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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12.06 15:38:15
  • 최종수정2023.12.06 15:38:15

이재준

역사칼럼니스트

신라향가 가운데 '풍요'라는 노래가 있다. 신라 선덕여왕 때 영묘사 조각가 양지가 지은 것이라고 한다. 양지의 작품으로는 사천왕사지에서 나온 벽돌이 있는데 정교하고 미려하다.

삼국유사에는 양지는 '지귀'로 기록된다. 영묘사 불사를 하면서 여왕도 사찰에 자주 들렀던 모양이다. 그는 아름다운 선덕여왕을 실지 본 이후 짝사랑을 하다 상사병에 걸렸다.

지귀가 병으로 앓아 죽어간다는 말을 전해들은 여왕은 영묘사에 직접 출행했다. 그리고는 자리에 누운 지귀를 보고 자신의 팔찌를 빼 가슴에 놓아준다.

젊은 예술가가 자신을 상사하다 병을 얻었다는 것을 알고 감동한 것인지. 아니면 영묘사에 자주 들르면서 지귀를 대하고 맑은 영혼을 가진 청년을 가슴에 넣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여왕이 상징과도 같았던 금제 팔찌를 빼 지귀의 가슴에 놓아준 것은 백성을 사랑한 이상이다. 초췌한 청년을 보고 측은한 마음으로 지귀의 쾌차를 염원했을지 모른다.

이날 지귀의 가슴에선 불이 일어나 영묘사를 태우고 말았다. 지귀가 여왕을 위해 '소신공양(燒身供養)'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을 받았으니 더 바랄 소망이 없었던 것인가.

소신공양은 묘법연화경에 '약왕보살이 향유를 몸에 바르고 일월정명덕불(日月淨明德佛) 앞에서 보의(寶衣)를 걸친 뒤 신통력의 염원을 가지고 자기 몸을 불살랐다'는 데서 유래한다. 경전은 이를 찬양하여, '참다운 법으로 여래를 공양하는 길'이라고 했다.

선덕여왕은 속전에 본래 남자였는데 불법을 위해 여성으로 태어나 스스로 '여래'라고 했다. 향가 풍요는 '여래가 오시네. 여래가 오시네. 슬픈 눈물을 거두고 함께 공덕을 비세'라는 가사로 되어 있다.

선덕여왕도 오래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유언으로 도리천에 묻어달라고 했다. 왕실에서는 이 유언의 내용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나중에 도리천이 사천왕사가 있는 낭산이라는 것을 알았다. 여왕의 능은 사천왕사가 내려다보이는 경주 낭산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사천왕은 불법을 수호하는 신이다. 여왕은 양지가 만든 사천왕사 양지의 수호를 받으며 다음 생을 염원한 것인가. 차생에서는 양지를 만나 자유로운 사랑을 하고 싶은 소망을 가졌었는지 모른다.

한국불교 지도자 자승스님이 소신공양으로 입적했다. 스님은 지난 2010년 소신공양으로 입적한 문수스님을 추모하는 행사에서 참석, 의미심장한 법어를 했다.

'내 한 몸 희생하여 다른 생명들을 구할 수 있다면 이 육신을 태워 불보살님과 법계 중생 모두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이 불자의 길'임을 피력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사회 곳곳에 남아있는 악습을 버리고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과 함께 일어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자승스님은 친필로 '생사가 없다 하니 생사 없는 곳이 없구나. 더 이상 구할 것이 없으니 인연 또한 사라지는 구나'라는 유서를 남겼다.

자승은 두 번이나 조계종 총무원장을 역임한 한국불교계의 걸출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우파정치를 지지하면서 반대세력의 비판을 받아왔고, 조계사를 나와서는 머리를 조금 길게 하고 다닌 것을 고발한 단체도 있다. 나날이 신도가 줄고 있는 것을 걱정한 자승은 소신 직전에도 불교중흥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구할 것이 없는 세상은 희망이 없는 세상이다. 답답하고 암흑과도 같은 삶이 아닐 수 없다. 할일이 산적한데 일찍 목숨을 끊고 영면을 선택한 자승스님은 자신에 대한 비난과 불교계의 현실에 절망한 것은 아닌지. 스님의 쓸쓸한 영정을 보며 고개 숙여지는 겨울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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