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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완

전 충청북도 중앙도서관장

雅兄!

一日不說話 口中生荊棘(하루라도 말을 하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세상이 어지러워 저도 한번 돌려봤습니다. 아직은 대면하기가 어려우니 문자로라도 가시를 막으려고 합니다.

요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최북을 보았습니다.

「나무 그늘에서의 휴식(樹下人物圖)」

그가 누구입니까? 조선 최초의 직업화가로 '붓으로 먹고 산다'는 호생관(毫生館)으로 호를 삼고, 자신의 이름 北자를 파자(破字)해 스스로 최칠칠(崔七七)이라 칭하며, 못 그리는 것이 없다는 조선 최고의 화가 아니었습니까.

"내 그림은 그 가치를 알아보는 이에게만 팔겠다"며, 그림 값이 적다고 생각되면 자기의 그림을 찢어 버리고, 많다고 여겨지면 돈을 도로 주었다지요.

가난할지라도 자신의 그림을 알아주지 않으면 그 어떤 압력과 유혹에도 절대 그림을 팔지 않았던 그의 진면목이 조희룡의 『호산외기』에 기록돼 전합니다.

"한 귀인이 최북에게 그림을 요구했는데 이루지 못하자 그를 위협했다. 최북이 성내어 말하기를 '남이 나를 저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 눈이 나를 저버린다.' 하고는 한 쪽 눈을 찔러서 실명했다."

오만한 지배층과 참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분노의 절규였겠지요.

서양의 화가들이 그림에다 자기 자신을 슬쩍 그려 넣었듯이 최북도 필생의 역작인 「풍설야귀인(風雪夜歸人)」에 자신의 거침없는 성품과 삶을 그대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풍설야귀인」은 당나라 유장경의 한시 '봉설숙부용산'을 그림으로 옮긴 작품인데, "날이 저물고 푸른 산은 아득한데/차가운 하늘 밑 시골집이 쓸쓸하네/사립문 밖엔 개 짓는 소리 들리는데/눈보라 치는 밤에 돌아가는 나그네"라는 내용입니다.

"사람들은 중국 산수의 형세를 그린 그림만을 좋아하고 숭상하지만 조선 사람은 마땅히 조선의 산수를 그려야 한다"고 역설했던 최북은, 열흘을 굶다가 그림 한 점 팔아 술을 사 마시고 눈보라 치는 밤, 성 밖으로 나가 쓰러져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서울서 내려오는 내내 최북과 함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메테우스의 생각으로 가득했습니다.

주신인 제우스가 감추어 둔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댓가로 코카서스의 바위산에 쇠사슬로 묶여, 낮에는 매일같이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고 밤이 되면 간이 다시 회복되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끝끝내 절대권력에 굴복하지도 불의와 타협하지도 않고 맞서 싸우지요.

정의와 율법을 무너뜨린 폭군 제우스에 자존심을 지키며 대항한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인류의 구원자였습니다.

조선 시대 사회모순을 비판한 소설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의 조카 허친은, 서실(書室)을 짓고 통곡헌(慟哭軒)이란 편액을 걸었다지요.

통곡할 수밖에 없는 부조리한 현실의 지배적인 힘과 흐름을 거역하며 살겠다는 지식인의 강렬한 비판의지를 담은 이름이니 그 삼촌에 그 조카라 할 만합니다.

계곡물이 절의 가운데를 굽이쳐 흘러 영지라 일컬어지는 공주 마곡사에 가니, 백범당에 김구 선생의 친필 휘호 '良心建國'(양심건국)이 걸려있더군요.

권력이나 사상, 이념을 떠나 오로지 나라와 후세를 위해 진정으로 민족을 아끼고 생각하는 마음으로 나라를 세우라는 뜻이겠지요.

어제는 서울의 큰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오늘 새벽에는 가랑비를 맞으며 아침 산책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제 몸도 하나 제대로 간수 못 하는 주제에 무슨 나라 걱정을 하나 싶어 한심한 생각이 들더군요.

아침이면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쪼러 날아드는 독수리떼처럼, 경험해보지도, 이해할 수도, 말도 안 되는 소식들에 시달리면서도, 눈·비 안 가리고 짹짹거리는 까치들을 보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이 나라가 성하기만을 바라면서요.

어느새 붉게 물든 나뭇잎이 떨어져 맑은 얼굴로 바라보더군요. 쪼그리고 앉아 낙엽의 미소와 마주했습니다.

'이 놈은 봄에 태어나 여름의 햇볕을 받고 자라 가을의 예쁨으로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고, 겨울에는 다시 거름으로 돌아가 나무를 키우는구나!'

『님의 침묵』 서시(序詩) 「군말」에서 마음에 와닿는 몇 구절을 적습니다.

"님만 님이 아니라 그리운 것은 다 님이다.(중략) 님은 내가 사랑할 뿐아니라 나를 사랑하나니라. …(중략)…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羊)이 그리워서 이 시(詩)를 쓴다."

오늘 밤 꿈에 雅兄이 나타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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