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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완

전 충청북도 중앙도서관장

어떤 이가 산중(山中) 설중매(雪中梅)를 보면 마음이 나아질 거라 했습니다.

입춘도 지난데다 추위까지 매서우니 올해는 어렵겠구나 낙담했는데, 우수절에 춘설(春雪)이 함박꽃 송이처럼 내려와 비탈 나무에서 한 송이 설중매를 찍을 수 있었습니다.

어제 대보름에는 아침 일찍 부럼을 깨물고, 가지치기한 매화 나뭇가지 서너 개를 가져다가 화병에 꽂아 창가에 두었더니, 따듯한 햇살에 백매(白梅) 두 송이가 수줍게 피었습니다.

반갑고 기쁜 마음에 음악도 틀어주고 문도 열어주며 재촉하였건만 날이 저물어도 탱탱한 꽃망울이 터지지를 않았습니다.

낙가산 위로 뛰어오른 보름달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더니 한 떨기 매월화(梅月花)가 멋지게 피어나더군요.

달도 좋고 꽃도 좋아라 암향(暗香)에 반하여 문을 열고 한참 넋을 놓았더니 코끝이 빨개져 쌍화탕을 데워 먹어야 했습니다.

낮에는 볕도 쪼이고 책도 보고 밤에는 달도 보고 음악도 듣는, 천목다실(天目茶室)로 이름한 베란다 탁자 위에 매화병을 앉히고 옆에는 헬리오트로프를 놓아주었습니다.

페루향수초라 불리는 이놈은 자색 꽃과 함께 헤이즐넛 향을 내뿜는데, 작년 11월 중순에 첫 망울을 터뜨린 후에, 1백일 동안 붉게 피는 백일홍처럼 아직도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아니나다를까요, 커피 냄새에 밤새 콧구멍을 벌름거렸을 매화 두 송이가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펴고 환하게 웃고 있더군요.

서산 위에서 주춤하고 있는 새벽 보름달을 그냥 보낼 수 없어 부랴부랴 상당산성에 올랐습니다.

동산에서는 해가 솟아오르고 서산으로는 달이 넘어가고 있는데, 어디를 향해 서야하나 망설이다가 남쪽을 바라보며 좌일우월(左右右月) 하였습니다.

옛날 같으면 당연히 임금이 계신 북쪽을 향했겠지만요….

밤새 세상을 밝히며 본분을 다한 둥근 달이, 태양에게 다음을 넘겨주고 조용히 구름속으로 들어가는 그 자태가 얼마나 의연하고 아름답던지요.

천상의 교대식은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상당산에서 내려온 듯한 어린 고라니가 제 앞을 가로질러 뛰어가더니 저만치 앞에 서서 한참을 빤히 쳐다보다가 산으로 올라가더군요.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집사람이 약밥한다고 사둔 견과라도 조금 넣어올 것을….'

"가난은 나라님도 못 구한다"며 문을 닫던 옛날 어느 매정한이 떠오르며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연꽃 가득하던 산 속 작은 연못에는 살얼음 밑으로 까만 개구리알들이 올망졸망하더군요.

며칠 안 남은 경칩이 지나면 올챙이가 되어 헤엄치겠지요.

오래전 우리 아이들이 유치원 다닐 때, 근교의 묵논에서 개구리알 채집하던 일이 생각나더군요.

어느새 그놈들이 장년이 되었으니 인제 그만 놓을 때도 됐으련만 이놈의 내리사랑은 어쩔 수가 없나 봅니다.

장끼는 늦잠을 자는지 덤불에서 나오지도 않고, 까투리들만이 낮은 소리를 내며 떼를 지어 날아가는군요.

저수지에서는 원앙 한 쌍이 바싹 붙어서 헤엄치고 있습니다. 꿩도 원앙도 수컷의 빛깔이 더 아름다운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겠지요.

나이 들수록 특히 남자는 자기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부애와 우정이란 나이가 일러서 시작하여 나잇살이 든 뒤에야 둥글어지는 것이라는데 나는 어떤가 반성해 봅니다.

단원은 그림 사례비를 받아 마음에 드는 매화와 술을 산 뒤, 친구들을 불러 매화를 감상하며 술을 마시는 매화음(梅花飮)을 즐겼다고 하는데, 제게 좋은 술이 한 병 있으니 좋은 시절이 돌아오고 매화가 꽃을 피우면 그리웠던 이들과 매화음을 즐길까 합니다.

잔 수는 세지도 말고 먹어야겠지요.

아쉬운 마음에 우선 붓 가는대로 매화서(梅花書:매화 편지)를 써봅니다.

새뮤얼 존슨이 90세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장례비를 얻기 위해 일주일 동안 밤새워 썼다는 《라셀라스》를 빌려와 애잔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기름 떨어진 자동차처럼, 잔고도 없는 통장처럼 밑천이 바닥나 글쓰기도 어렵던 차에, 책에 얽힌 사연을 알고 어머님 생각까지 겹쳐 저도 모르게 울컥했습니다.

26년 나이 차가 나는 이황과 기대승이 수많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맺은 브로맨스처럼, 화가 김환기가 김향안의 마음을 울린 다감한 편지처럼, 만일 저에게 애인이 있어 이 글을 재미나게 읽었노라고 한다면 그야말로 온 세상을 얻은 것 같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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