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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화

고명재활의학과 원장

1998년 12월에 치러진 의사 국가시험에 통과한 필자는 이듬해 봄, 모교병원 인턴지원 대신 수원 51사단 신병교육대에 입소하여 군사훈련을 받았다. 근시에 난시가 겹쳐 의무사관후보생 신체검사에서 탈락한 경우에는 군의관 지원이 불가하고, 전공의 수련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공중보건의사로 편입한다는 병무 규정에 따른 조치였다. 4주간의 군사훈련(군의관 장교 훈련 기간은 8주 이상임)을 마치면서 나의 소속은 국방부에서 당시 내무부로 이관되었고, 그때부터 만 36개월의 의무 복무기간이 시작되었다. 이후 열흘간의 성남 공무원연수원 교육을 통한 연수 평정과 군사 훈련 성적을 합산한 결과로 3년간의 근무지가 결정되었는데, 이렇게 하여 배정된 첫 근무지는 경상북도 울릉보건의료원, 근무부서는 응급실이었다.

전년 대비 의료원 응급실 근무 의사 T/O가 다섯에서 두 명으로 줄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울릉도에 도착한 직후였다. 월요일 아침부터 수요일 저녁까지 응급실 콜을 받으며 나의 의사로서의 인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온통 새로움으로 가득 찬 그해 봄이 지나고 여름이 다가왔다. 오전 오후로 포항과 묵호항에서 출발한 선플라워호와 오션플라워호가 하루 천오백 명이 넘는 여행자들을 울릉도의 관문인 도동항에 쏟아놓기 시작했다. 북적이는 환자들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힘들었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젊음과 패기라는 단어로 설명할 시기를 말하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때를 꼽는다. 매주 월요일 오전 9시 인수인계를 하고 다음 인수인계 타임인 수요일 오후 6시까지 구내식당도 없던 의료원에서 스스로 삼시 세끼를 챙겨 먹으며 꼬박 응급실 환자 콜을 받느라 야간에는 토막잠을 자면서 보내던 57시간 연속근무는 가히 살인적이었고, 여기에 상상을 초월하는 뱃사람들의 드센 성정은 보너스였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함께할 수 있는 여름, 가족을 포함해 세 팀의 손님들을 연속하여 치르고 나니 성인봉에서 시작된 단풍이 섬 전체를 감싸듯 덮어나갔다. 봉래폭포와 나리분지의 형형색색 아름다운 가을 정경에 도취해있던 때에는 여행 성수기도 끝이 나고 응급실 업무에 약간의 여유가 찾아온 상태였다. 마침 경북도지사께서 고생하는 울릉도 소속 공보의 선생들을 위로하고자 행정선 한 척 운용을 허하여 독도에 다녀오는 영광을 누려보기도 했는데, 그날 독도 앞바다에서의 스노클링은 평생 잊지 못할 공보의 생활의 추억이 되었다.

문제는 단풍이 절정을 이룰 때 시작되었다. 가슴 깊은 곳이 특별한 이유 없이 답답하고, 모든 일에 무기력함을 심히 느끼게 되었다. 우울증이었다. 업무 자체는 힘들었지만, 반년 동안의 응급실 당직은 문제없이 적응한 상태였고, 기온이 내려가면서 섬을 찾는 여행객 환자 로딩도 줄었는데 왜 우울증이 찾아온 것일까. 당시엔 그게 우울이라는 것조차 알지 못했고, 혼자 냉가슴 앓듯 빠져나오려 안간힘을 썼던 힘든 시기를 보냈는데, 지금 돌아보면 누적된 번아웃 증후군(Burn out syndrome)의 잠재적 증상의 표출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다행스럽게도 2000년 뉴밀레니엄을 여는 새해가 밝아오고, 당시 오지 근무자에게 주어지던 근무지 도간 이동의 기회를 통하여 2월부터 청원군 소속 보건지소로 근무처를 옮길 수 있었는데, 나의 우울 증상은 특별한 치료가 없었음에도 봄볕에 눈 녹듯 내 인생에서 그렇게 떠나갔다. 그리고 그해 가을 시드니올림픽 개막식이 있던 날 만났던 한 아가씨와의 연을 이어 지금까지 그녀와 함께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내 마음속 우울이 희망으로 바뀌게 된 것은 아마도 새천년의 새해를 맞이하던 2000년 1월 1일 새벽부터였을 것이다. 그렇다. 매일 떠오르는 그 해는 분명 어제와 같은 해일진대, 우리는 새로이 시작된다는 것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또 다짐한다. 나는 믿는다. 그 새로움에 부여된 의미의 중요성을 그리고, 열하루 지난 뒤에 다시 떠오를 의미심장할 그 태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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