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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05.03 16:36:52
  • 최종수정2023.05.03 16:36:52

이재준

역사칼럼니스트

충주의 역사를 뒤지다 보면 잊을 수 없는 인물이 한 분 있다. 연산군 때 목숨을 걸고 실정을 간언하며 자신의 딸을 궁중에 들이라는 명을 거역하다 죽은 허백당(虛白堂) 홍귀달(洪貴達. 1438~1504)이다.

윤비 폐비사건당시 이를 반대하다 귀양을 간 한 홍귀달은 대쪽 같은 마음으로 임금에게 간언을 하다 죽음을 당했다. 평생 부귀영화를 누릴 관직 보다는 임금의 실정을 간언하는 것이 충신의 길이라고 생각한 때문이다.

홍귀달은 특별히 시를 잘 지었다. 동국여지승람을 보면 그의 시를 많이 접할 수 있는데 모두 주옥같다. 그 중에서도 충주에 대한 여러 시는 백미로 꼽힌다. 누구보다 충주의 아름다운 산하를 사랑했다.

'수려한 물 아름다운 산이 명승을 만들어 / 만가의 밥 짓는 연기 성 모퉁이를 덮었다 / 마루와 창은 사람이 신선의 집에 누어있는 듯 / 바람과 비는 하늘이 수묵의 그림을 이루었다 / 꽃 속에 회포를 읊으매 봄새가 화답하고 / 술 옆에서 잠이 들 매 미인이 부른다…(하략')

충주 객관에 있던 청연당에 올라가 감회가 깊었던 그는 기문을 써달라는 목사의 청을 뿌리치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중원의 산수를 칭찬한다. '중원은 산수의 뿌리이니 천지의 맑은 기운이 여기에 다 모였다'

충주시의 산수는 '국가 정원급'이다. 남한강, 달천, 정토산, 봉황산, 월악산의 산수가 중원을 에워싸고 있다. 신선이 살던 곳이고 선녀가 내려와 놀던 곳이라고 했다.

충주 포모대(泡母臺)에는 선녀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높이가 수십 장으로 속설에 전하기를 옛 적에 장미라는 선녀가 있었는데 스스로 포모라고 하고 항상 그곳에서 놀아 향기가 골에 가득했다' 는 것이다.

포모대는 충주시 대소원면 문주리에 있다. 1982년 충북도에서 간행한 전설지에 실려 있으며, 당시 이류면 문주리에 거주하는 노인들로부터 채록했다고 한다.

충주시가 지닌 또 하나의 값진 자산은 역사적 고도이다. 신라 부도인 중원경의 땅이고 고구려세력이 남하하여 근거를 삼았던 국원성의 고지이다. 고구려는 한반도에 유일하게 이 일대를 지배하변서 고구려비를 세웠다. 중국 국내성에 있는 광개토대왕비 다음의 중요한 국보적 유산이다.

신라는 더욱 중요시하여 가야 세력을 이주시켜 한강 공략의 거점을 삼았다. 달천변은 가야인들이 생거 한 곳이다. 견문산 탄금대는 우륵이 가야금을 완성한 역사적 명소다. 경치도 아름답거니와 천수백년 민족의 음악이 흐른 곳이다. 가장 정확한 가야금음악의 성지로서 역사적 명소이기도 하다.

필자와 한국역사유적연구원 조사단은 지난 2월 '아리랑 고개'의 실재를 충주시 달천변에서 확인했다. 진도아리랑 가사에 나오는 '문경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야 눈물이 난다…'의 출생지를 찾은 것이다.

그 고개가 바로 충주시 용관동 달천 변에 있다. 아리랑 고개에서 문경새재를 바라보면 가사처럼 너무나 높아 눈물이 나올 지경으로 와 닿는 곳이다.

충북도와 충주시는 국가가 직접 조성하고 운영하는 최초의 국가정원을 조성하겠다며 정부예산 확보에 나섰다. 충주시 금릉동 일원(세계무술공원~용섬 50㏊)에 한반도 중심정원 등 5개 대표 테마정원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이의 추진은 만시지탄이 있지만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조길형 충주시장이 앞장서 열심히 뛰고 있다는 소식이다. 아름다운 산수, 풍부한 문화유산의 보고, 충주시의 국가 정원 지정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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