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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2015.11.05 14:39:51
백석이 사랑한 자야(子夜) 여사는 요정을 차려 번 거금으로 사찰을 세우기로 결심한다. 한 기자가 자야 여사에게 돈이 아깝지 않으냐고 묻는다. 자야 여사가 대답한다. 내가 가진 돈은 백석의 시 한 구절만 못하다고. 절을 다 완공시킨 법정 스님은 그 절을 떠난다. 낭만과 향기가 물씬 풍기는 이 이야기 속 백석의 시는 도대체 어떤 시였을까.

삶은 낭만적이었지만, 시는 독자성이 강한 형식 안에 진정성이 묻어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엮음의 문장구조, 토속적인 어휘, 수평적 사고, 지조 높은 역사의식, 따뜻한 공동체 정신이 돋보인다.

모닥불 밖의 현실은 차갑다. 차가움을 견디기 위해 모닥불을 피운다. 모닥불에 던져지는 질료들은 헌신짝 개이빨 막대꼬치 닭의 깃털과 같이 하찮은 것들이다. 낡고 달아서 쓸모 없는, 사람으로 치면 낮고 천해 보이는 하층 프롤레타리아이다. 이들이 몸을 태워 온기를 만들고 차가운 현실을 이겨내는 모티브로 작용한다.

해서 다음 연(聯) 모닥불 주위에 모여 불을 쬐는 군상(群像)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가문 어른도, 주인도, 더부살이 아이도, 나그네도, 땜쟁이도, 강아지도 함께 불을 쬔다. 모닥불을 가운데 두고 원을 이룬 모두에게 똑 같은 온기를 분배받는다. 상하 차별이 없고 심지어 동물들과도 수평적 관계를 가진다. 평소에는 하찮고 비루해 보이는 사람들이 살신성인(殺身成仁)으로 시련을 이겨낸 그 정신의 혜택은 계급을 초월한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혜택을 입는다는 의미이다.

여기까지 추상적으로 흘러왔던 논리는 마지막 연에 와서 구체적인 논리로 귀결된다. 모닥불을 구성하는 하찮은 질료들이나 모닥불을 쬐는 군상들이 불구가 된 할아버지의 슬픈 역사에 겹쳐지며 하나의 의미로 통합된다. 외세에 의해 상처 입은 할아버지로 상징되는 민족적 현실을 냉철히 바라보자는 참된 역사의식의 일깨움이다.

사랑이 힘이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다운지. 시 한 구절의 가치에 담긴 사랑도 아름답고, 내가 짓고도 주인임을 포기하고 홀연히 떠난 절대자에 대한 사랑도 아름답고, 하잘 것 없어 보이는 이들이 역사의 주인이라는 시정신도 참 아름답다.

/ 권희돈 시인

모닥불 / 백석(1912 - 1996)

새끼 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잎도

머리카락도 헝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짓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 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 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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