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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범

시인

집이 물결을 따라 어디론가 떠나가고 있다. 롱손 섬 주변의 바다는 수위가 낮아서 사람들이 물 위에 집을 짓고 산다. 대부분 콘크리트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건물을 지은 형태의 것이다. 육지와의 사이가 좁은 지형이어서 파도에 큰 영향을 받지 않으나, 썰물과 밀물의 차에 따라 집 주변의 수위는 바뀐다. 물결의 잔잔한 흐름을 가만히 바라보면 집은 물결과 함께 조용히 먼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듯하다. 마치 추상화 속의 집이 유랑을 떠나는 듯이 보인다. 숲에 둘러싸인 해수면은 늘 고요하고 잔잔하지만, 물속의 세계는 변화무쌍하고 생명은 끊임없이 자라나 생태계를 이룬다. 물 위에서 잠을 자면 어떤 기분이 들까. 외로이 흐르는 물 위의 집은 위태로워 보이기도 하고, 안락해 보이기도 한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팔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여

다 못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 섬집 아기, 한인현 요,

불현듯 스치는 노랫말이다. 어린 시절에 많이 부르던 노래 가사로 우리에게 익숙한 7.5조의 전통적 음률이다. 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작시가 발표된 것은 1946년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일제의 압박에서 벗어난 지 1년 후쯤이다. 당시의 삶은 매우 곤궁하고 어려웠을 것이다. 노랫말은 어촌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아이가 잠들기 전에 굴을 따러 가야 했던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이를 두고 가는 게 불안하지만, 바닷가로 나가 굴을 따야 살아갈 수 있으므로 어쩔 수 없다. 결국, 일하던 엄마는 <갈매기 울음소리에 놀라 차지 않은 굴바구니를 들고 모랫길을 달려> 온다. 동요지만 실상은 고단하고 애처로운 어촌 마을의 풍경과 서민 삶의 굴곡을 담고 있다. 굴을 따는 어촌의 삶은 이곳도 마찬가지이리라.

이곳 사람들에게도 바다는 땅과 다름없는 공간이고 생활의 터전이다. 이들 대부분 양식업을 하며 사는데, 특히 굴이 일품인 것으로 유명하다. 치즈를 올려 구운 굴은 독특한 향과 맛을 가지고 있다. 굴 양식장에서는 줄로 매달아 놓은 굴이 자라고 어류 양식장에서는 싱싱한 물고기들이 춤을 춘다. 이곳 사람들은 양식업 외에도 낚시터 제공, 관광 가이드, 해산물 위주 식당 등을 운영하며 살아간다. 매우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실상 이곳에 사는 사람 중에는 육지의 삶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이 완전하게 자신의 삶을 사랑하기란 어렵다. 어쩌면 자신의 삶을 완벽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늘 모순 속에 있기 마련이고, 매일 일어나는 타인과의 갈등, 욕망과 환경과의 갈등 속에서 헤매는 경우가 많다. "나는 왜 이런 삶을 사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 수없이 던지기도 한다. 어떤 이에게는 즐겁게만 보이는 이곳의 삶 역시 치열함과 뜨거움을 감추고 있다. <떠나고 싶다>는 한 여인의 말이 물결을 따라 표류한다. 그래, 우리의 삶은 늘 어디론가 떠나고 다시 돌아오며 교차하는 것이리라.

매일 다리를 건널 때마다 보는 물 위의 집. 랑베(Lang Be)에 고요하고 아름다운 저녁이 밀려온다. 썰물이 지난 자리에 목책처럼 이어진 양식장이 드러난다. 지는 태양 빛이 바다에 부딪혀 튕겨 오르고 집은 떨어지는 햇살을 받아 깊은 그림자를 물속에 드리운다. 남쪽의 뭉게구름이 물빛에 아롱거리며 흩어진다. 바다는 밀려오고 밀려가면서 모래톱에 남아있던 시간의 흔적을 지운다. 랑베의 사람들은 바다 노래를 부르며 자신들의 삶을 지켜나갈 것이다. 아이의 목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웃음이 바다에 환하게 울려 퍼진다. 저 웃음소리가 점점 커져서 세상을 온통 덮었으면 좋겠다. 조용한 물결 위로 파동이 인다. 노을이 주홍 물감을 풀어 하늘에 색칠한다. 맹글로브가 바다 깊숙히 굵고 힘찬 뿌리를 내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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