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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봄의 향연 - 종이 카네이션

  • 웹출고시간2019.05.02 17:29:08
  • 최종수정2019.05.02 17:29:08
[충북일보] 산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라지만 인생의 말년에 고독이라는 등짐을 지고 가는 노인의 뒷모습은 애잔하다.

"김씨, 자식들이 와서 얼마나 줘? 나는 큰 놈이 와서 5만 원 주고 가던데, 우리 오랜만에 시장 끄트머리 집에 가서 보신탕이나 한 그릇씩 사 먹세"

"아니, 나는 아직 아무도 안 왔다네, 부모 노릇도 제대로 못했는데 어렵다는 애들 기다리면 뭣해…. 탕은 이 담에 먹으러 가세."

여든 중반을 넘은 할아버지 두 분이 혈압약을 타러 오셔서 나누는 대화 내용이다.

오늘은 어버이날, 복지관에서 달아 주었다는 커다란 종이 카네이션을 쓸어내리며 "얼른 가야하는데 이 늙은이 왜 안 데려가는지 몰라"하신다. 구겨진 카네이션을 자꾸 쓰다듬는 모양이 긴 기다림을 달래는 몸짓 같아 나는 딸이 달아준 꽃을 슬그머니 떼어 버렸다.

약국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바라보는 어버이라는 아픈 이름이 어쩌면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은 아닌가?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황혼의 인생길에 마음이 착잡해진다.

아들만 넷을 두신 시아버님은 나를 처음 만 난 자리에서 며느리 감을 보니 소원했던 딸을 얻은 것 같다 시며 좋아하셨다. 그리고는 일생을 농사일만 하고, 시골에 살아서 표현도 어줍고 무뚝뚝해 세련미가 없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막상 결혼하여 분가해 살다보니 어쩌다 아버님을 뵈면 워낙 과묵하셔서 어렵기만 한데, 이따금 술 힘을 빌어 당신의 신세를 한탄하기도 하셨다. 담배농사야 말로 지겹다고 하소연을 하기도 하시고, 시동생의 등록금을 맡으라고 회유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당신의 몫이라시며 사양하시던 아버님.

아이 키만큼 자란 담배 잎을 따서 엮어 색깔을 곱게 내고 모양도 훼손 없이 잎을 건조시키는 일은 수년간 쌓아온 아버님만의 비법이었다. 담배건조실이라는 불가마 앞에서 한시도 떠나지 못하고 한 여름 밤, 불을 지피며 새까맣게 그을려야했던 아버님의 얼굴. 풍년 초라는 봉초를 신문지에 말아 검지 잃은 손가락 사이에 끼고 궐련을 피던 촌로의 패인 얼굴이 기억의 잔상너머로 지나간다.

남편이 회사를 운영하던 당시, 납품 대금으로 받은 어음들이 줄줄이 부도가 났다. 수표를 발행한 본사사장은 수많은 돈을 챙겨 잠적해 버렸고, 그 여파로 남편의 회사는 하루아침에 문을 닫아야만 했다. 휴지조각이 되어버린 약속어음을 붙들고 도주한 사람을 백방으로 찾아다녔지만 오리무중이었고, 맥락없이 당하는 시련 앞에 절망은 더 깊은 늪이 되었다.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은 희망에 두려움만 엄습하는데 연락도 없이 아버님이 올라 오셨다. 충청도에서 서울까지 산길을 넘고, 버스를 몇 번씩 갈아타며 쌀가마를 지고 오신 아버님. 아직도 삼십 년 전 그날의 기억은 목이 멘다. "살다보면 어려움도 오는 게지, 어여 힘 내거라"라는 단 한 말씀뿐, 허리춤에서 무명 보자기에 싼 전대를 풀자 축축한 돈다발에서 퀘퀘한 냄새가 났다. 비록 가난하지는 않지만 자식을 위해 스스로 가난하게 사시던 아버님…. 방바닥 밑에 숨겨두었었다는 삼 백 만원에는 아버님의 눈물과 땀 냄새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그날 나는 아버님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딸처럼 엉엉 울었다. "깊이 흐르는 강물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아버님의 눈물이, 아버님의 나이가 돼서야 내 가슴속에서 이제 흐른다.

사는 게 힘들다는 핑계로 아버님의 가슴에 카네이션 한 송이 달아 드리지 못하던 그때의 어버이날이 오늘따라 아려온다. 얼마나 슬픈 기다림이었을까. 못난 자식을 도리어 감싸주고 두둔해가며 빈 가슴을 어루만졌을 아버님의 심정이 고스란히 그려진다. 마지막 세상을 떠나시기 전 병실 창가에 손주들이 진열해놓은 카네이션을 바라보시며 애써 웃어 보이시던 그날의 감회가 새롭다. 이미 내 곁을 떠나고 계시지 않지만 어버이날 아버님께 올릴 카네이션 한 포기를 샀다. 화분에 심어져 있는 보드라운 연분홍꽃 줄기에 "아버님 고맙습니다"라고 쓴 리본을 만들어 달았다.

박영희

효동문학상 작품공모 대상

푸른솔문학 신인상

푸른솔문인협회 회원

에덴약국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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