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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6.04.19 14:59:57
  • 최종수정2016.04.19 15:00:14

정순규

충주수안보파출소 경위

봄볕이 사위어가는 황혼 무렵, 한 노부부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치안센터 문을 열고 황급히 뛰어 들어오셨다. "어떻게 오셨냐"고 여쭤 볼 새도 없이 노부부는 "할아버지 한 분이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용건을 먼저 풀어 던지셨다.

수안보에는 노인들이 오르기에 만만치 않은 적보산이 있다. 노부부는 실종된 김 할아버지를 포함한 교회 신도 다섯 명이 이 산을 산책했다고 했다. 임도를 따라 봉우리까지 올라간 일행들이 파릇파릇 움트는 새싹의 자태에 감탄하는 사이, 김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일행들은 먼저 하산했을 것으로 생각하고 막상 내려와 보니 할아버지의 모습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것이 필시 산에서 길이 엇갈렸을 것이라면서 발을 동동 구르게 된 것이다.

더구나 할아버지는 치매증세가 있는데다 휴대폰도 갖고 있지 않는 상황이라 더 난감해졌다. 완연한 봄기운에도 밤에는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지고 산돼지의 공격이나 실족사고 등 위험 요소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조금도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안덕기 소장님을 비롯한 직원들이 대책논의에 머리를 맞댔다. 가능한 빨리 할아버지를 찾는 게 관건이었다. 수회리로 돌아가면 운전하기에는 편하지만 샛길이 많아 할아버지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일행들이 올랐다는 임도를 따라 고운리로 넘어가는 게 가장 효율적이지만 사륜구동 차량이 아니면 엄두를 내지 못한다. 산 속에서 순찰차가 갇혀 오도 가도 못하면 더 큰 문제다. 도보로 수색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위험이 따르더라도 순찰차를 타고 고운리로 가는 임도를 수색하는 방법을 택했다. 예상대로 길은 험했다. 곳곳에 쓰러진 나무와 낙석이 길을 막고 있었고 지난해 장마에 유실된 도로 일부가 방치 돼 있었다. 낙석과 나무를 일일이 치우면서 고운리 쪽으로 30분 정도 수색했을 때 야산을 개간하는 포크레인을 만났다. 기사에게 물으니 30분 전에 할아버지 한 분이 산을 걸어 내려갔다고 했다. 드디어 할아버지의 흔적을 발견한 것이다.

날이 저물고 있었기에 서둘러야 했다. 고운리를 벗어나면 길이 사방팔방으로 뚫려 있어 할아버지의 행방을 찾기가 더 어려워진다. 고운리 샛길을 일일이 살피며 중산저수지로 접어드는데 저 만치 앞에서 한 노인이 비척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렇게 찾아 헤매던 김 할아버지였다. 다행히 다친 곳도 없고 기력에 이상은 없어보였다. 할아버지는 일행들과 떨어진 후 무작정 걷다가 다리도 아프고 목이 말라 다시 적보산을 넘어 집을 찾아가려 했다는 것이었다.

임도를 놔두고 순찰차가 다니기 편한 수회리를 먼저 수색했다면 어땠을까. 갈림길이 많아 할아버지를 놓쳤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할아버지는 다시 산으로 들어가 임도를 따라 걸었을 것이고, 날이 저물어 산속에서 길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밤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져 산속에서 홀로 갇힌 모습은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었다.

다음날 오후, 순찰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까만 비닐봉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같은 교회 신도인 노부부가 한라봉을 놓고 가셨다는 것이다. 노부부는 김 할아버지를 찾아준 것도 고마운데 경찰관이 직접 신고자에게 전화까지 걸어 '어떻게 찾았는지', '현재 할아버지의 건강상태가 어떠한지',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 상세히 설명해 준 것이 고마워 일부러 치안센터까지 찾아오셨던 것이다.

직원들은 노란 한라봉 껍질을 벗기며 '한라봉'의 '봉'자가 김 할아버지가 길을 잃은 적보산 '봉우리'의 '봉(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경찰관들이 그 봉우리를 함께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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