마루턱에 땀을 식히고 책 읽기에 딱 좋은 취규정(聚奎亭)이 있다.

별들이 규성으로 모여들듯 뛰어난 인재가 많이 모여든다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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