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권정우

시인, 충북대 국문과 교수

마을은 진입로부터 달랐다. 아스팔트나 시멘트 포장도로가 아니었다. 개울을 따라 이어진 길에는 잔자갈이 깔려있었고 양 옆으로는 쑥부쟁이와 구절초, 물봉선 같은 야생화가 자연 상태로 우거져있었다. 마을로는 차를 몰고 들어갈 수가 없다. 짐이 있으면 손수레에 옮겨 싣고 가야한다. 마을길은 전부 흙길이다.

마을 어귀에는 커다란 당산나무가 한 그루 있다. 당산나무 밑에는 나무로 만든 넓은 평상이 있어서 동네 사람들 몇이 바둑도 두고 한담을 나누기도 한다. 아이들은 당산나무 옆에 있는 공터에서 팽이치기나 딱지치기를 하면서 논다. 어른이고 아이고 낯선 사람에게 반갑게 인사한다. 나도 이 마을 사람인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진다.

마을을 만들 때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았다고 한다. 구릉이나 개울가 여기저기에 자리를 잡고 있는 집이 마을 터와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놓여있었던 바위나 나무 같았다.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집을 앉힌 집도 있었는데, 잔돌을 주워서 쌓은 축대여서 정겹게 느껴졌다. 집은 모두 작았다. 서너 평쯤 되어 보이는 작은 집이 많았고 넓은 집이라고 해봐야 열 평 남짓· 이 마을 사람들은 동네 사람들 힘을 빌려서 자기 집을 직접 지었다고 한다. 집은 순차적으로 짓는다. 주방과 거실만 있는 서너 평짜리 집을 지어 살면서 침실이나 서재가 딸린 별채를 들이는 식이다. 한 집에 별채가 두 세 채씩은 됐다. 목조주택에서부터 한옥까지 건축양식이 다양했고 집들이 모두 집터나 이웃집과 어울려서 동네가 포근하면서 아름다웠다.

울타리도 집주인의 취향만큼 다양했다. 관목을 울타리 삼아 심어 놓은 집, 돌담을 허리 높이로 쌓아 놓은 집, 나무 울타리를 해 놓은 집 등등. 콘크리트 옹벽을 쌓아서 자기 집을 감옥처럼 만들어버린 집은 없었다. 울타리 사이로 고양이들이 제 집처럼 드나드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마을 어귀에 있는 당산나무 아래에도 고양이 몇 마리가 낮잠을 자고 있었던 것 같다.

이 마을 사람들은 모두 고양이를 좋아한다. 그런데 자기가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는 없다. 고양이는 마을과 마을 뒷산을 무대로 자기들끼리 사회를 이루고 산다. 마을 사람들이 고양이에게 해 주는 것은 끼니때마다 고양이 먹이를 챙겨주는 것, 그리고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도록 창고나 마루 밑에 고양이 집을 마련해 주는 것뿐이다. 이 마을에 사는 고양이들은 인기척이 느껴지면 줄행랑을 치는 도시 길고양이들과 완전히 다르다. 붙임성이 좋은 녀석들은 처음 보는 데도 다리에 얼굴을 비비거나 품에 안기기도 한다. 사람 눈치를 보는 고양이는 없다. 서유럽에서는 찻길에서도 자전거 타는 사람이 운전자의 눈치를 보지 않는 것과 같다.

한국의 대도시에서는 아파트가 주인이고 아파트 숲에는 고양이가 살고 있다. 우리는 그들을 길고양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아파트를 짓기 전부터 고양이들은 그곳에서 살았을 것이다. 야산과 들판이 아파트 숲으로 변한 다음에는 먹을 것이 없으니 쓰레기통을 뒤지는 신세가 되었다. 굶주리는 길고양이가 눈에 띄면 돌멩이를 던지는 사람도 있지만 밥을 챙겨주는 사람도 생기게 마련이다. 동물이 살 수 없는 도시에서는 인간도 살기 어려운 법인데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사람들을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꼭 있다.

밥 주는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동호회를 만들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결국은 고양이 마을을 이루고 살게 되었다. 길고양이들의 평균 수명은 3년이고 집고양이는 11년 정도인데 이 동네 고양이들의 평균 수명은 15년가량 된다. 고양이 마을은 사람과 동물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사는 보기 드문 마을이다. 조만간 유네스코에서 지정하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수도 있다.

고양이가 갑자기 좋아져서 이 마을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이 마을에 가려면 고양이 버스를 타야 한다. 왜 있지 않은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만든 에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에 나오는 버스. 이 버스를 타면 사츠키와 메이가 사는 마을보다 더 아름답고 신비로운 고양이 마을에 내려줄 것이다. 마음만 있다면 버스는 어디서도 탈 수 있고, 버스 요금은 무료니까 마음 편히 즐겁게들 다녀오시라.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