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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4.12.03 14:51:18
  • 최종수정2024.12.03 14:51:18

이재준

역사칼럼니스트

고대 성터와 절터만을 조사, 기와의 매력에 빠져 있던 필자에게 구석기 문화의 매력을 가르쳐 주신 분이 전 충북대 교수 이융조 박사(현.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장)이다. 1970년대 중반 필자는 성지전문가 고(故) 이원근 교수(강릉대)와 서원학회를 만들어 세계 최초 금속활자로 직지를 찍었던 고려시기 흥덕사지 위치를 찾으려고 힘을 쓸 때다.

어느 날 충북대 고(故) 조성진박물관장(후에 총장)으로부터 이박사를 소개 받았는데 필자 보다는 몇 년 연상이었지만 홍안의 미소년처럼 보였다. 1976년 여름 이박사는 청원두루봉에서 구석기 유적을 발견한다. 필자도 정보를 가지고 있었지만 충북대 공식발표만을 믿고 기다렸는데 그만 한국일보 강승원 기자가 먼저 특종을 하여 낙종하고 말았다.

그날 오후 씁쓰레 한 얼굴로 두루봉 현장으로 달려가 후속기사를 썼다. 이 것이 이융조 박사와 필자의 본격적 대면이었다. 두루봉은 해발 100m 산기슭에 위치한 석회암 동굴로서 20만년전의 선사시대 유적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신문들이 앞 다퉈 보도했지만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아쉬움을 준다. 지금 두루봉동굴유적이 남아있었다면 얼마나 훌륭한 관광지가 되었을까. 얼마 전에 문의에서 시민들이 1회 두루붕 물빛 축제를 열었다는 보도를 보았다.

필자는 일시 대전에서 근무했는데 1988년쯤 둔산 선사유적을 발견했다. 토지공사의 끈질긴 반대에도 불구 이를 현장을 일부 보존하는데 성공했다. 당시 이융조 교수와 중앙문화재위원이셨던 고(故) 손보기 박사의 노력이 있어 가능했다. 이박사는 필자의 견해에 무조건 동의하고 현장을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필자가 타 부서에서 일하는 동안 이박사는 단양수양개 유적을 발견, 한국선사문화사를 다시 쓰게 했다. 단양군 적성면 애곡리에 있으며 선사시대의 전 시대를 망라하는 유물이 출토된 세계적 유적이다.

1983~2015년까지 13차례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50개소의 석기 제작소와 약 10만여 점의 방대한 유물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조사 결과 우리나라 후기 구석기시대의 석기 양상, 제작 기법, 석기 구성의 다양성을 대표하는 유적으로 확인되었다.

이교수는 미국, 영국, 러시아, 일본, 이스라엘, 러시아, 폴란드 등지에서 열린 국제 학술대회를 통해 수양개 유적을 알렸으며 세계가 주목하는 유적으로 격상시켰다. 이교수가 60년간 쓴 논문은 한글, 외국어 모두 함하여 557편이나 된다.

4천년전 고양 가와지 법씨 유적에 이어 청주 미호천 소로리 유적에서 1만5천년전 볍씨를 찾은 것은 이교수의 위공으로 평가 된다. 세계 최고볍씨라고 자랑하던 중국 화북지방(1만500년전) 유적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놓았다. 한반도가 벼 재배의 기원지로 추정케 하는 일대 학술적 성과를 얻은 것이다.

지금도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장으로 현업을 관장하고 있는 이박사는 학문 연구에 대한 초심과 열정을 버리지 않고 있다. 필자의 제보가 있으면 반드시 연구원을 파견한다. 얼마 전에는 파주 민간개발 지역에서 필자가 찾은 구석기를 문화재청에 알려 유적을 발굴토록 했다. 층위가 매우 높은 지역으로 중요한 구석기 유적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이융조교수의 아호가 큰 호수를 지칭하는 '대호(大湖)'인 것을 이번에 알았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가진 '대호이융조교수의 연구 60년 세미나'를 통해서다. 청주를 제2고향으로 삼아 미호강을 사랑하여 아호를 삼은 것인가. 큰 호수와 같은 교육자다운 너그러운 마음과 학문을 향한 무한 열정이 아직도 넘친다.

그는 선사고고학계에서 세계적인 학자로 호칭되고 있다. 충북의 여러 학자 중 가장 큰 공로를 세운 교수로 기억 될 것이다. 대호선생의 만수무강을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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