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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02.15 17:17:56
  • 최종수정2023.02.15 17:17:56

이재준

역사칼럼니스트

지난 일요일자 본지에 실린 영동군 SNS 서포터즈가 쓴 황강면 월류봉 글이 눈길을 끈다. 월류봉은 경치가 아름다워 달도 머물다 간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언제인가 서울의 한 등산객이 백화산 반야사에서 월류봉 풍경을 내려다보고 '세상에 이런 경치도 있구나' 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월류봉은 정말 아름다운 곳인가. 이곳 지리를 보면 초강천과 석천 두 개 물줄기가 만나는 합수머리다. 초강천을 거슬러 오르면 황간면 소재지가 나오고, 석천 물줄기를 따라가면 고찰 반야사를 만난다.

여지승람을 찾아보니 재미난 기록이 있다. 바로 월류봉은 '심묘사(深妙寺) 팔경'의 하나로 기록된다. 심묘사는 바로 월유봉 아래에 있던 통일 신라 때 고찰이다. 절은 폐사 되었고 지금은 기와편 만이 뒹굴고 있다.

심묘사 팔경은 사군봉, 월류봉, 산양벽, 용연동, 냉천정, 화헌악, 청학굴, 법존암이다. 이곳을 자주 찾았던 필자도 생소한 이름이 있다. 바로 '한천팔경'의 별칭으로 영동군 홍보자료에도 '심묘사 팔경'이란 설명도 붙였으면 한다.

심묘사는 매우 유명한 절이었다. 서라벌 왕실의 비호를 받았던 무염국사(無染國師. 801∼888 AD)가 있던 사찰이었다. 무염은 보령 성주산문을 개창한 고승으로 서라벌에 자주 불려 다닌 탓에 왕실에서 심묘사를 지어 머물게 했던 것이다.

기록을 보니 신라 문성왕, 헌안왕, 경문왕, 헌강왕, 정강왕, 진성여왕 등 여섯 왕이 모두 그를 존경하여 법을 물었다고 되어 있다. 무염국사가 서라벌에 초청을 받아 법문할 때는 왕실 가족들은 물론 왕경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원장(圓藏), 영원(靈源), 현영(玄影), 승량(僧亮), 여엄(麗嚴), 자인(慈忍) 등 고승이 그의 선풍을 선양하여 성주산문의 기반을 세웠다. 보령 성주사에 있는 무염국사비는 신라 말 최고의 문장가 최치원이 지은 것이다.

심묘사 절터를 처음 찾아 조사한 분은 전 단국대 박물관장 고(故) 정영호 박사였다. 심묘사터가 경상도 땅에 있는 절터로만 알고 있었으나 이 유적을 황간에서 찾고 기뻐했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황간은 본래 경상도 경산부에 속해 있었는데 조선 태종 때 충청도에 예속되었다.

필자도 70년대 후반 이 절을 답사하여 월간지 공간(空間) '한국의 페사' 시리즈에 글을 썼다. 당시 이 절터에서 찾은 와당은 아름다운 통일신라 보상화문이었는데 무염국사 시기 왕찰(王刹)임을 증명하는 유물이었다.

고려 인종 때 이곳을 지났던 재상 이지명(李知命. 1127~?)은 멋진 시를 남겼다. 여지승람 황간현 제영조에 있는 한 구절은 바로 '월류봉'을 지칭한 것으로 짐작된다. 시의 원문을 찾지 못해 아쉽기만 하다.

'여러 봉우리 구름 받쳐 솟아있고 / 맑은 냇물 돌에 부딪쳐 흐르네…'

더 이상의 췌사(贅辭)가 필요 없었던 모양이다. 화양동에 은거했던 우암 송시열도 이 경치를 사랑하여 별당을 짓고 유유자적했다. 우암이 지은 별당이름이 바로 한천정사(寒泉精舍). 주자가 어머니 묘소 곁에 한천정사(寒泉精舍)를 세우고 담론했다는 고사에서 따온 것이다. 심묘사 팔경이 이 시기에 한천팔경으로 바뀐 것인가.

지금은 이름마저 잃어버린 통일 신라고찰 '심묘사' 유적도 문화재당국의 관심이 따라야 야 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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