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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08.16 17:36:19
  • 최종수정2023.08.16 17:36:19

이정균

시사평론가

보은군 속리산 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정이품송의 가지 2개가 지난 10일 태풍 카눈의 영향으로 부러져 매달려 있다가 절단조치 됐다. 정이품송은 600살 나이에 높이 14.5m, 가슴높이 둘레 4.77m이며 1962년 천연기념물 103호로 지정된 명품 소나무인데 갈수록 단아한 옛 모습을 찾을 수 없어 안타깝다. 원래 원추형이던 정이품송의 우아한 자태는 1980년대 중부지방을 휩쓴 솔잎혹파리로 인해 죽을 고비를 맞았으나 10년 가까이 방충망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났다. 하지만 이로 인해 수세가 약해져 태풍과 폭설에 거듭 가지가 부러지는 수난을 당해 원형이 크게 훼손된 상태다.

*** 우아한 자태 훼손

현재의 정이품송은 무게중심을 잃고 한쪽으로 기우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러울 정도이며 당당했던 기품을 영영 볼 수 없게 되었다. 수령 600년에서 800년에 이르는 노쇠한 소나무인데다가 기상이변이 심해지는 현상으로 미루어 앞으로도 정이품송이 겪어야 할 고난의 시기를 피할 수 없어 걱정을 더하게 된다.

정이품송은 1464년 2월 속리산 법주사로 행차하던 세조 임금의 어가 행렬이 나뭇가지에 걸리지 않도록 나무 스스로 가지를 번쩍 들어 올렸고 이를 가상히 여긴 세조가 정이품 벼슬을 내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정이품송은 역사성과 스토리텔링에다가 아름다운 자태까지 더해 기나긴 세월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해마다 겨울의 초입이 되면 하얀 첫 눈을 뒤집어 써 고고하고 신비로운 정이품송 사진을 감상하며 겨울이 왔음을 느끼는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또 정이품송은 왕실과 정부의 보호를 받아 600년 간 잘 보전돼 왔기 때문에 한반도의 고중세 생물유전자원으로의 가치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정이품송은 2001년 7월 '최초로 결혼식을 올린 소나무'로서 나무에 영혼을 불어 넣고 인격을 부여하는 자연사랑의 극치로 인정해 그 아름다움을 오래도록 기록으로 남기자는 취지에서 한국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산림청이 주요 천연기념물 혈통보존사업의 일환으로 온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천연기념물인 정이품송(신랑목)과 소나무 숲이 아름답고 역사적 의미를 지닌 강원도 삼척 준경릉의 뛰어난 소나무(신부목) 한 그루를 배필로 송홧가루 날리는 2001년 5월 혼례식을 치른 후 나무의 혼례인 가루받이를 하여 성사가 됐다.

정이품송은 오랫동안 충북도를 나타내는 대표적 상징물 역할을 했고 지금도 이를 능가할 대체물이 없다고 본다. 예전에 전국 모든 시·도가 참가하는 전국체전이나 여타 행사가 열리는 개회식에 충북대표가 입장할 때면 배경화면에 늘 정이품송이 등장하곤 했다. 다른 지역에 충북을 소개할 때도 정이품송 문양이 곧 충북이었다. 충북도민에게 정이품송은 천연기념물 이상의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런 정이품송의 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보은군, 충북도, 산림청, 문화재청 등이 나서 다각도로 애쓰고는 있는데 정이품송이 자꾸 수난을 당하니 후계 사업 효과가 어떤지 새삼 궁금해진다. 삼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은 2001년 정이품송의 혈통 보존을 위해 전국에서 가장 우수한 소나무로 선정된 강원도 삼척 준경릉의 소나무와 정이품송을 인공수정(혼례) 하여 2003년 장자목 58그루를 생산했고 청와대, 국회의사당, 국기기록원 등 전국 곳곳에 분양, 식재한 상태다.

*** 천연기념물 이상의 가치

충북산림환경연구소가 1998년 정이품송에서 채취한 솔방울을 발아시켜 종자를 파종해 키운 후계목들은 청남대, 보은 속리산 정이품송 근처 후계목 공원, 청주 삼일공원, 세종시 신청사 등에 심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충북산림환경연구소는 2003년 정이품송의 꽃가루를 정이품송의 정부인송(貞夫人松)이라 불리는 보은군 장안면 서원리 소나무(천연기념물 352호)와 교배한 자목을 청주시 미원면 미동산수목원 양묘장에서 키웠다. 보은군은 장안면 양묘장 2곳에서 정이품송 자목 1만여 그루, 정부인송 후계목 1만1천 그루를 키워 일부를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2020년부터 일반과 공공기관에 분양했다고 한다. 이처럼 다양한 시도들이 빛을 발하면 좋겠다.

소나무 사랑이 각별한 우리나라에서 정이품송처럼 오랜 기간 동안 많은 국민들의 찐 사랑을 받아 온 나무도 달리 없을 것이다. 후계목 사업의 지속적 노력도 필요하지만 비록 쇠약해져 갈지언정 살아있는 정이품송을 오래오래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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