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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08.02 16:36:37
  • 최종수정2023.08.02 16:36:37

이정균

시사평론가

<동진강명칭복원공동추진위원회>라는 단체가 있다. 2022년 1월 충북 운초문화재단(이사장 류귀현)과 세종특별자치시문화원(원장 임창철)이 공동으로 구성한 단체이며 "미호강은 동진강이어야 한다"는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미호천을 미호강으로 승격한 2022년 7월 이전부터 결의대회, 기자회견, 학술토론회 등을 열어 명칭복원을 촉구했고 대통령실, 환경부, 충북도, 충북도의회 등에도 미호강을 동진강으로 복원해 달라는 청원을 낸 바 있다.

*** 미호천은 일제의 창지개명

"미호강은 동진강이어야 한다"는 <동진강명칭복원공동추진위원회>의 주장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 미호천(美湖川)이라는 지명은 우리나라 각종 문헌과 고지도, 그리고 고지도 분야의 최고 전문학자의 고증을 통하여 충북과 세종을 지나는 큰 물줄기인 동진강(東津江)을 일제가 식민지 정책에 따라 미호천으로 창지개명 한 것이다. 둘, 그러나 2022년 7월 미호천을 강으로 승격하는 과정에서는 지명과 관련한 역사성을 살피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미호천을 미호강으로 변경한 관계기관의 행정행위는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셋,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 않으나 충청북도를 비롯한 관계기관은 이제라도 미호강이 아니라 동진강으로 복원하여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역사를 바로 세워 민족정기를 되살리는 길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동진강명칭복원공동추진위원회>는 1900년 이전에는 현존하는 문헌 및 고지도 어디에도 미호(美湖)라는 지명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단지 1913년부터 일제가 전국을 대상으로 조사·작성한 조선지지 자료에 청주군 지역에서 다양하게 불리어 지던 고유지명이 사라지고 미호천(美湖川)으로 기록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914년에는 일제 조선총독부가 여러 이름으로 불리던 하천명을 한가지로 통일하여 보고하도록 각 시·도에 통첩했고 1918년 1만분의 1 지형도에도 미호천으로 표기되면서 1920년 50만분의 1 충북지형도, 1927년 조선총독부 관보 조선하천령등에도 미호천으로 명칭이 굳어지게 되었다. 미호천은 일제가 식민지 지배체제를 강화하고 원활한 토지 수탈을 위해 만들어 낸 지명일 뿐이다.

반면에 <동진강명칭복원공동추진위원회>는 미호천의 원래 명칭이 동진강이었다는 고문헌, 고지도, 문집 등의 자료가 다수 존재한다는 점을 근거로 "미호강은 동진강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선전기 지리지의 집성편이며 조선 전기 사회를 이해하는데 필수불가결한 고전으로 꼽히는 고문헌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에 "동진(東津)은 연기현의 동쪽 5리에 있다. 그 근원은 셋인데 하나는 진천현 두타산에서 나오고, 하나는 청주의 적현에서 나오며, 하나는 전의현에서 나온다. 남쪽으로 흘러 공주의 금강으로 들어간다"고 기록돼 있다.

이 밖에도 동국문헌비고(1770년), 해동역사(1820년), 대동지지(1861년~1866년), 대한지지(1899년 초판발간, 1906년 재판발간), 증보문헌비고(1903년~1908년) 등의 고문헌에 동진강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이 가운데 대동지지는 고산자 김정호의 저술이고, 대한지지는 대한제국 정부가 발간한 공식 교과서이며, 증보문헌비고는 고종의 명에 따라 홍문관이 상고 이래 대한제국에 이르기까지의 문물제도를 총망라하여 출간한 책이다. 동진강은 이처럼 공신력 갖춘 역사적 문헌에 명확히 기록돼 있다.

동진강은 해좌전도(1850년), 동여도(1856년~1861년), 지방지도(1872년), 대조선국전도(1895년) 등의 고지도에도 표기돼 있고 조선 후기 일본에서 만들어진 육군성지도(일본, 1875년), 조선전도(일본, 1882년)에도 미호천이 아니라 동진강으로 표기돼 있다.

*** 역사적 근거 충분한 동진강

동진강이라는 기록은 조선시대의 유명한 문집인 사계전서(沙溪全書)와 동춘당집(同春堂集)에도 나온다. 사계전서는 조선의 학자 사계 김장생의 시가와 산문을 1687년에, 동춘당집은 학자 송준길의 시가와 산문을 1680년에 각각 숙종의 왕명에 의하여 그들의 문인인 우암 송시열이 편집·교열하여 간행했다. 이들 문집에 따르면 동진강은 1680년 이전부터 널리 쓰이던 명칭이었다.

<동진강명칭복원공동추진위원회>의 주장과 활동이 주목받아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우리 선조들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고문헌, 고지도, 문집의 곳곳에 분명히 동진강으로 기록·표기돼 있음에도 언제까지 일제 잔재인 미호강이라 불러야 하는가.

"미호강은 동진강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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