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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클린마운틴-지리산 둘레길 3구간(인월 월평마을~장항마을)

봄날, 산 넘어 물길 따라 흘러간다
가볍고 느린 걸음으로 가면서 사색
고요 가득한 숲길서 만끽하는 행복
자연의 아름다움에 눈뜬 작은 보상
파란 색채가 만들어낸 숲속의 기적

  • 웹출고시간2023.04.27 17:30:11
  • 최종수정2023.04.27 17:30:16
짙푸르러진 숲길에 고요만이 가득하다. 길게 이어진 오솔길이 여유를 선물한다. 산허리 타고 지나는 길 아래가 아득하다. 숲을 뚫고 들어온 볕뉘에 두 눈이 부시다. 가볍고 느린 걸음으로 가면서 사색한다. 무언가 생각이 떠오를 것 같은 느낌이다. 편안함과 행복감이 밀물처럼 밀려든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살짝 눈뜬 보상이다. 들꽃은 소리 없이 피었다 소리 없이 진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더라도 왔다가 간다. 한 뼘의 땅에서 미소 한 번 던지고 간다. 짧은 봄날에 흔적 없이 말없이 스러진다. 아쉬움 없이 그냥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 아름답지만 슬픈 존재의 유한성을 본다.

[충북일보] 지리산둘레길 3코스는 20.5km에 달한다. 산과 고개를 넘고 하천을 따라 흘러간다. 전북 남원시 인월면 월평마을에서 시작한다. 경남 함양군 마천면 금계마을까지 간다. 걷는 내내 장엄한 지리산 주능선과 함께 한다. 때때로 하늘 마루금을 조망하기도 한다. 계곡을 따라 자리 잡은 다랑논도 볼 수 있다. 마을은 자연과 조화롭게 생태계를 꾸려간다. 4월 중순의 지리산 둘레길은 온통 봄빛이다. 산새들 지저귐이 둘레길에 활력을 보탠다. 곳곳이 봄의 범람으로 정말 아름답다.

민화풍의 벽화가 그려진 마을에 닿는다. 골목마다 벽화가 볼 만한 월평마을이다. 달이 뜨면 잘 보이는 언덕이라는 뜻이다. 월평마을을 뒤로하고 한참을 더 걷는다. 달오름 다리 지나 람천의 둑길을 걷는다. 시냇물과 함께 하천 길을 한동안 걷는다. 인월을 떠난 길이 중군마을을 지나간다.·본격적인 산길로 가는 관문 역할을 한다.

중군마을 담벼락 그림

중군의 성루가 군진의 위용을 드러낸다. 소박한 사람들이 마을을 이뤄 살아간다. 지리산 둘레길 3코스라는 글귀가 정겹다. 마을 담벼락 글씨에서 삶을 엿보게 된다. 주민 삶 속에 녹아 있는 둘레길을 느낀다. 마을을 지난 길이 숲 저편으로 나아간다. 마침내 둘레길로써 면모를 갖춰나간다. 숲이 짙어질수록 계곡도 함께 깊어진다.

중군마을 지나 숲길이 제대로 시작된다. 갈림길에서 경사 가파른 언덕을 따른다. 좁고 고즈넉한 숲길이 그늘을 선물한다. 길은 선화사를 거쳐 수성대로 연결된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가 보인다. 계곡 물소리가 제 철 만난 듯 소란스럽다. 바위를 덮은 이끼가 고색창연하게 빛난다. 숱한 방문에도 손 타지 않아 다행스럽다.
산을 에두르는 임도가 계곡을 벗 삼는다. 길은 산으로 향하고 숲은 더욱 깊어진다. 그냥 가보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도 없다. 생각 없이 무작정 가는 게 오늘 할 일이다. 걷기에는 언제나 가슴 뛰는 설렘이 있다.·길을 밝히는 들꽃들의 화사함이 반갑다. 봄날 연한 색감의 파스텔 톤이 시원하다. 바람만큼 반가운 청량제 역할을 해낸다.

잠시 멈춰 서서 물끄러미 꽃을 바라본다. 꽃이 자신을 바라봐 주는 이에게 절한다. 누군가에게 받는 관심은 즐거운 일이다. 길 가장자리의 흰병꽃나무가 흔들린다. 햇살이 드러나자 더 살가워지는 듯하다. 산새들의 지저귐이 봄의 활력을 더한다. 만개한 꽃물결이 파도처럼 넘실거린다. 산중 숲에는 연한 유록빛 물결이 흐른다.

지리산의 길과 시간은 언제나 동행한다. 어느 땐 시간이 멈춰버린 듯 길도 멈춘다. 숲이 생명 활동을 멈춘 듯 그저 아득하다. 둘레꾼의 몸과 마음도 더불어 침잠한다. 좇기는 내가 아닌 여유의 나를 발견한다. 내면이 평화로운 머무르는 나를 만난다. 두 발이 묵묵히 감당한 만큼이 시간이다. 걷는 이들이 경험할 수 있는 최대한이다.

수성대 초입의 물가에서 다리쉼을 한다. 다 쓰러진 간이 천막과 평상이 눈에 띈다. 무심코 바라본 기둥에 붙은 푯말을 본다. '식혜, 막걸리 한 잔, 2000원'을 알린다. 물소리의 반주에 실려 저절로 흘러간다. 길 위에 서보니 길과 시간이 정비례한다. 내가 들인 시간만큼만 앞으로 나아간다. 내 자신 지키는 수성대가 이름값을 한다.
자연과 나와 다정히 대화하는 시간이다. 푸른 봄이 머무는 지리산 수성계곡이다. 계절의 봄 마음의 봄이 온전히 자리한다. 멀고 힘든 길 끝에서 사람들을 맞이한다. 푸른 잎이 폭죽처럼 터진 꽃을 대신한다. 산과 들에서, 그늘과 양지에서 뒤바뀐다. 남쪽 북쪽에서 위아래서 일제히 바뀐다. 느닷없는 봄의 훈기가 계절 색을 바꾼다.

참나무 서어나무가 봄볕에 환히 빛난다. 우듬지마다 새싹들이 벌써 청록색이다. 소나무가 섬세한 봄의 서정을 보여준다. 여린 봄 색이 수채화처럼 깨끗하고 밝다. 봄날 풍경의 투명함과 맑음을 선사한다. 봄 속 자연에 부활의 기적을 펼쳐 보인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연신 변신 중이다. 조용한 기쁨과 평안으로 위로를 받는다.

봄 길을 걸어가는 둘레꾼들이 눈에 띈다. 스스로 봄객이 되어 행복하게 걸어간다. 길을 걷다가 나무에 손을 대보기도 한다. 차가웠던 나무에서 따뜻함이 느껴진다. 시간이 길수록 봄은 화사하고 향기롭다. 맑은 하늘의 구름도 살이 붙어 통통하다. 화려한 꽃잎들이 흩어지고 새들이 난다. 길을 걷는 둘레꾼들이 눈부시게 빛난다.

4월 숲 색이 찬란하고 아름답게 빛난다. 어느 참엔가 연두 빛이 녹색으로 바뀐다. 고요했던 숲이 산새 떼창으로 소란하다. 생명의 약동과 환희가 숲속에 범람한다. 가을까지 이어질 활기찬 환호가 기차다. 시간 따라 바뀌는 자연풍경이 경이롭다. 인간의 개입이 불가능할 정도로 빠르다. 둘레길의 어디든 푸른 빛깔이 넘쳐 난다.

둘레길 표지목

지리산 둘레길 3구간은 부담 없는 길이다. 천천히 걸으며 물 한 병만 있어도 족하다. 4월의 봄이 빠르게 둘레길을 꽉 채운다. 봄기운이 세를 몰아 산정까지 치고 간다. 상큼한 녹색이 회갈색과 잘 어우러진다. 날씨는 따뜻하고 하늘이 맑아 걷기 좋다. 운무 흩어지니 시원한 바람이 따라온다. 바람처럼 바람 따라 길처럼 길 따라 간다.

지리산엔 지금 봄빛 아래 녹비가 내린다. 휘감아 도는 나뭇잎 물결이 인상적이다. 신성한 기운이 깃든 나뭇잎이 휘날린다. 파란 하늘엔 하얀 뭉게구름이 흘러간다. 상큼한 바람결에 보드라운 봄이 깃든다. 불어온 바람이 새파란 파도를 실어온다. 산 아래에선 다랑이 논이 계단을 쌓는다. 빼놓을 수 없는 따사로운 지리의 봄이다.

장항마을 당산소나무

멀리 천왕봉이 웅장하게 기세를 올린다. 올록볼록한 봉우리가 주변을 에워싼다. 이제 핀 형형색색 꽃이 무리로 춤을 춘다. 걷는 시야를 가리지 않고 적당히 날린다. 때론 굴참나무가 줄지어 파랗게 흔든다. 바라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깨끗해진다. 발길 닿는 곳마다 눈앞이 바로 천국이다. 이래저래 천상화원에 들어선 기분이다.

바래봉은 새하얀 구름 지나는 길목이다. 천왕봉 서쪽 서늘한 바람이 부는 곳이다. 팔랑치 너머로 긴 구름떼가 피어오른다. 푸른 하늘 위 구름이 반야봉으로 흐른다. 투명한 청록의 쪽빛 남해 바다 못지않다. 하얗게 벚꽃 피는 지리의 봄은 더 그렇다. 정말 큰 위안인지 모른다면 무경험자다. 둘레길 3구간의 깊은 숲길은 큰 위안이다.

배너미재를 넘으니 숨찬 숲길이 끝난다. 지리산 자락의 탁 트인 정경이 보인다. 힘들게 고개 두개 넘으니 장항마을이다. 길옆 낙락장송의 위세가 예사롭지 않다. 당산 소나무가 듬직하게 지키고 서 있다. 마을 지켜 주는 신령이 깃든 당산나무다. 400년 수령 소나무가 위용을 드러낸다. 모진 풍상을 견뎌낸 당당함이 엿보인다.

당산소나무를 지나 길은 마을로 향한다. 숲길 끝자락에 있는 장항마을이 정겹다. 장성 이씨의 집성촌 장항(獐項)마을이다. 매년 지리산 배경으로 당산제를 지낸다. 장항마을의 옛날 흙담 길이 고즈넉하다. 담장 너머로 주민들의 일상이 펼쳐진다. 마을 너머로 바래봉 능선이 내려앉는다. 덕두산 산자락이 바래봉으로 이어진다.

중군마을 중군정

지리산 주능선 하늘 마루금이 여유롭다. 천왕봉은 성찰의 구심점으로 의연하다. 물 찬 다랑이 논에 지리산군이 반사된다. 하늘 지리산과 땅위 지리산이 대칭된다. 마음을 비추는 여유로움까지 선물한다. 자연과 문화가 아주 아름답게 어울린다. 둘레길을 걸으며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숲 생태계의 조화로운 구성을 체험한다.

수분을 충분히 머금은 꽃잎이 촉촉하다. 꽃잎 떨군 조팝나무가 봄기운에 물든다. 들녘은 아직 채도를 끌어 올리지 못한다. 마을은 다랑 논밭에 둘러싸여 여유롭다. 논둑길이 숲과 하천의 수계를 연결한다. 천왕봉 위로 4월의 아침 태양이 비춘다. 하천을 따라가며 고개를 넘어서 걷는다. 지리산 주능선을 바라보며 길을 잇는다.

봄 색의 변화를 맞는 감격이 새삼스럽다. 봄날 새소리는 푸른 숲에 운치를 더한다. 저 멀리 마을의 봄 풍경이 곱고 아름답다. 어떤 방해도 없이 따스한 햇살이 내린다. 어디를 가든 편안함이 덤으로 얹어진다. 마침내 수많은 걸음으로 길 끝에 이른다. 높은 하늘이 멀리 강물과 맞닿아 흐른다. 좀처럼 볼 수 없는 놀라운 광경을 펼친다.

실상사 돌솟대

멀리 하늘 마루금이 장엄하게 이어진다. 구릉 따라 올라온 다랑이논이 아름답다. 산자락을 따라 좁고 길게 농토를 만든다. 구불구불 거스름 없이 아주 자연스럽다. 인공미가 자연스런 풍경으로 다가온다. 오랜만에 다들 웃는 얼굴로 들떠 다닌다. 환상적인 분위기에 푹 빠져 힐링을 한다. 노 마스크로 흥겨운 봄날 난장을 즐긴다.

짧은 순간 숲길에서 얻은 깨달음이 크다. 소소한 작은 변화가 소중한 기회를 준다. 충북일보클린마운틴 회원들이 웃는다.

글·사진= 함우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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