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웹출고시간2010.03.25 11:55:28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고구려 온달이 아단성 전투에서 사망한 것은 서기 590년이다. 김유신은 이보다 5년 늦은 서기 595년에 충북 진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당시 진천태수였던 김서현이고, 어머니는 진흥왕 조카인 만명부인이다. 삼국사기는 둘에 대해 '눈이 맞아 중매도 없이 야합했다'고 적고 있다. 사실 공자의 부모도 야합을 해 공자를 낳았다.

김유신은 금관가야 마지막 왕인 구해왕의 3대 직손이다. 그런 그가 왜 충북 진천에서 태어나게 됐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다. 당시 신라 조정은 가야를 정복한 후 이른바 사민정책을 쓰게 된다.

사민정잭은 반란이나 역모 등을 우려해 정복지 주민을 다른 곳으로 강제 이주시키거나 근무시키는 정책을 말한다. 김유신 아버지인 김서현이 경주가 아닌, 진천태수로 부임하게 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여기에는 '가야에서 귀순한 것은 고맙지만 전쟁이 나면 네가 먼저 싸워라' 의미가 담겨 있다

우륵은 본래 대가야, 강수는 임라가야 사람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도 당시 신라 조정의 사민정책에 따라 변방 충주로 옮겨와 살게 된다. 이를 두고 혹자는 "총알받이 의미가 있다"고 극단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김유신이 언제까지 진천에서 자랐는지 사료상 확인되는 것이 없다. 다만 적어도 17살 이전에 진천을 떠나 경주로 갔고, 이후 화랑이 돼 삼국통일의 초석을 다진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에는 '김유신이 건복 33년에 경주 중악의 동굴로 들어가 목욕재계 하고 하늘에 아뢰어 맹세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건복 33년'은 김유신의 나이 17살에 해당한다. '건복'은 신라 진평왕의 연호다.

그러나 김유신 가문은 그가 죽은 후 용도폐기 된다. 김유신은 삼광, 원술, 원정 등 3명의 아들을 뒀다. 그러나 김유신이 죽은 후 이들이 고위직에 올랐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김유신 증손인 '김융'은 혜공왕 6년(770년) 반란을 일으켰다가 죽음을 당하게 된다.

당시 경주의 신라 귀족들이 김유신 가문을 박대한 이유는 역시 기득권 때문이었다. 경주의 귀족들은 '경주김씨'인데 비해, 김유신 가문은 김해에서 넘어온 '김해김씨'였다. 한 마디로 이방인인 셈이다. 따라서 당시 경주 김씨들은 김유신 가문을 '신김씨'라고 부르며 노골적으로 차별 대우를 했다.

김유신이 그가 죽은 후 무려 162년이 지난, 서기 835년이 돼서야 '흥무대왕'으로 추존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삼국유사 미추왕조에는 김유신의 혼이 탄식하는 내용이 실려 있다.

"신이 평생 동안 어려운 시국을 구하고 삼국을 통일한 공을 세웠습니다. 하오나 지난 경술년에 신의 자손이 아무런 죄도 없이 죽었고, 왕이나 신하들은 저의 공적을 생각지 않습니다. 신은 차라리 멀리 다른 곳으로 옮겨가서, 다시는 나라를 위해 애쓰지 않을 것이니, 왕께서는 허락해 주십시오"

혼을 빌려 한 얘기지만, 김유신의 후손들이 신라 조정에 느끼는 불만과 배신감이 잘 드러나 있다. 통일신라 지배층의 이러한 편협함은 결국 150년 동안 무려 20명의 왕이 바뀌면서 사직 천년을 고려 왕건에게 넘겨주게 된다.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