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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완

전 충청북도 중앙도서관장

"약 아끼지 말고 아프기 전에 드세요."

코로나19 예방접종을 한 후 친절한 여의사의 당부였다. 사태 초기의 마스크 대란처럼 '타이레놀'도 약국마다 품귀 현상을 빚어 어렵게 1갑(8정)을 준비했었다. 어른은 한 번에 두 알씩은 먹어야 한다는데 한 알씩만 먹고 버티며 내색도 않은 아내에게 면구스러울 뿐이었다. 젊은이들이 애용하는 편의점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을,

'알아야 면장(免牆)을 하지…….'

2차 접종을 대비해 편의점에서 넉넉하게 사다 놓고도 기분이 눅눅했다.

옛날 조선지나 중국지로 만든 책은 습기로 인한 충해나 부식이 심해, 정기적으로 햇볕에 말리고 거풍(擧風: 바람을 쐬는 것)시켜야 했는데 이러한 행위를 포쇄(曝曬)라고 했다. 백신에 지친 몸과, 장마 전 날씨처럼 꿉꿉한 마음을 포쇄코자 새벽같이 집을 나섰다. 경북 예천과 문경의 사찰과 정자들을 둘러보고 싶었다.

산고을 괴산을 지나 연풍에 접어드니, 1967년 대간첩 작전 본부가 있던 연풍중학교 운동장과 정조 때 연풍 현감에 제수된 단원 김홍도가 3년간 집무했던 동헌 풍락헌이 손에 잡힐듯 차창으로 스친다. 나는 새도 쉬어간다는 첩첩산중 문경새재 아래 연풍 산속에 북한 무장공비가 출몰하고, 신고를 받고 출동했던 경찰 지서장이 전사하자 육군 제37사단이 주둔하며 그들을 소탕했다. 당시 국민학교 3학년이었던 아이는, 해가 떨어지면 마당 가에 있는 변소에 가기도 무서워 아버지가 사오신 요강을 이용해야 했다.

우선 찾은 곳은 예천의 천년고찰 용문사다. 아침예불과 도량 정비, 공양을 마친 스님들은 승방에서 정진 중인지, 인적 없는 이른 산사에 풍경 소리와 산새들만이 법당을 드나든다. 임란 때 승병들의 회담장, 승속들이 승병들을 위해 짚신을 만들었던 호국의 장소 자운루를 지나, 고려 때 국난 극복을 위한 팔만대장경의 일부를 보관하기 위해 지은 대장전에 들었다. 양말 신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룻바닥이 삐걱삐걱 소리를 낸다. 어려운 이때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깨움의 소리 같다.

불단 앞 좌우에 각 1좌씩 있는 4.2m 높이의 팔각 정자 모양을 한 아름다운 윤장대가 보는 이를 경탄케 한다. 안에는 불교 경전이 빼곡히 들어있다.

조선시대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을 지은 초간 권문해가 세운 초간정 계자난간에 기대어 숨을 고르고, 문경 주암정 가는 길에 예천 사부리 소나무와 문경 대하리 소나무를 찾았다. 400년이 넘도록 동네 어귀에서 수문장 역할을 했고, 음력 정월대보름에 동제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을 빌었던 나무들이다.

문경 주암정은 예정에도 없던 정자였다. 길가의 안내판을 보고 먼길을 다시 돌아와 찾았으나, 강 건너 아스라한 정자(경체정)인 줄 알고 멀리 사진만 찍고 돌아가다 아니다 싶어 또다시 차를 돌렸다. 한참을 찾다 돌아서려는데 "저기요!" 아내가 가르키는 나무 사이로 기와지붕이 보였다. 스무 걸음 남짓한 지척임에도 더 맑은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띄었나 보다. 숨겨진 보물이 더 빛나는 것이리라. 별유풍경(別有風景)이다!

연꽃 가득한 못, 배 모양의 바위 위에 선실처럼 정자를 앉히고 주암정(舟巖亭)이라 했다. 뒤로는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옆에는 능소화와 자귀꽃이 수줍은듯 운치를 더한다. 여정의 마지막은 내성천이 350도 돌아 나가며 만든 육지 속 섬마을 예천 회룡포다.

회룡대에 올라 내려다보는 풍경은 그림처럼 아름답고 시원했다. 풍경을 감상하는 방법에는 멀리 바라보기, 내려다보기, 올려다보기 등이 있을텐데, 덕유산 정상 향적봉에서의 감상이 멀리 바라보기라면 회룡포의 감상은 내려다보기 그것이었다.

조상님들을 만나 온고이지신하고 우리 강산의 풍경미까지 감상하고 돌아오니 몸도 마음도 뽀송뽀송해졌다. 여행이 끝나면 내 안에 나무를 심는다.이번에는 왼쪽 가슴에 '사랑하는 나무'를, 오른쪽 가슴에 '감사하는 나무'를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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