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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5.02.05 14:48:14
  • 최종수정2025.02.05 14:48:14

이재준

역사칼럼니스트

지난주 설 연휴에 눈이 많이 내렸다. 전국이 꽁꽁 얼어붙은 눈 폭탄이다. 서설인가 했더니 사고도 많이 나고 부산 공항에선 비행기 화재 사고도 발생했다. 무안 사고에 이은 사고로 국민들이 놀란 가슴을 쓸어야 했다. 을사년 시작하자마자 왜 이리 사고가 많은가.

지인 한 분이 설날 연휴 시 한편을 보내주었다. 박노해 시 '그 겨울의 시'였다. 이 시를 보고 그는 아침부터 많이 울었다고 한다. 할머니 생각이 나서였다. 시를 익는 순간 내 마음도 먹먹해 진다.

문풍지 우는 겨울밤이면 / 윗목 물그릇에 살얼음이 어는데 / 할머니는 이불 속에서 어린 나를 품어 안고 / 몇 번이고 혼잣말로 중얼 거리시네 / 오늘 밤 장터의 거지들은 괜찮을랑가 / 소금창고 옆 문둥이는 / 얼어 죽지 않을랑가 / 뒷산에 노루 토끼들은 / 굶어 죽지 않을랑가 … 찬바람아 잠들어라 / 해야 해야 어서 떠라 / 한겨울 얇은 / 이불에도 추운 줄 모르고 / 왠지 슬픈 노래 속에 / 눈물을 훔치다가 / 눈산의 새끼노루처럼 / 잠이 들곤 했었네.

누구나 할머니에 대한 추억이 있겠지만 필자도 다섯 살에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하면 시인과 같은 심정이다. 할머니는 30에 청상이 되시고 40에 귀한 손주를 얻었다. 일본에 징용을 다녀 온 작은 아들이 뒤늦게 떡두꺼비 같은 순주를 낳자 온 동네 사람이 다 알아듣도록 '우리 집에 황소 낳네. 황소 났네'하고 담 너머로 외쳤다고 한다.

그래서 필자의 어린 시절 별명이 '황소'였다. 동네 형아들의 놀림이 되기도 했으나 할머니는 언제나 '우리 황소'라고 불렀다고 한다. 동네 어른들이나 친척들도 아버지는 황소애비, 어머니는 황소어미라고 불렀다.

할머니는 항상 나를 품에 안고 키우셨다. 박노해의 시에 나오는 할머니처럼 한시도 떨어 지지 않았다. 천방지축으로 까불고 노는 나를 할머니는 금이야 옥이야 길러준 것이다. 지금 같으면 며느리들에게 용납되자 않을 일이지만 보리밥도 자신의 입으로 씹어 먹였다고 한다. 아기가 이가 없어 체하기라고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셨다.

할머니 임종 직전 나는 그 앞에서 울며 보챘던 것 같다. 할머니가 나를 안아주지 않은 불만이었을까. 할머니는 어머니에게 '에미야 황소 울리지 마라. 울리지 마라' 당부하시며 운명하셨다고 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를 두고 어떻게 떠나셨을까.

어린 나는 대문가에 놓인 고무신과 사자 밥 그리고 검은 색 상여 뚜껑만 기억난다. 당시 그 상여와 사자밥이 왜 그렇게 무서웠는지 모른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초정 약수터 인근 비상국민학교에 다녔다. 집에서 약 오리, 왕복 4㎞ 거리였다. 다 헤진 내복에다 검은 고무신, 물들인 무명 교복하나만을 입고 학교에 다녔다. 눈이 많이 오는 날엔 발목까지 빠졌고 발은 얼어 터졌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 엄마하고 부르면 방안에서 어머니가 문을 박차고 나오셨다. '아이구 내 새끼. 우리 황소 어서 와. 얼마나 추었냐' 어머니는 화롯불을 숯을 담아 놓고 나를 기다렸던 것이다.

어머니는 빨갛게 언 손을 두 손으로 녹여주며 '추웠지?'를 연신한다. 그리고는 눈물을 글썽이며 얼어붙은 얼굴을 당신의 얼굴을 비볐다. 이 기억은 이미 고희를 넘은 지금 나이에도 잊을 수가 없다.

당시를 회고하면 폭설에도 하나 춥지를 않았던 같다. 눈에 빠져 십리 길을 왕래했어도 동상이 걸리지 않았다. 두 분은 고인이 되셨지만 눈 내리는 설날이면 따뜻한 사랑이 더욱 그립고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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