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충북일보 클린마운틴 특별답사 - 지리산 빨치산 루트

6·25전쟁 70주년, 빨치산의 흔적을 찾아서
전쟁도 이념도 잊혀진 '천혜의 요새'

  • 웹출고시간2020.06.24 16:46:28
  • 최종수정2020.06.25 09:11:00

태양의 기운을 받은 지리산에 녹음이 우거진다. 벽송능선에 이는 바람결에 눈과 귀가 시원하다. 70년 전 비극을 풀꽃과 나무가 먼저 싸맨다. 잃어버린 시간과 기억의 장소로 거듭난다. 용유계곡이 역사로 응축돼 엄천강으로 흐른다. 고단한 역사 품고 천천히 흘러간다. 빨치산과 토벌대간 피로 얼룩진 상처를 보듬는다. 용유담의 물소리가 평소와 달리 들린다. 마지막 빨치산의 아픔을 노래하는 듯하다. 햇살과 바람, 구름과 산, 숲과 길이 삶을 이룬다. 잔뜩 웅크렸던

ⓒ 함우석 주필
[충북일보] 올해는 6·25전쟁 발발 70주년이다. 3년에 걸친 동족상잔의 전화(戰禍)는 참혹했다. 한반도의 남과 북을 모두 폐허로 만들었다.

지리산은 오늘도 슬픈 역사를 묻어두고 있다. 한 쪽 가슴엔 빨치산의 슬픔을 담고 있다.·다른 한 쪽 가슴엔 토벌대의 아픔을 품고 있다. 빨치산 루트는 지리산 남·북·동쪽 능선과 계곡 일대에 대략 12개다. 대부분 기존 등산로와 조금 떨어져 있다. 때 묻지 않은 천혜의 자연환경과 비극의 역사현장을 체험할 수 있다.

충북일보클린마운틴 탐사는 벽송능선 루트와 칠선계곡 루트로 나눠 진행됐다. 현대사의 역사탐방에 의미를 부여했다.

벽송능선길.

ⓒ 함우석 주필
◇벽송능선 루트

벽송능선은 지리산의 대표적인 빨치산 루트다. 들머리는 서암정사다. 현대판 석굴암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자연암반에 무수한 불상들이 조각돼 있다. 사대천왕상이 압권이다. 오래 머물지 않고 벽송사로 걸음을 옮긴다.

벽송사 전경.

ⓒ 함우석 주필
벽송사가 조용히 반긴다. 비 그친 천년고찰이 고요하다. 절집 뒤로·도인송과 미인송이 멋진 자태를 뽐낸다. 미인송이 생각보다 약해 보여 안타깝다. 탐사 당일에도 지지대에 기대고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황홀하게 매력적이다.

벽송사는 6·25전쟁 중 인민군 야전병원으로 사용됐다. 퇴각하던 인민군과 빨치산들이 부상병들을 치료했다. 토벌대의 폭격이 있기 전까지 이어졌다. 절집 옆으로 변강쇠의 전설을 품은 목장승이 눈을 부릅뜬다. 경남도 민속자료 제2호다.

벽송사 오른쪽 산길로 들어선다. 길은 이제부터 옛 빨치산루트를 따라 이어진다. 울창한 숲속을 따라간다. 오르내림이 완만하게 계속된다. 소나무와 참나무 향이 숲을 가득 메운다. 길은 맨발로 걸어도 좋을 정도로 폭신하다.

용유담.

ⓒ 함우석 주필
벽송능선은 여러 개의 빨치산 루트 중 하나다. 지리산 빨치산의 은신처이자 주요 활동무대였다. 공비토벌의 역사적 흔적도 함께 배어 있는 공간이다. 능선 곳곳에 비트가 여럿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나무와 잡목만 보일 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얼마 가지 않아 산죽길이 이어진다. 하늘에선 보이지 않는 길이다. 빨치산들이 이용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여기서도 동굴비트나 산죽비트, 자연비트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이리저리 둘러봐도 울울창창한 나무뿐이다. 녹색의 세상만 보인다. 어느새 장구목이(옛고개)다. 앞으로 계속 직진한다. 전나무가 울창한 봉우리를 넘는다. 송대 갈림길에 닿는다. 노송이 그늘을 만들어 쉬기에 좋다.

붉은 페인트로 그려진 방향표시를 따른다. 바위지대를 지난다. 삼거리를 거쳐 안락문을 빠져나간다. 안락문의 사연이 애잔하다. 함양독바위(노장대 1120m)에 오른다. 예전 있던 구조물은 보이지 않는다.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내려온다.

발길을 재촉한다. 어느새 모전교를 거쳐 용유교다. 엄천강이 빚어낸 용유계곡을 굽어본다. 계곡으로 내려선다. 용유담이 우아하다. 유월 녹음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다.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암각 글귀를 눈여겨본다.

용유담 돌아 둔덕을 따라 오른다. 빨치산의 슬픈 노래가 이어진다. 돌격의 외침이 슬픔으로 남는다. 산골짜기마다 아픔의 흔적이다. 피로 물든 치열한 전투장면이다. 구천에 떠돌 영령의 애절함이다. 시대의 아픔을 씨줄 날줄로 짠다.

아름다운 용유담을 떠난다. 다시 용유교를 거쳐 마적대로 이동한다. 소나무 한 그루가 기골 차게 서 있다.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다. 바닥 암반엔 수십 명이 거뜬히 앉아·쉴 수 있다. 지나는 길손마다 부르는·천하의 명당자리다.

다시 거침없이 앞으로 간다. 계곡을 따라가다 오른쪽으로 틀어 마적대에 오른다. 눈앞으로 용유계곡 물이 만든 엄천강이 도도히 흐른다. 술 한 잔으로 먼저 간 영혼을 달래본다. 아픔이 밀려온다.

칠선계곡 선녀탕

ⓒ 함우석 주필
◇칠선계곡 루트

백무동에서 칠선계곡 쪽으로 길을 잡는다. 어느 정도 길이 잘 정비돼 있다. 다만 시작부터 10분 정도 경사가 급하다. 조금 더 가면 오르막이 잔잔히 이어진다. 그래도 경사가 급하지 않아 비교적 편하다.

약 20분 정도 오르니 인민군사령부 터를 만난다. 빨치산 교육과 훈련을 하던 주요 근거지다. 이곳을 중심으로 남부군으로 불리는 빨치산들이 터를 잡고 활동했다. 오르면서 비슷한 모양의 터를 몇 개 더 보게 된다.

지리산 인민군사령부터

ⓒ 함우석 주필
집터에는 이끼가 더덕더덕 붙어있다. 세월의 무상함을 보여준다. 곧 완만한 길이 이어진다. 대나무밭을 만난다. 상당히 넓은 죽전(竹田)이다. 아마도 생필품을 만들기 위해 대나무가 필요했을 것 같다. 부드러운 흙길이 이어진다.

유월이지만 서늘한 분위기에서 걷는다. 잣나무숲길이 짧게 이어진다. 창암능선 고개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 두지동까지 15분이다. 약간 경사가 급하다. 200m 정도 내려오니 산골마을 두지동이다. 민박집도 있고 커피 가게도 있다.

두지교를 지나 칠선계곡으로 향한다. 대나무 대문을 지난다. 아무 죄 없는 나무꾼 심정으로 칠선교를 넘어선다. 잠시 오르막길이다. 워낙 잘 정비돼 가볍게 걸을 수 있다. 숲을 끼고 가는 예쁜 길이다. 선녀탕에 도착한다.

옥녀탕을 지나 비선담까지 내달린다. 이곳부터는 사전예약을 한 사람만 오를 수 있다. 물론 길이 거칠어 오르는데 힘이 든다. 그래도 빨치산 루트를 제대로 맛보려면 가야 한다. 힘든 만큼의 값진 경험을 얻을 수 있다.

비선담을 지나니 풍경이 급한 여울로 흘러내린다. 여름의 초록 향기가 경관과 풍류를 빚는다. 신록과 녹음이 찬란한 물빛과 어우러진다. 햇빛이 나뭇잎 사이로 산란한다. 녹음이 하루하루 짙어져 간다. 형언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이 계속된다.

칠선계곡 마지막 폭포를 지난다. 마폭포다. 이곳에서 잠시 목을 축였을 빨치산들의 표정이 떠오른다. 길은 여기서 다시 막힌다. 탐방 예약을 한 사람만 들어설 수 있다. 국립공원 직원이 문을 열며 줄을 걷어낸다. 통제 데크 문을 지난다.

가쁜 숨을 고르며 가파른 비탈길을 오른다. 한 시간 정도 지나 고갯마루에 선다. 전혀 다른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다. 조릿대(산죽) 군락지가 곳곳에 있다. 큰 바위를 넘어서자 사뭇 다른 풍경이 드러난다.

천왕봉 가는 길이 갈수록 흐려진다. 몸을 들여놓기가 쉽지 않다. 거칠고 투박한 산길이 계속된다. 때때로 산죽이 가로막는다. 쓰러진 고목도 거든다. 때론 아주 된 비알이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가쁜 숨에도 예서 멈출 순 없다.

저 멀리 계곡 끝이 손에 잡힐 듯하다. 비밀의 길 같은 느낌이다. 호젓함을 넘어 적요해진다. 길 위에는 습지와 신록의 나무가 무성하다. 초록의 풀들이 가득하다. 고난도 비탈구간을 지난다. 천상을 기대케 하는 난코스를 오른다.

지리산 색깔이 완연하게 바뀐다. 빨치산 루트가 점점 더 은밀하다. 은폐 엄폐에 안성맞춤 녹음이다. 녹색 기운이 사방에서 몰려든다. 바람이 에둘러서 소식을 전한다. 핏빛 물들기 전의 청춘예찬이다. 마지막 빨치산들의 슬픈 노래다.

70년 전 비극을 풀꽃이 싸맨다. 지나온 계곡 길의 윤곽을 되짚어 본다.·빨치산과 토벌대의 쫓고 쫓기는 장면이 오버랩 된다. 역사의 교훈을 오래오래 기억한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