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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 클린마운틴(비대면) - 경북 영양 죽파리 자작나무 숲

  • 웹출고시간2021.08.19 17:19:35
  • 최종수정2021.08.19 17:19:35

죽파리 자작나무 숲은 오지에 있다. 내륙이든 해안이든 산을 넘어야 한다. 이 숲은 흔치 않은 풍경을 연출한다. 계절마다 숲의 아름다움을 바꾼다. 훤칠한 키의 나무들이 멋스럽다. 귀한 나무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하얀 몸과 녹색 잎 조화가 신비롭다. 숲 사이로 점점 여름이 깊어져간다. 초록은 벌써 노란 가을을 기다린다. 누구나 친구 되고 연인 되는 숲이다. 검파리 숲이 국민 숲으로 거듭난다.

ⓒ 함우석 주필
[충북일보] 처서가 코앞에 있으니 더위가 한풀 꺾인다. 가끔은 소낙비가 무더위를 식혀주기도 한다. 그래도 푹푹 찌는 한낮 폭염은 여전히 강렬하다. 깊은 밤이나 이른 새벽이 돼야 서늘하다. 더웠던 몸을 찬물 샤워로 식히고 길을 나선다.

오전 6시 뿌연 안개 젖히고 청주를 떠난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으로 향한다. 수묵화 같던 새벽 풍경이 흐릿해진다. 두어 시간 넘게 달리니 해가 중천에 걸린다. 경북 영양군 수비면 죽파리 검마산 자락에 닿는다.

죽파리 마을을 다 지나면 차를 세워야 한다. 자작나무 숲까지 3.2km를 걸어야 한다. 다행히 영양군청 공무원의 도움으로 시간을 줄인다. 이어지는 계곡 감상은 차안에서 즐긴다. 가뭄이 계속돼 계곡물은 그리 많지 않다.

자작나무 숲길 안내판

ⓒ 함우석 주필
사륜구동으로 긴 계곡을 따라 오른다. 마침내 순백의 자작나무 숲이 나타난다. 눈앞에 펼쳐진 하얀 장관을 만난다. 늘씬한 자작나무들이 하늘로 향한다. 여름 숲이 내는 청량함이 더 없이 좋다. 검마산 자락에 숨은 하얀 보석함이다.

자작나무숲이 워낙 깊어 들머리까지 한참이다. 숲은 기대 이상으로 청정하고 아름답다.·잠시의 피곤함이 일순간 사라진다. 순백의 숲길이 환상적이다. 바람 소리가 나무 사이로 불어온다. 새소리가 숲을 따라 흘러간다.

미완의 길을 자박자박 느리게 걷는다. 바람 소리가 고요를 뚫고 달려 나온다. 새소리가 나뭇잎 소리와 조화롭다. 오롯이 때 묻지 않은 자연에 든다. 흐린 하늘 머리에 이고 열심히 달린다. 오지 감상에 빠질 무렵 하얀 숲을 만난다.

싱그러움과 우아함이 절로 넘쳐난다. 흰옷을 입은 나무들이 멋지게 도열한다. 앞에서도 옆에서도 온통 쭉쭉 뻗는다. 저마다 가지를 버리고 키 높이를 잰다. 한 여름 성장소리가 바람을 타고 흐른다. 매미소리가 응원가로 울린다.

자작나무 숲 체험 활동

ⓒ 함우석 주필
녹음 속이 불현듯 순백의 풍경이다. 뻗어 오른 수세가 후련하고 시원하다. 자작나무의 하얀 껍질이 곱게 빛난다. 깊은 산속에서 백옥 수피를 자랑한다. 우거진 숲의 그늘이 햇살을 가려준다. 여름과 겨울이 공존하듯 몽환적이다.

불어오는 바람을 한 모금 깊게 마신다. 얼마 지나지 않아 휴대전화 신호가 끊긴다. 삶을 짓누르던 무게를 벗어던진다. 빼곡히 들어찬 순백의 세상에 취한다. 명상하듯 걸으니 보약이 따로 없다. 여름 숲에 들어 비로소 얻은 귀한 선물이다.

서두를 것도 없고, 급할 것도 하나 없다. 그저 마음 가는 대로 발길 가면 된다. 싱그러운 향기를 따라 걸음을 옮기면 된다. 자작나무 잎이 내는 소리가 천상의 화음이다. 피부에 닿는 바람이 서늘하다. 진득한 눅눅함이 어느새 사라진다.

자작나무 숲속 참매미

ⓒ 함우석 주필
자작나무의 흰 수피가 제법 이국적이다. 맑은 초록색 이파리는 북쪽 풍경을 만들어낸다.·금방이라도 숲의 정령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똑같은 풍경에 카메라를 수없이 들이댄다. 그늘마저 초록빛으로 빛나는 시원한 숲길이다. 짙은 숲길에 일찌감치 가을이 당도한다. 숲의 공기가 점점 여름을 걷어내고 있다. 청량한 길섶에선 여름꽃과 가을꽃이 자리바꿈을 한다. 벌개미취가 마지막 울음으로 꽃을 피워 올린다. 작고 가냘픈 가을꽃들이 하나둘 피어난다.

끝없을 것만 같던 폭염이 누그러진다. 서늘한 바람이 자작나무숲을 지난다. 여름의 강을 건너 가을로 간다. 바람 끝이 서늘해 부르르 몸을 떤다. 하얀 나무들이 오후 햇살에 눈부시다. 여름을 건너가는 건 늘 새삼스럽다.

코로나19와 맞서 싸운 지 20개월이다.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부드러운 수피에 수많은 상처가 만져진다. 곧게 자라기 위해 떨군 가지의 흔적이다. 자작나무 상처는 세상을 보는 눈이다. 그 상처로 인해 더욱 성장한다.

자작나무 숲에 여름 햇살이 축복처럼 쏟아진다. 멧돼지가 뒹굴었던 흔적이 보인다. 산짐승들의 힘찬 근육이 떠오른다. 멧돼지의 기운이 몸 안으로 들어온다.·기지개를 켜고 긴 숨을 들이마신다. 청량한 기운이 몸속 가득 스며든다.

자작나무 숲속 모싯대꽃

ⓒ 함우석 주필
흰색과 초록의 풍광이 길게 이어진다. 그야말로 백(白)과 벽(碧), '백벽의 향연'이다. 초록의 잎사귀색이 숲을 더 아름답게 빚는다. 흰옷을 두른 나무들이 파노라마처럼 끝도 없다. 앞에도 옆에도 온통 쭉쭉 뻗은 하얀 기둥뿐이다.

자작나무의 하얀 수피는 누구든 감상에 빠지게 한다. 곳곳에 난 생채기 흔적은 더 신경 쓰이게 한다. 어떤 건 눈 꼬리가 긴 사람의 눈매 같다. 아래쪽에 붙은 가지를 스스로 떨어뜨려 생긴 상처다. '지흔'이라 불리는 상처 흔적이다.

상처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신기하다. 가지가 떨어져나간 자리는 검게 변한다. 주변으로 자글자글한 가로줄이 까맣게 생긴다. 하얀 얼굴에 마치 커다란 눈처럼 보인다. 기분 탓이지만 괜히 오싹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물론 자작나무숲의 백미(白眉)는 겨울이다. 하지만 여름도 겨울 못지않게 훌륭하다. 파란 이파리들이 가장 빛나는 건 여름 햇빛 아래서다. 청량한 여름 바람에 몸 터는 소리는 싱그럽다. 맨 먼저 드는 단풍에 가을도 더없이 좋다.

영양의 자작나무 숲이 날로 신비로워진다. 숲 사이로 오솔길이 두 갈래로 난다. 더 오라고 손짓하며 존재를 드러낸다. 길은 검마산 정상까지 길게 이어진다. 내뿜는 피톤치드가 청량감을 더한다. 어두운 원시림 속 말갛게 자란 숲이다.

나무와 바람, 풍경이 자꾸 말을 건다. 돌아서기 아쉬운 속 깊은 하얀 숲이다. 한 겨울 연인과 떠난 백석을 떠올린다. 응앙응앙 발걸음이 자꾸 더뎌진다.

자작나무 숲 사이로 난 임도

ⓒ 함우석 주필

<취재후기>죽파리 자작나무숲의 생성

경북 영양군 수비면 죽파리는 작은 산골 마을이다. 검마산 아래 40여 가구가 모여 산다. 대나무가 많아 죽파(竹坡)리다. 조선시대 보부상들이 정착하면서 개척한 마을이다. 인적이 드물기는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이곳에 명품 자작나무숲이 숨어 있다. 2020년 6월 국가지정 국유림 명품 숲에 지정됐다. 산림청이 대체 조림으로 심기 시작해 만든 인공 숲이다. 약 12만 그루의 자작나무가 자라고 있다. 청정 자연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자작나무 평균 수령은 30년이다. 나무의 평균 높이는 20m, 넓이는 30.6ha다. 크기로만 보면 강원 인제 원대리의 세 배 정도다. 솔잎혹파리 피해를 본 1993년부터 산림청이 조림에 나섰다. 대체조림이었지만 신의 한수였다.

숲에 들어서면 초록 잎이 머리 위를 뒤덮는다. 하얀 껍질이 산기슭을 가득 메운다. 그 사이로 아담한 오솔길이 갈래로 열린다. 자작나무 특유의 하얀 빛깔 덕에 색다른 분위기다. 오솔길은 누구나 어렵지 않게 오르내릴 수 있다. 자작나무는 자작자작 타는 소리에 그대로 이름이 됐다. 껍질에 기름기(유분)가 많아 불멍 하기에 최고다. 호롱불이 귀한 시절엔 촛불을 대신했다. 자작나무 화(樺) 촛불 촉(燭), 화촉의 유래이기도 하다. 신혼 첫날밤 '사랑의 불'이었다.

얇고 흰 껍질은 종이로, 화폭으로 사용됐다. 목질은 곧고 단단한데다 뒤틀림도 적다. 일부 팔만대장경과 도산서원 목판도 자작나무다. 지금껏 온전한 까닭도 잘 썩지 않는 유분 덕이다. 한방에서 화피(樺皮)는 동의보감에도 올랐다.

자작나무 껍질은 청열이습(淸熱利濕) 작용을 한다. 열을 내리고 습기를 없앤다. 거담지해(祛痰止咳) 효과도 있다. 가래와 기침을 멎게 한다고 했다. 충치를 예방한다는 자일리톨도 여기서 뽑았다. 북유럽에선 만병통치약으로 통했다.

죽파리 자작나무숲은 공식 개장 전이다. 영양군과 경북 남부지방산림청, 경북도 등이 함께 준비하고 있다. 2023년까지 주차장·안내센터·휴게실·체험장 등을 조성할 예정이다. 아직은 날 것 그대로에 반한 이들의 방문이 대부분이다.

죽파리 숲은 여전히 경이로움의 세상이다. 30년 넘도록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당연하다. 주변엔 100년을 족히 살았을 아름드리 금강소나무들이 있다. 호위무사처럼 숲을 에워싼 채 누구에게도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온 세상도 함께 가로막혔다. 사람들의 마음과 몸도 지쳐가고 있다. 그 때 자작나무의 새하얀 수피가 비로소 손짓했다. 하얀 얼굴의 까만 지문이 눈짓을 했다. 코로로19 지친 국민들에게 "여기로 오라"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 트레킹 마니아와 사진작가들의 방문이 잦다. 비대면, 언택트 관광지로 떠올랐다. 급기야 국토교통부 주관 '2020년 지역수요 맞춤지원 공모사업'에 힐링허브 조성사업지로 선정됐다. 28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된다.

영양군은 이곳에 숲 힐링센터, 숲 체험원, 에코로드 전기차 운영기반 등 산림휴양지 인프라 구축에 나선다. 지난해 6월 산림청은 이곳을 '여행하기 좋은 명품 숲'으로 선정했다. 죽파리 자작나무숲은 이제 '웰니스 산림관광지', '언택트 여행지' 등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붙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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