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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07.19 16:29:24
  • 최종수정2023.07.19 16:29:24

이재준

역사칼럼니스트

거문고는 고구려 재상 왕산악이 만들었다고 한다. 중국 고대 악기 칠현금(七絃琴)을 개조했다는 기록이 있다. 가냘픈 가야금 소리에 비해 우아하며 둔중한 소리가 특색이다. 문인들의 반려로 가객들의 풍류 음악을 대표해 왔다.

가야금은 12줄인데 반해 거문고는 여섯 줄이다. 오른손에 쥔 술대로 줄을 쳐서 연주를 한다. 거문고를 또 '현학금(玄鶴琴)'이라 부르는 데 왕산악이 거문고곡을 작곡하여 왕에게 바칠 때 검은 학이 날아들었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것이다.

거문고는 고구려에서 만들었으나 명인은 신라에서 나왔다. 서라벌의 가난한 예인 백결 선생은 명절이 되어 떡을 만들지 못하자 아내에게 방아 찧는 소리를 연주하여 상심을 위로했다. 거문고 방아타령은 천여년 역사를 지녀온 음악이다.

많은 문인 사대부들이 거문고를 사랑했으나 이를 정작 악보로 정리하여 남긴 이가 바로 조선 인조 때 청주 옥화대의 주인이었던 서계(西溪) 이득윤(李得胤 1553-1630)이다. 서계는 거문고 음악을 올바르게 계승시키기 위해 혜안을 가졌던 인물이다.

서계는 괴산군수를 역임했으나 농사장려를 주장한 실학자였다. 역학자로도 존경을 받았으며 청주서원(신항서원)에 배향 된 인물이다.

필자는 서계 문집을 뒤지다 거문고 시 한수를 찾았다. 문집 권지1 '시 칠언절구' 첫 머리에 있는 시는 '고금(鼓琴.거문고를 타다)' 이었다.

세상은 봄 여름 가을 변화가 있지만 / 거문고 소리는 약속이나 한 듯 그대로 이네 / 광풍헌에 깃든 세속 얼마나 될까 / 오직 옛 것을 그리는 마음은 그대로인데 (舒則爲陽會則陰 / 一張深契兩依音 / 光風軒上塵幾少 / 只有無爲太古心) (필자 의역)

옥화대 누대에서 친구들을 만나 거문고를 탄주하며 풍류를 즐긴 서계. 그 소리에 취해 사시 사철변화는 세상에도 옛 음을 간직한 거문고소리를 예찬한 절구라고 하겠다.

청주 미원 '옥화구곡'도 서계의 작품이다. 행장을 보면, 서계는 이황의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을 본받아 '서계육가(西溪六歌)'와 '옥화육가(玉華六歌)'를 지은 것으로 돼 있다. 그리고 옥화동에 춘풍당(春風堂), 추월헌(秋月軒) 등을 짓고 학문과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거문고를 공부하는 학도들이나 국악을 전공하는 학자들은 서계를 잘 안다. 이 분도 우륵이나 박연과 더불어 충북의 악성으로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지역대학에서 서계문집의 번역과 인물에 대한 연구를 해 줘야만 한다.

우리 국악은 이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으로 정평을 얻고 있다. 외국의 명문대학 졸업 여성들이 무작정 한국에 입국하여 판소리를 공부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고국으로 돌아가 한복을 입고 공연을 한다.

유트뷰를 보면 한국의 젋은 소리꾼들이 파리, 런던 등 거리에서 즉석 공연을 하여 관심을 끌기도 한다. 이러한 국악인들의 도전이 한국음악에 대한 열기를 북돋고 있다.

우리나라 3대 악성의 한분인 난계 박연선생의 고향 영동군이 올해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2025 영동세계국악엑스포'를 추진한다고 한다. 충북지사와 영동군수도 앞장서 뛰고 현 정부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소식이다.

필자는 수년 전부터 우륵의 가야금 성지 탄금대, 난계 박연의 심천 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주장해 왔다. 지정이 된다면 옥화대도 함께 등재 돼야 할 것이다. 난계의 종묘제례악이 이미 등재 된 만큼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충북도가 국악 전문가들로 구성 된 TF 팀을 꾸려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번 '영동 세계국악엑스포' 실현에 도민들의 결집 된 관심과 응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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