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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완

전 충청북도 중앙도서관장

"뜨르르륵…, 뚝딱…"

딱따구리의 나무 쪼는 소리가 아니다. 4월에는 아래층이 리모델링하더니 5월에는 위층에서 한다. 꽃들의 시절인데도 때이른 더위는 빨간 수은주를 높이뛰기 바처럼 끌어올린다. 콘크리트를 파헤치는 천공기 굉음에 내장이 뒤집히는 듯하고, 금속을 뚫고 자르는 소리에 골이 흔들리는 것만 같다. 속절없어 하면서도 한 달 도리로 처하다 보니 멍석에 둘둘 말려 두드려맞는 느낌이다. 이른 아침부터 점심, 저녁 시간에도 뚱땅거리는 소리에 짜증이 나다가도 조용해지면 외려 궁금해진다. 공사가 지연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우리 집도 리모델링 했잖아요."

집사람의 다독임에 가슴 한쪽이 뜨끔했다. 공사 기간에 여행을 다녀와 이웃들의 불편을 제대로 알지도 못했으면서 내로남불을 한 것이다. 적어도 30일은 넘게 견뎌야 하는 일이기에 그러려니 생각하니, 어느 때부턴가 박군의 드럼 치는 소리로 들리기 시작했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소음과 틈새를 파고드는 먼지는 게으른 집주인이 일찍 일어나 환기도 시키고 청소도 하게 만들었다. 엊그제 꺼낸 선풍기가, 문을 꼭꼭 닫고 엎드려 물걸레질하는 사람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그때 동유럽에 갔을 때, 식사 때마다 와인 한 잔을 곁들이며 쇼핑보다는 사진 찍기를 즐기는 우리 부부에게 "참 여유롭고 보기 좋다"던 가이드의 말이나, 얼마 전 태화강 국가정원에서 "두 분이 잘 어울려 사진을 찍어드리고 싶다"는 여중생들의 청을 받았던 것도 모두가 웃음을 잃지 않는 아내 때문일 것이리라. 팔순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 대통령 부부를 만났을 때 "우리는 'married up'한 남자들"이라고 했다. married up 은 '좋은 여성을 만나 결혼했다'는 미국식 조크다. 44년 동안 상원의원과 부통령을 역임한 50년 정치 노장의 내공에서 우러난 격의 없는 솔직한 표현 같았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부인들 중에 한두 명을 빼고는 괜찮은 분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전국을 여행하다 보니 경치가 좋은 곳에는 여지없이 절이 세워졌거나 정자(亭子)가 들어서 있었다. 사찰은 불상을 모시고 불도를 닦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펴는 곳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정자는 양반들이 놀거나 쉬기 위하여 지은 것으로 그들만의 전유 공간일 뿐이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옥산서원 뒤편에는 회재 이언적의 사랑채였던 독락당(獨樂堂)과 정자 계정(溪亭)이 있다. 보물로 지정되었지만 후손들이 거주하며 관리하고 있어 관람에 제한이 따른다. 일전에 갔을 때도 담 너머로 눈동냥을 하고는 당호(혼자서 즐기는 집)를 생각하며 발길을 돌렸다.

청주에는 남쪽의 청와대인 청남대(靑南臺)가 있다. 1983년 대청댐 부근에 준공된 이곳에서 역대 대통령들은 20여 년간 471일을 머물며 휴가 중 정국 구상을 했다. 일반 국민들은 반경 10㎞ 이내에 얼씬도 못하는 금단의 구역이었지만, 2003년 4월 18일 전면 개방된 이래 누적 방문객이 1천300만 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그리고 2022년 5월 10일. 서울의 청와대도 드디어 개방됐다. 홀로 즐기는 독락(獨樂)에서 함께 즐기는 동락(同樂)이 된 것이다. 서로 같이 살고 같이 즐기는 동생동락(同生同樂)의 상징이 되어 국민들 품에 안기리라 기대한다.

'토끼 효과(Rabbit Effect)'라는 게 있는데 사랑, 친절, 공감, 신뢰 등 여러 사회적 요인이 심신 건강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실제로 토끼를 쓰담쓰담하면 녀석은 물론 내 기분도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친절과 사랑은 아무리 써도 사라지지 않는 풍족한 자원이다. 함께하는 아름다운 사회를 고대하는 마음으로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서 뽑은 글을 정서(精書)해 본다.

"우리는 마치 두 발이나 두 손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아래위 눈썹이나 치아처럼 서로 협동하게끔 만들어졌으므로 서로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자연에 어긋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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