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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여름의 추억 - "그해, 8월의 창골"

  • 웹출고시간2015.08.20 13:06:08
  • 최종수정2015.08.20 13:06:07
연일, 폭염에 열대야를 예보하고 있다. 일 년 중에서 가장 더운 8월이다. 창골로 가는 길 옆 냇가를 따라 길게 이어지는 버드나무 숲 매미소리가 파란 하늘로 요란하게 울려퍼진다. 띄엄띄엄 하얀 뭉게구름이 흘러가는 한낮의 여름은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후텁지근하다. 실로 25년 만에 나는 이곳 웃 창골을 다시 찾아왔다.

8월은 우리 역사에도, 가장 더운 달이다 라는 생각에 잠겨본다. 숨 막히게 비통한 슬픔이 있고, 그런가하면 용솟음치는 뜨거운 기쁨도 있는 달이 바로 8월이다.

우리 겨레가 왜적에게 쇠사슬에 묶여 노예가 되어 나라가 망한 날이 8월 29일이고, 그 노예의 사슬을 끊고 풀려난 해방의 날이 바로 8월 15일 광복절이다.

25년 전 나는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딸을 데리고 이곳 창골을 찾아왔었다. 이 동네에 나라가 망했을 때 비통한 나머지 곡기를 끊고 단식을 하다가 돌아가신 분의 집터가 있다는 얘기를 수소문하여 듣고 찾아나섰던 것이다.

그 분은 의당 박세화(朴世和) 선생(1834~1910)이다. 선생은 19세기 말엽 제천 충주 음성 일대에서 많은 제자들을 가르쳐왔던 명망 높은 학자였다. 이미 제자들과 함께 월악산 일대에서 왜적을 몰아내야한다고 하면서 의병을 일으켰던 분이었다.

음성 만생산 자락 창골[창동]에서 많은 제자를 가르치고 있던 선생은 나라가 망했다고 하는 비보를 듣고는 바로 의연하고도 엄숙한 자결(自決)을 다짐하게 된다. 제자들은 선생의 문집 <의당집>에 그 과정을 날짜별로 기록하여 오늘에 전하고 있다.

'8월 1일 선생은 사당에 참배하면서 나라가 망했으니, 소자는 어찌해야하겠습니까 하면서 대성통곡하다. 8월 2일 자신을 찾아온 제자에게, 하루라도 구차하게 살수없다고 하면서 그 이튿날부터 곡기를 일체 끊다. 8월 6일(단식 4일째) 식사를 권하는 아들에게, 내가 지금 죽으려하는 것은 살려는 것보다 더 중한 것이니 더 이상 권하지 말라고 타이르다. 8월 8일(단식 6일째) 수제자가 스승의 손을 잡고 통곡하며 차마 떠나지 못하자, 이별의 칠언시를 써주다. 밝은 달 맑은 바람(光風霽月)은 어디에 있는가, 요사한 기운이 너무 심하구나. 8월 11일(단식 9일째) 예절과 의리가 밝은 우리나라가 왜적 때문에 망했으니 슬프다. 차마 말조차 못하겠다고 하면서 큰 글씨 '예의조선(禮義朝鮮)' 네 글자를 쓰다. 8월 16일(단식 14일째) 살기를 권하는 제자에게 한 번도 살고 싶다는 유혹을 받은 적이 없다고 밝히다. 8월 17일(단식 15일째)까지 제자 가르치기를 그치지 않았던 선생은 19일(단식 17일째)에는 기력이 쇠진해 물으면 턱만 끄덕이다. 8월 26일(단식 24일째) 마지막으로 집안 부녀자들을 만나본 뒤, 28일(단식 26일째) 아침 8시쯤 조용히 숨을 거두다.'

25년이라는 세월은 창골에도 많은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다. 선생께서 묻혔던 묘소가 있던 산자락은 콜프장으로 변하여 고급 승용차들이 드나들고 있다. 좁고 흙먼지 날리던 외진 산골짜기 길은 반듯한 포장도로가 되어 뻥 뚫려있다. 동네 몇 몇 분들에게 선생에 대하여 물어보아도 별반 아는 이가 없다. 어떤 이는 글쎄 예전에 박선생이라는 이가 굶어죽었다는 얘기는 얼핏 들은 것도 같다고 하였다.

긴가민가 전설이 되어간다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선생께서 장엄하게 생을 마감하였던 집터는 별로 변하지않고 그대로 있었다. 뙤약볕에 고구마와 옥수수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이 밭이 선생께서 마지막으로 숨을 거두었던 초가삼간 집이 있던 곳이네 라고 지목하여 주었던 아랫 창골의 한학자 김재선 옹도 벌써 고인이 되었다.

25년 만에 겨우 한번 찾아온 나는 그곳 땡볕의 밭 한가운데에서 왠지 매우 죄송함을 느꼈다. '의당 박세화 선생 순절(국) 유허지' 라는 자그마한 석비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는 이 시대가 부끄럽다고 생각하였다.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차창을 내린다. 매미소리에 뒤섞여서 선생과 제자의 문답이 들리는 듯하다.

단식 5일째 되던 날 제자가 선생께 안타깝게 물었다. 선생님께서 돌아가시면 소생들은 어디에 의지하오리까. 선생께서 대답한다. 백 년의 먼 시간으로 떨어져 있다고 하여도 서로 통하는 것은 마음이니, 마음이 있으면 서로 통할 것이니 생사(生死)가 다르다고 어찌 한스러움이 있겠느냐. 선생께서 순절(국)한지 백년도 더 지났다. 나라가 망하던 그 해 8월, 음성 창골에서 곡기를 끊고 나라에 목숨을 바친 선생의 마음을 가슴 깊이 헤아려본다. 무더운 8월에 우리에게 주는 뜨거운 역사의 교훈을 생각하여본다.

◇ 최재우 수필가

-충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교실

-푸른솔문학신인상(수필등단)

-전국문화원연합회 주관, 향토사 논문대회 대상(1991)

-제1회 충대수필문학상 대상(2014)

-중고등학교 교장 정년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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