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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보영

수필가

이슬 같은 봄비가 내린다. 산자락마다 물안개가 피어나는 아주 여린 봄비다. 물안개를 타고 땅 속 깊은데서 새 생명이 움트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작고 미세한 속삭임이 무작정 어디론가 떠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가슴을 뒤흔들어 놓는다. 아마도 그건 봄이 오는 길목에서 촉촉한 대지위에 엎드려 생명이 움트는 소리를 가슴으로 느끼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봄비의 유혹에 못 이겨 길을 나선다. 오늘 같은 봄날이면 고개 넘어 양지바르고 습진 산자락에 앵초가 무리 지어 피어난다는 지인의 말이 생각나 찾아 온 이곳. 비 그친 산야에는 맑고 투명한 햇살이 이제 막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 어린 잎 위에서 빛나고 있다. 일렁이는 바람 또한 좀 전에 내린 이슬비로 하여 봄 산의 새싹들이 움트며 뿜어내는 달콤한 향기를 머금어 상쾌함을 더 해 준다. 상생하며 살아가는 자연의 섭리가 느껴져 가슴이 벅차다.

산길을 오른다. 가파른 길이다. 남편이 지팡이라며 두툼한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준다. 그 것에 의지하여 산길을 오르니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나뭇가지 하나에 몸을 조금 의지 했을 뿐인데 한결 수월타. 부러진 가지로 있었을 때에는 아무 의미가 없었을지 모르는데 내게 와 지팡이가 되어 주고 있으니 고맙다. 지난 가을 날 눈물겹게 아름다웠던 낙엽들도 이 산자락에 내려앉아 돌아올 봄을 준비하는 새싹들의 겨울바람을 막아주고 그 자리에서 썩어 자양분이 되어 줌으로 땅을 기름지게 한다. 서로 무엇인가가 되어 준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다.

우리네 인간사도 이와 마찬가지다. 누군가 내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가 있다면 서슴없이 그의 손은 잡아 줄 때 조금 더 살맛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내게는 좀처럼 잊혀 지지 않는 아픈 기억이 하나있다 여학교를 졸업 후 참으로 많은 날 들이 지나 친구들의 소식도 좀 뜸해질 무렵 그녀가 갑자기 찾아 왔다. 학창시절엔 아주 단정하고 고운 소녀로 내게 많은 도움을 주었던 그런 벗이었다. 그런데 그 날은 무엇인가 매우 쫓기는 듯한 표정이었고 차림새 또 한 옛날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었다. 그와 마주 앉아서 그의 두서없는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 가슴은 그냥 무너져 내렸다. 결혼 후 갑자기 정신분열 증세가 생겨 많은 날들을 거리를 헤매 다녔고 지금은 어느 사찰에서 요양 중이라고 한다. 질병으로 인해 가정도 무너졌고 아들도 남편이 데리고 가버려 볼 수 없다고 한다. 아들이 너무도 보고 싶어 남편의 직장이 있는 이곳까지 왔으며 옛날의 기억이 떠올라 나를 찾아 왔다며 눈물을 쏟아 낸다. 아들을 한번만이라도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오열하는 그녀를 바라보면서도 아무런 도움도 돼주지 못하는 나 자신이 얼마나 야속했는지. 심한 정신 분열증에 시달리면서도 잠깐씩 정신이 들 때면 자식에 대한 그리움으로 목이 메는 사랑하는 옛 친구를 위해 아무 도움도 되어 줄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했다. 어떤 말로 위로를 한들 그 말이 그의 가슴에 닿을 수 있으랴.

그 날 밤을 그와 함께 보내고 따끈한 아침밥이라도 먹여 보내려고 서둘러 준비를 끝내고 그가 머물던 방으로 들어가 보니 그사이 어디론가 가버리고 없는 게 아닌 가. 혹시 또 어딘가를 헤매고 다니다가 배가 고프면 입맛이라도 다시라고 얼마라도 손에 쥐어주고 싶었는데.

그가 그렇게 가버리고 난 뒤 그의 소식을 알아보려고 수소문 해 보았지만 지금껏 나는 그의 소식을 모른다. 불완전한 정신상태 속에서도 우리가 함께 한 젊은 날의 추억들을 잊지 않고 있어 나를 찾아왔던 소중한 나의 옛 친구, 나를 통해 위로 받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을 텐데 나는 그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어줄 수 없었던 것이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내겐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가 나를 찾아 왔을 때 그의 처진 어깨를 밭쳐 줄 지팡이가 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쯤은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해져서 어느 곳에선가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는다. 바람결에라도 그의 소식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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