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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숙

동광초 교장

한 번은 함께 영어 수업을 하던 원어민교사 필리파를 집에 초대했다. 우리나라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웬만한 한글을 읽고 이해했다. 마침 아파트 입구 트럭에서 오징어 횟감을 팔고 있었다. 필리파가 걸음을 멈추더니 광고 현수막에 적힌 문구를 띄엄띄엄 소리내어 읽었다.

"산∨오∨징∨어 3마리에 만∨원"

슉슉 헤엄치고 있는 오징어를 쳐다보며 말하기에 오징어회를 맛보고 싶냐고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한국에서는 오징어를 산에서 키우냐고 했다. 뜻밖의 질문에 박장대소했다. 외국인인 그녀는 산오징어의 '산'이 '살아있는'이 아니라 'mountain'으로 보였던 거다. 내가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음을 느끼게 했다.

오래전 아이들을 키울 때 일이다. 첫째 아이의 알림장에 적혀있는 준비물 목록에서 교사인 나도 도무지 알 수 없는 단어를 발견했다.

"인형 1개, 받아쓰기 공책, 주사위, 산가지……."

산가지가 뭘까? 산에서 가지를 꺾어 가져오라는 건가? 보라색 가지를 말하는 건가? 늦은 밤 딸아이는 준비물을 다 챙겨야 한다며 보채는데 알 수 없는 단어 때문에 난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처럼 모든 것을 스마트폰으로 바로 검색할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음을 미리 밝혀두는 바다. 늦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저학년 담임인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산가지는 초등학교 저학년이 수개념을 공부하거나 덧셈과 뺄셈을 배울 때 활용하기 위해 나무로 만들어진 묶음 나무라고 했다.

이 단어는 나만 곤경에 빠뜨린 것이 아니었다. 중학교 교사인 지인의 전화를 받았다. 늦은 밤에 미안하다는 말로 첫마디를 시작하더니 그간의 어려움을 속사포같이 쏟아놓았다. 도대체 1학년 아이들의 학습준비물을 보면 알 수 없는 것 투성이다. 산가지가 뭐냐? 듣도 보도 못한 말 아니냐? 살아있는 나뭇가지냐? 그걸 어떻게 구하냐? 산에서 가지를 꺾어오느냐? 등등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줄줄이 질문과 추측을 뱉어냈다. 학부모 노릇을 하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팍팍 느껴졌다.

나는 산가지를 설명하고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똑똑한 학부모의 팁도 함께 알려줬다. 아이들의 준비물은 초등학교 앞 문구사에 가면 다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요즘은 그럴 필요도 없다. 학교에 학습준비물 예산이 편성되어 있어서 이것저것 교사들이 미리 준비해서 가르친다. 이것으로 학부모님들의 수고와 준비물로 당황해하는 일들은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듣도 보도 못 했다던 산가지(算가지)는 산목(算木)·산대·산책(算策)이라고도 한다. 중국에서 처음 사용된 것으로 전국시대의 화폐에 산목숫자가 나타나고, ≪도덕경≫에 "수를 잘하는 사람은 산목을 사용하지 않는다"라는 기록도 있다고 백과사전에 나와 있다.

흔히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어서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당연히 모를 것 같은 것에는 설명이 필요했는데 그게 빠졌다.

교사들 사이에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아이들 학년에 따라 부모님의 수준을 생각하면 된다는 것이다. 학부모님들이 들으면 노발대발할지도 모르겠다. 그리 노할 필요는 없다. 성인으로서의 지적 수준을 판단하는 말이 아니다. 학부모로서의 경험을 말하는 거다. 저학년일수록 특히 1학년 학부모님께는 마치 처음 입학한 신입생처럼 자세히 친절하게 설명하고 안내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이들이나 학부모들이 어떤 지점에서 궁금해하고 의아해할지 세심하게 살펴야 혼선이 없다. 당연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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