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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완

전 충북도 중앙도서관장

어제는 아내와 둘이서 김장을 하고 오늘은 경북 문경으로 김장여행을 다녀왔다.

달동네 시절에는 동장군이 오기 전에 겨울 치 구공탄도 들여놓고 김장까지 끝내야 비로소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김장을 마치면 늘 "발 뻗고 잘 수 있는 부자가 됐다"며 좋아하는 아내이건만, 내 손을 점점 더 많이 필요로 하는 모습에서 덧없는 세월이 느껴지기도 한다.

9시쯤 도착한 곳은 문경에서 가장 먼저 세운 사찰로 전해지는 대승사였다.

국보 1 점과 보물 3 점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입장료(국가지정문화재 관람료)는 물론 주차료도 받지 않는다.

산속 절집의 인심이 뒤쪽 사불산처럼 넉넉하다.

대웅전 정면의 14짝 모든 문과 측면의 출입문, 광창에까지 아로새겨진 꽃살문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다 꽃살문에 해 단 예쁜 받침쇠와 문고리를 보고는 헉! 하고 말았다.

어느 장인의 솜씨인지 그야말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절묘한 기예(技藝)다.

어릴 적 한겨울 새벽에 오줌이 마려워 마당에 나가면, 달은 어제보다 더 크고 별들도 더 많아 금방이라도 떨어져 내릴 것만 같은데, 바닷가 덕장의 동태처럼 꽁꽁 얼어 덜그덕거리는 빨래 소리에 놀라 진저리를 치다 말고 방으로 뛰어들다 보면, 성에꽃이 하얗게 핀 바깥 문고리가 손에 쩍 들러붙어 또 한 번 화들짝 놀라곤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대웅전 문고리를 가만히 잡아 본다.

'선방의 문고리만 잡아도 지옥고(地獄苦)는 면한다고 했으니….'

홍송(紅松)이 보기 좋은 숲길을 내려와 수덕사 견성암, 오대산 지장암과 함께 3대 비구니 선원으로 유명한 윤필암에 들르고, 산 중턱에 있는 사면석불까지 오른 후 맞은편의 묘적암으로 향했다.

묘적암은 고려 나옹화상의 출가처이자 성철 스님이 정진했던 곳이다.

까풀지고 굽이진 산속 길엔 낙엽이 수북이 쌓여 큰 눈이 내렸을 때처럼 발이 푹푹 빠진다.

길을 넓히기 전에는 사람들이 서로 끌고 당기고 하여 생선꿰미처럼 대열을 지어 올라갔을 것이다.

미수 허목은 여든 셋에 관악산 연주대를 올랐다는데, 우리는 아직 청춘이다!

묘적암 앞마루에 앉아 눈앞으로 펼쳐지는 사불산의 풍경을 바라보는 아내의 뒷모습을 찍어주는 것이 이번 여행의 첫 번째 목표였다.

"뒤쪽이 진실이다.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는 미셸 투르니의 말처럼, 조용히 자연을 관조(觀照)하는 나이 든 여인의 뒷모습이 진정으로 고맙고 멋지다.

"팔만대장경 전체를 똘똘 뭉치면 마음 심(心)자 한 자 위에 있다"는 성철 스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암주(庵主)도 산새도 자리를 비켜준 둘만의 암자에 앉아 나옹화상이 지었다는 가사를 읊조려본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돌아가는 길로 빠른 고속도로 대신 한적한 지방도를 택한 것은, 오래전에 떠나온 고향 땅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더 가까이 지나고 싶어서였다.

도로변 소나무 아래서 사과를 파는 아주머니가 있어 차를 세웠다.

옆 동네가 고향이라는 말에 사과 몇 개를 덤으로 주고 양은솥에서 옥수수까지 한 봉지 싸준다.

고향이라는 것은 우리가 떠나온 곳인 동시에 우리가 찾아가는 곳이라고 했던가.

적어도 한 달 동안은 아침에 사과를 먹을 때마다 고향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여행의 곳으로 산사를 찾는 이유가 있다. 명산에 속됨을 묻고, 맑은 물에 망녕됨을 씻어내며, 절집에서 번잡함을 피하고, 부처님에게서 뜻을 깨닫기 위해서다.

예전에 어느 암자의 높은 재래식 해우소에 들어가 쪼그리고 앉았다가 눈높이에 써놓은 한자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照顧脚下(조고각하: 발 밑을 잘 보라!)'

자기 자신부터 돌아보고 반성하라는 사자성어인데, 불교에서는 밖에서 깨달음을 구하지 말고 자신에게서 구하라는 의미로 쓰인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었다. 오늘도 조고각하를 하며 여행을 마무리한다.

'하고 싶은 대로 하더라도 말은 한 마디라도 더 적게 할 것. 발길 닿는 대로 가더라도 길은 한 걸음 양보할 것. 쓰고 싶은 대로 쓰더라도 글은 한번 더 살펴볼 것. 그리고 옛날에 지켜진 도리를 행하며 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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