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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7.08.20 16:59:50
  • 최종수정2017.08.20 17:14:37

내연산 청하골 십이폭포가 굽이굽이 이어진다. 관음폭포가 연산폭포를 타고 내려와 무풍폭포를 넘어 흐른다. 잠룡 삼보 폭이 하얗게 부서져 보경사까지 간다. 청류가 기암을 타고 첩첩산중에 천하절경을 만든다.

ⓒ 함우석주필
[충북일보] 2017년 8월19일. 가마솥을 데울 것 같던 염천의 더위가 사라졌다. 85차 충북일보 클린마운틴 회원들이 늦여름 경북 동해안을 따라 간다. 발걸음이 닿은 곳은 푸른 바다가 아니었다. 선비의 풍류가 그득한 산수화 속이었다.

경북 포항의 내연산(710m)은 천년고찰 보경사를 품고 있다. 능선은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푸근하다. 해안 가까이에 솟아올라 더 높고 더 우뚝해 보인다. 주능선은 완만한 참나무 숲이다. 경북수목원과 연계하면 20km 트레킹도 가능하다.

청하골은 열두 폭포로 이뤄진다. 산수진산수화 산수화가산수(山水眞山水畫 山水畫假山水)를 증명한다. 조선시대 겸재(謙齋) 정선(鄭敾)도 홀딱 반한 절경이다. 내연산의 산수를 4점의 그림으로 남겼을 정도다.

상생폭포

8월 중순에 만난 청하골의 풍경은 그야말로 진경산수였다. 걷는 내내 겸재의 '내연삼룡추도'의 배경을 생각했다. 숲길은 경사가 완만하고 노면이 양호하다. 남녀노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폭포와 기암이 절경이다.

청하골은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다. 청아한 물소리가 마음을 닦아준다. 길은 완만하고 잘 정비돼 있다. 걸을수록 아름다운 풍경들이 나타난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사진 촬영을 할 수밖에 없다. 아직 첫 폭포가 등장하기 전이다.

보경사를 지난다. 30분쯤 더 걷는다. 제1폭포인 상생폭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규모가 크지 않다. 수려한 경관과 어우러지며 눈길과 발길을 잡는다. 나란히 떨어지는 두 폭포의 풍경이 보기 좋다. 보는 각도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보현폭포, 삼보폭포, 잠룡폭포가 잇따라 나타난다.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갈수록 진경이 이어져 긴장감이 더해진다. 다시 40분을 걷는다. 무풍폭포를 지나 관음폭포와 연산폭포에 닿는다. 깎아지른 절벽과 제대로 어울린다.

무풍폭포

폭포 위로 나는 듯한 구름다리가 신비롭다. 인공적 시설이 자연과 적절히 조화한다. 어우러진 풍경이 마치 선계 같다. 소원 하나 쯤 들어줄 것처럼 신비롭다. 그러나 풍경은 선일대에 서야 비로소 완성된다.

선일대는 신선이 폭포를 완성한 뒤 올라가 쉰 자리다. 지금은 두 폭포의 경관을 가장 아름답게 내려다 볼 수 있는 자리다. 298m의 바위 정상에는 팔각정자가 있다. 포항시가 겸재를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

선일대에 오르니 진경산수가 눈앞에 펼쳐진다. 두 폭포의 그림이 완성된다. 겸재 그림 속의 풍경이 느껴진다. 겸재가 추구했던 '진경산수'란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붓끝의 기교가 아닌 자연을 대하는 마음을 읽게 된다.

청하골의 하늘이 파랗게 열린다. 계곡과 곁을 지키는 기암들이 웅장하다. 관음폭포가 소리를 낸다. 폭포 아래 맑은 소에 담긴 물색이 비현실적이다. 선계와 속계를 가른다. 존재만으로 한 폭의 산수화다.

굽이굽이 물길이 폭포로 이어진다. 폭포는 저마다 다른 형상으로 자리를 잡는다. 쏟아지는 소리도 다 다르다. 폭포뿐만이 아니다. 폭포 위로 까마득한 바위가 죽순처럼 솟는다. 벼랑 위로 선일대, 비하대, 학소대, 어룡대가 줄을 선다.

곳곳에서 신선이 노닐고, 학이 둥지를 튼다. 마침내 용 한 마리가 솟구친다. 깎아지른 위용으로 속인의 범접을 막는다. 폭포 소리와 함께 선계의 점심을 먹는다. 넘쳐나는 수다마저 물소리에 잠긴다. 천국이다 싶을 만큼 환상적이다.

청하골 숲길을 걷다보면 마음까지 깨끗해진다. 따가운 햇살은 나무에 걸리고 부서져 힘을 잃는다. 바람은 나무그늘을 거쳐 시원하다. 숲속을 지나 계곡물에 닿으며 상쾌해진다. 모든 게 진경산수화의 배경이다.

우거진 나무그늘과 시원한 물소리는 산수의 즐거움을 알게 한다. 산객들에게 길의 끝을 만나는 법을 알려준다. 산에 들어야만 아는 깨달음을 얻게 한다. 충북일보 클린마운틴 회원들이 청하골에 대한 찬사를 쏟아낸다.

<취재후기>겸재 정선과 내연산 청하골

내연산이 품은 물줄기는 20리(약 8km)가 넘는다. 바로 청하골이다. 12개의 폭포가 기암절벽과 어우러져 절경을 뽐낸다. 시원한 물이 쏟아져 내린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다. 12폭골, 내연골, 보경사계곡으로 불린다.

물줄기는 산줄기를 따라 흐른다. 물줄기는 산의 높이에 따라 모양을 달리한다. 높이 차에 따라 크고 작은 폭이 생겨 기묘하다. 12개 폭포가 얻은 이름만 봐도 금방 알기 쉽다. 풍광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겸재(謙齋) 정선(鄭敾)이 청하골에 빠진 이유는 분명하다. 겸재의 화풍은 당시 유행하던 중국 화풍과 확연히 다르다. 새로운 눈으로 새로운 그림을 그렸다. 조선의 산수를 조선의 화풍으로 그렸다. 청하골에서 그 방법을 찾았다.

겸재가 살았던 시대를 돌아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겸재는 영조 9년인 1733년부터 1735년까지 청하현감을 지냈다. 2년 남짓의 이 시기에 조선 화단에 큰 획을 긋는 그림을 쏟아냈다. 진경산수(眞景山水) 화풍(畫風)을 완성시켰다.

겸재는 문경 이남의 명승 쉰여덟 곳을 그림으로 옮겼다. '교남 명승첩'이 바로 이시기 작품이다. '내연산 삼용추'와 '청하 내연산폭포'도 교남 명승첩에 실려 있는 그림이다. 내연산으로 여정을 위해 내가 본 두 장의 그림이다.

당시 조선 국토는 임진왜란에 이은 병자호란으로 유린당했다. 전란 후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다. 무엇보다 자존감이 무너졌다. 혼란 상황 수습과 자존심 회복이 절실했다. 침략당한 치욕과 좌절을 어떻게든 극복해야 했다.

겸재는 극복의 방법으로 청나라의 야만성 부각을 선택했다. 대신 우리의 문화적 우월감을 고취하려 했다. 조선이야말로 문화국가의 중심임을 알리려 했다. 예의를 숭상하고 인륜을 지키는 선비정신을 기치로 내세웠다.

제일 먼저 중국의 화풍에서 벗어나려 했다. 우리의 자연을 우리의 눈으로 보려 했다. 그런 다음 우리의 붓끝으로 그려내려 했다. '우리 자신'의 그림을 그려려 했다. 겸재의 진경산수는 그렇게 탄생했다.

겸재의 진경산수는 그의 붓으로 이뤘다. 동시에 당시 조선 사회가 거둔 성취였다. 생각을 정리하니 겸재의 그림이 다시 보인다. 선일대에서 내려다보는 경관도 다시 보인다. 청하골 전체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다.

보는 눈이 달라지니 그림도 달리 보인다. 그림에서 비로소 진경산수를 보게 된다. 그림의 기교를 떠나 산수를 보게 된다. 세상을 보는 눈이 새롭게 바뀐 셈이다. 진경산수에 깃든 그 시대의 생각과 정신을 보게 된다.

등 뒤로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 막바지 늦여름을 보내며 겸재의 '진경산수'를 다시 떠올린다. 사물을 보는 시각과 자연을 대하는 자세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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