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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완

전 충청북도 중앙도서관장

어젯밤에도 도둑비처럼 장대비가 무더기로 쏟아졌다.

"세검정이 자랑하는 빼어난 경치란 소나기가 내릴 때 폭포처럼 사납게 굽이치는 물살을 보는 것이다. 수문(水門) 좌우의 계곡에서는 고래 한 쌍이 물을 뿜어내듯 물줄기가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정약용의 '유세검정기' 한 구절이 생각나, 장맛비가 쉬는 틈을 타서 괴산댐으로 차를 몰았다.

수문을 연 것인지, 일곱 마리의 용들이 토해내는 붉은 황톳물이 한꺼번에 웅장하게 떨어지고 굽이치고 용솟음친다.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이다!

괴산댐은 순수 국내기술로 세워진 최초의 발전전용 댐 일 뿐 아니라 나와 생년도 같아 더욱 정이 가는 곳이다.

댐 위쪽 숲속에 숨어있는 환벽정을 어렵게 찾았다.

동양학자 조용헌이 전국의 휴휴명당(休休明堂) 22곳을 소개하면서 "이 세상에 왔으면 한 번은 맛보고 가야 한다"고 극찬한 곳이다.

댐이 만들어낸 칠성호(湖)가 S자를 그리며 층암절벽을 씻기고 돌아가는 벼랑 위 연천대(鳶天臺, 하늘에 연을 날리는 자리)에다, 2011년에 정자를 세우고 푸름(碧)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는 환벽정(環碧亭)으로 이름 지었다.

정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경관에는 수경(水景), 석경(石景), 수경(樹景)이 있는데 환벽정의 경관은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춘 완벽한 수려함이다.

정자에 오르면 왼쪽으로는 군자산이, 앞쪽으로는 옥녀봉이, 오른쪽으로는 아가봉이 기둥 사이 액자로 들어와 저마다의 절경을 선보인다.

조용헌은 이곳을,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이치를 맛볼 수 있는 경관이요, 달을 보기에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을 갖춘 명소라 했다.

호수의 물도 푸르고 주변을 둘러싼 산들도 푸르다는 환벽정이지만, 장마로 인하여 넘실거리며 도도히 흐르는 붉덩물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물멀미가 날 것만 같았다.

주민들을 위해 지은 정자임에도 그 위치가 네비에도 안 나오고 이정표도 없어서, 먼저 다녀온 이들의 자료를 자세히 검색해보지 않으면 찾아가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화중지병(·中之餠)의 안타까움이 남았다.

환벽정에서 삼십여 리밖에 안 떨어진 취묵당을 찾는 것은 장마철 한낮에 보통 일이 아니었다. 동네 아주머니의 그나마의 친절이 없었다면 홧김에 그냥 돌아갔을 것이다.

취묵당(醉默堂)은 노둔한 독서광 백곡 김득신이 문과에 합격한 59세 때 독서재(讀書齋)로 사용하기 위해 건립한 누정이다.

'술에 취해서도 입을 다물겠다'는 '취묵'으로 정자 이름을 짓고 '사기-백이열전'을 1억1만3천 번 읽었다 해 '억만재(億萬齋)'라고도 부른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설마?" 하며 믿으려 하지 않지만, 백이열전의 한자 수가 1천 자도 안 되고 당시 1억은 지금의 10만이니, 천자문을 11만3천 번 읽는 것과 비교하고, 59세에야 과거에 급제한 불굴의 노력, 그리고 자신이 읽은 책의 횟수와 이유를 쓴 독수기(讀數記) 현판의 첫 문장을 보면 확신이 설 것이다.

"佰夷傳讀一億一萬三千番(백이전을 1억1만3천 번 읽다)"

정자 정면 네 기둥에는 효종이 "이 시는 당인(唐人)에게 부끄럽지 않다"고 칭찬한 백곡의 대표작 '용호(龍湖)'-용산에 있는 정자에서 바라본 한강의 모습을 묘사한 시-가 주련으로 걸려 있다.

'고목은 찬 구름 속에 있고/가을 산에 소나기 희뿌였네/저물어 가는 강에 풍랑이 일어/어부가 급히 배를 돌리네'

정자 안에는 독수기, 중수기 등의 현판이 빼곡히 걸려 있는데 정작 취묵당 편액이나 억만재 편액은 보이지 않는다.

취묵당에 왔으니 불편함도 아쉬움도 입을 다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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