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동굴 속에 갇히고 싶은 욕망이 있답니다. 아마 동굴이 우리의 원체험의 공간이기 때문인가봐요. 혼자 갇히는 것보다는 둘이 갇히면 좋겠지요. 사랑하는 사람과 단 둘이 갇히면 더욱 좋겠지요. 수수깡 움집에서 비를 피하는 소설 <소나기>의 소년소녀가 우리들의 어린 시절 얘기가 아니었던가요.
지금도 그런 꿈을 남아 있지 않나요· 땅콩 껍질처럼 작은 동굴에 갇혀 둘이만 들을 수 있는 사랑노래를 부르고 싶지는 않은가요.
꽃가루 속에 숨어서 부르는 소리를 듣고 마구 달리고 싶지 않은가요. 그런 행복한 꿈 아직도 가슴 저 밑바닥에 숨죽이고 있지 않은가요.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작아지지요. 꽃가루 속에 숨을 만큼 작아지지요. 작아지고 작아져서 마침내는 자신의 존재를 잊어버리게 되지요.
아, 그런데 지금은 자신이 너무 변해버렸어요. 몸집은 커지고 마음은 딱딱해졌어요. 누구를 보아도 상대가 크게 보이지 않아요. 아주 왜소하게만 보이죠. 사랑하는 마음을 상실헀기 때문이 아닐까요·
다시 꽃가루 속에 들어가려면 참 많이 버려야 할 것 같아요. 제일 먼저 버려야 할 게 욕망인 것 같아요. 대부분 꿈으로 착각하는 욕망을 버리면 꽃가루 속에 들어가는 길이 보일 거예요.
/ 권희돈 시인
꽃가루 속에 / 이용악(1914 - 1971)

배추밭 이랑을 노오란 배추꽃 이랑을
숨 가쁘게 마구 웃으며 달리는 것은
어디서 네가 나직이 부르기 때문에
배추꽃 속에 살며시 흩어놓은 꽃가루 속에
나도야 숨어서 너를 부르고 싶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