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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여름의 향기 - 인간의 시간

함기석의 생각하는 시

  • 웹출고시간2019.08.01 17:53:03
  • 최종수정2019.08.01 17:53:03
[충북일보] 백무산은 철저한 리얼리즘 세계관을 바탕으로 욕망과 폭력에 억눌린 현실을 냉철하게 응시하고, 혁명의 그늘 속에서 싹트는 생명을 노래하는 시인이다. 그는 자본의 폭력과 노동의 소외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어가 노동자의 정체성 문제, 지배 권력에 대한 대결의식, 역사 속 비극의 사건들, 민초들의 생생한 노동현장 등을 깊이 있게 조명한다. 그는 노사관계를 적대적 갈등관계로 보면서 노동계급의 혁명적 투쟁의 당위성을 주창하는데 이때 그가 노동계급의 당파성을 분류하는 기준은 밥이다.
밥은 시적 은유이면서 생존권과 권력관계를 형성하는 물적 토대다. 밥을 통해 자본 권력의 횡포가 자행되고 억압과 피억압의 갑을관계가 형성되고 노예적 권력구조가 항구화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현실을 '피땀 어린 고귀한 생산자의 밥의 나라'와 '착취와 폭력의 수탈자의 밥의 나라' 즉 밥을 받는 계급과 밥을 주는 계급으로 양분하고 이 둘 사이의 대립적 갈등관계가 노사관계이며 이것이 자본권력의 기본구조라고 본다. 때문에 거대 자본과 권력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 만국의 노동자는 형제가 되어 단결해야 한다고 그는 주창한다.

박노해, 백무산 등으로 대변되는 1980년대 노동 시편들은 민주화 열기의 고취, 분단체제 인식과 통일의식 함양, 리얼리즘 세계관의 적극적 개진, 노동해방 운동의 심층화, 서구 매판자본에 대한 비판의식 고취 등 긍정적 역할을 했다. 반면에 불구적 당대를 극복할 수 있는 구체적 대안세계를 제시하지 못한 점, 역사적 사회적 상상력의 확장에 따른 개인 감각의 획일화, 선전 선동에 치우진 시적 주제의 경직화, 이념과 사상의 강조에 따른 사적 욕망의 홀대, 언어 미학의 고갈 등 부정적 측면 또한 드러냈다.

이런 일장일단의 상황 속에서 백무산은 첫 시집 '만국의 노동자여'(1989)를 출간한다. 이 시집을 통해 그는 노동 계급의 정체성을 신랄하게 파헤치고 노동문학의 시각과 방향을 적극적으로 제시한다. 이 문제적 시집은 1980년대 파쇼적 군사정권 체제에서 유입된 마르크스 세계관의 시적 반영물이며 노동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정체성과 계급성을 자각케 하여 삶의 변혁을 추동한다. 이후 출간된 두 번째 시집 '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1990)에서는 1988년 말부터 1989년 초까지 약 4개월여에 걸쳐 진행된 울산 현대중공업 대파업투쟁을 다룬다.

이 두 권의 시집 출간 이후 백무산은 노동자들의 핍박받는 삶의 조건과 모순들만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생태 문제, 인간 존재의 근원에까지 사유의 스펙트럼을 넓혀나간다. 그 결과가 세 번째 시집 '인간의 시간'(1996)이다. 이 시집을 통해 그는 인간과 자연과 노동의 새로운 조건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비판적 담론을 낳고 창조의 근본원리에 대해 재탐색한다. 위의 시 '인간의 시간'은 시인의 이런 시각과 사색, 전복적 사유가 진술된 표제작이다. 대지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을 거역하고 배반하고 이런 단절의 꿈이 역사를 추동하는 동력이 된다.

/ 함기석 시인

인간의 시간 - 백무산(白無産 1955∼ )

마른 풀잎 위로 부드러운 빗방울이

깃털처럼 내린다

구름은 산자락까지 내려와

게릴라처럼 주의 깊다

비에 씻긴 바람도 저희들끼리

아주 주의 깊게 착지를 찾는다

개울은 작은 풀씨 하나라도 깨울까봐

뒤꿈치를 들고 걷는다

시간은 자신의 거처를 몰라 머뭇거린다

나무들도 옷을 벗는다

지난 가을에 외투만 벗은 나무는

마지막 단추까지 푼다

소리 없이 안으로 옷을 벗는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대지에 무슨 음모가 시작되는가

새들도 숨을 죽인다

언제 명령이 떨어지는가

누가 발진을 지시하는가

시간도 순응하는 시간

일사불란한 지휘계통도 없이

모든 것이 모든 것에 순응하는 지휘계통

흙 알갱이 하나하나 수소처럼 가볍다

새들도 숨을 죽인다

대지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을 거역한다

소모와 죽음의 행로를 걸어온,

날로 썩어가고 황무지만 진전시켜온

죽은 시간을 전복시킨다

대지는 단절을 꿈꾼다

(…)

역사가 강물처럼 흐른다고 믿는가

그렇지 않다

단절의 꿈이 역사를 밀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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