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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구

전 예성문화연구회장

가을이 깊다. 현란한 단풍을 기대하는 마음과는 달리 올해는 주변의 단풍이 그리 곱지는 않다는 생각을 한다. 아마도 갑작스런 기온의 등락으로 인해 나무들이 준비가 안 된 채 깊은 가을을 맞이한 듯하다. 아침에는 두터운 옷을 입고도 찬 기운을 느끼지만 오후에는 웃옷을 벗을만치 따뜻하다. 누군가는 이게 전형적인 가을 날씨 아니냐며 심상해 한다. 가을에는 역시 스산함이 어울린다는 고정적 관념이 작용한 탓인지 쓸쓸함과 허무함이 잔뜩 묻어나는 폐사지를 찾는다.

폐사지는 종교적 색채보다는 사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 창조적이고 진취적인 냄새는 거의 없다. 그 곳에 몸을 담갔던 사람들의 자취만 어렴풋이 남아 있을 뿐이다. 삶에 대한 반추가 이뤄지는 곳이다. 어쩌면 폐사지에 발을 들여놓는 그 시간만큼은 세상에 좀 더 겸손해지고 자기 반성이 저절로 우러나기에 열심히 찾는 줄도 모르겠다.

역시 변함없이 지나가버린 사람 향기를 찾아 가을이 완전히 가기 전에 길을 나선다. 우리 역사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고려 광종의 의지가 담겼던, 신니면 숭선리의 숭선사지로 향했다. 마을회관 앞의 짝을 잃은 채 홀로 서 있는 당간지주 옆에 차를 세우고 산을 오른다. 밭에는 콩이 마르고 비틀어진 채 손을 기다리고 있다. 저 콩도 한때는 윤기 흐르는 자태였지만 지금은 짜글짜글 흐른 시간을 머금고 있었다. 500m 가량 오르니 석축이 보인다. 금당지, 탑지, 중문지, 회랑 등으로 추정되는 유구들이 잡초 사이에 자리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사람 손길이 가미된 석재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기록된 숭선사는 고려 광종이 자기 어머니이자 충주 유씨 유긍달의 딸인 신면순성왕태후를 위해 왕실의 원찰로 건립했다. 광종은 고려의 국가체제를 정비하고 새로운 정치질서를 확립하면서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할 만큼 왕권강화에 힘을 기울인 분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숭선사의 규모도 대단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현재까지 발굴한 사역 뿐 아니라 발굴 과정에서 수습된 유물도 상당했다. 그렇지만 드러난 현재의 모습은 사적으로 지정은 됐어도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역사를 제외하면 덧없음이 남았다.

사실 이 곳을 생각하면 동량면 법경대사자등탑비가 연결된다. 법경대사 현휘가 고려 태조와 당시 충주 호족이었던 충주 유씨를 연결시킨 덕분에 태조가 제3비로 신명순성왕태후를 맞이해 충주 지역의 호족세력을 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참 세상은 오묘하게 돌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산을 내려 와 당간지주 앞에 섰다. 숭선마을 앞 신덕저수지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질 적에 당시 당간지주의 한쪽이 저수지 공사 시 교량에 사용됐다고 한다. 한쪽 만이라도 남아 사역이란 것을 알려주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된다. 당간지주 상부의 특이한 형태의 사각형 구멍이 2개 있는데 현재 북한의 불일사지 당간지주와 동일한 간대석 수법이라 한다.

되돌아 오는 길에 오랜만에 원평리 석조여래입상을 찾았다. 통일신라시대의 불상 양식을 계승한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이 잘 나타난 석불이란 학문적 영역은 생각지 않고, 그저 무거운 보개를 머리에 이고도 아름다운 미소를 머금고 있는 석불을 보고 싶었다. 넉넉한 몸집에 헐렁한 법의를 늘어 뜨리고 '두려워 하지 마라 네가 원하는 바를 들어 주겠노라'의 의미를 가진 시무외여원인 수인을 보이는 석불이다. 훼손돼 누군가가 붙여놓은 발이 웃음나게 하는 불상이다. 입술에 발그레한 색이 남아 있는 여래불상이다.

바로 옆에 있는 석탑도 정겹다. 크지도 않으면서 "여기가 옛 선조사 터요"하고 외치는 듯하다. 탑신에 도톰하게 양각된 형태가 무언지 몰라 조바심나게 하고 상륜부 맨 위에 얹혀 있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석탑이다.

이리저리 살펴보던 중, 문득 부질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가을 탓인 듯하다. 따뜻한 커피 한잔 마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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