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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

역사칼럼니스트

조선시대 명인들이 외가에서 많이 출생한 것은 당시 사녀가 임신하면 일정기간 친정으로 돌려보냈던 습속 때문이었다. 시부모가 임신으로 고생하는 며느리를 친정에 보내 친 어머니의 상관을 받도록 배려한 것이다.

율곡 이이(栗谷 李珥)는 파주가 고향이면서 모친의 친가인 강릉 오죽헌에서 태어났다.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도 회덕이 고향이면서 외가인 충북 옥천에서 출생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청주 낭성이 고향이었으나 대전 회덕에서 태어났다.

지자체 들이 위인 명인들의 고향을 아전인수 격으로 주장한다. 심하게 다투는 진풍경도 연출한다. 강릉 오죽헌엘 가면 관광객들에게 율곡이 강릉 출신임을 각인 시키고 있다. 파주시도 현창 사업을 하느라 율곡이름을 딴 습지공원도 만들고 야단법석이다. 우암의 경우도 충북과 대전이 서로 자기네 지역 출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류들이 자신이 태어난 고향보다는 처향을 선택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부인이 편하기 때문이다. 조선 명종 대 학자 대곡 성운(大谷 成運)은 낙향하여 부인 김씨의 고향인 보은 종곡에서 숨어 살았다. 임금이 여러 차례 불렀으나 벼슬을 받지 않았다.

대곡이 은거한 종곡은 속리산이 가까운 곳으로 처향을 떠나지 않은 것은 바로 산세의 아름다움이다.

우거진 나무 둘러싸니 한낮에도 어둑하고 / 조용한 가운데 물소리와 새소리가 서로 다투네 / 길이 막혀 올 사람 없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 어여쁜 산 구름이 길 가는 나들목을 가로막았네

대곡은 자신이 거처하는 집을 '사암(斯庵)'이라고 지었다. 처가에서 모두 학당을 지어주고 공부에만 전념토록 했다. 금슬이 좋았던 부인 김씨의 내조가 없었으면 이루어 질수 없는 일이었다.

존경 받은 학자가 시골로 낙향을 하였으나 대곡에는 당대 석학들이 앞을 다투어 찾아왔다. 당대 최고의 학자로 숭앙받는 남명 조식(曺植)은 지리산에서 일주일을 걸어 종곡에 왔으며 화담 서경덕(徐敬德)은 개성에서 수 십일 걸어 종곡에 왔다. 여름 휴가철에는 많은 조정 대신들이 성운에게 달려가 조정이 텅 비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황진이를 사랑하여 무덤에 잔을 부운 풍류 시인 백호 임제(白湖 林悌)는 달랑 거문고 하나만을 어깨에 메고 찾아와 대곡의 제자가 되었다. 대곡이 운명했다는 소식을 들은 동고 이준경(李浚慶. 당시 영의정)은 '별은 종곡에 떨어졌다'고 탄식했다. 조선 유학사 산림학맥을 이룬 종곡,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기념비라고 하나 세울 만한데 이런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국민의 힘 윤석렬 대선 후보가 지난 주 외가인 강원도를 방문했다. 많은 인파가 윤후보를 환영했으며 시장 건어물 가게 앞에서는 구순이 넘은 이모할머니와 재회하는 모습도 보였다.

윤후보는 '강릉은 제가 어릴 적 방학 때마다 와서 지낸 곳이고 가장 추억, 애정이 깃든 곳'이라고 말했다. 어머니의 고향 외가는 누구에게나 추억이고 그리운 곳. 모처럼 활짝 웃는 윤후보의 얼굴에서 정치를 잠시 잊은 듯한 동심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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