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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6.01.14 11:00:00
  • 최종수정2016.01.27 09:46:59
살짝 탄 껍질을 벗기면 뜨거운 김과 함께 노란 속살을 드러내는 간식이 있다. 겨울철 별미, 군고구마다.
손이 곱을 것처럼 추운 겨울날, 군고구마 봉지는 손난로를 대신했다. 김장김치를 척 얹어 먹거나 동치미 국물과 들이켜면 한 끼 식사로도 훌륭했다.
골목 어귀에서 겨울을 알리며 지나가는 이들의 발걸음을 붙잡았던 군고구마통. 이젠 사라져 가는 기억 속의 풍경이 되고 있다.
청주 도심에서 만난 군고구마통이 반가웠던 건 그런 이유였다.
1인칭 진솔·공감·힐링 프로젝트 '마이 리틀 샵' 이번 편은 용담광장에서 군고구마를 팔고 있는 한준(19·금천고) 학생 얘기를 들어봤다.
마이리틀샵 - 93. 청주 용담동 '준고구마' 한준 대표

청주 용담광장에서 2년째 군고구마를 판매하고 있는 한준 학생이 인터뷰를 마치고 자신의 군고구마통 일명 '준고구마'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김지훈기자
[충북일보=청주] "영업 첫날. 대박을 쳤어요. 별생각 없이 구매한 고구마 일곱 박스를 몽땅 팔아치웠거든요. 덕분에 군고구마 기계를 사기 위해 외삼촌에게 빌린 돈 전부를 하루 만에 갚을 수 있었죠. 이게 다 제가 쌓아온 은덕(?) 때문이라고 생각돼요.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항상 이곳에서 했거든요. 몸담았던 가게의 사장님부터 단골까지 '준 고구마'를 외면하지 않으신 거죠."

"아버지는 복싱 선수셨어요. 제가 운동하는 걸 원치 않으셨죠. 그래도 체육 쪽으로 진로를 잡았어요. 대학 등록금은 제가 책임지기로 했거든요. 그동안 돈을 모으려 배달이나 서빙 같은 아르바이트를 많이 해봤지만, 적성도 안 맞고 돈도 안 모였어요. 그러다 우연히 군고구마 수익률이 쏠쏠하단 블로그 글을 발견했죠. 이거다 싶더라고요. 그때부터 겨울방학이 되면 이곳에 나와 군고구마를 팔기 시작했어요."

청주 용담광장에서 2년째 군고구마를 판매하고 있는 한준 학생이 자신의 군고구마통 일명 '준고구마'에서 다 구워진 고구마를 꺼내고 있다.

ⓒ 김지훈기자
"추운 게 가장 무서워요. 고구마를 팔다가 '얼어 죽는 게 이런 거구나'하고 느낀 적이 많았거든요. 하지만 내복은 거들떠보지 않았어요. 남자답지 않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다 한 달 전 생애 첫 내복을 영접했어요. 입지않겠다던 고집이 꺾인 이유는 그 내복을 여자친구가 사줬기 때문이에요. 달리 도리가 없었던 거죠. 일단 명분이 분명하잖아요. 내복 입었다는 놀림에 핑계도 되기 쉽고. (웃음) 이를 계기로 상남자 고정관념에 갖혀 미련한 고집을 부리던 제 자신을 반성하게 됐어요. 내복을 입고서 겨울을 보낸다는 건 정말 신세계니까요."

"눈이 펑펑 오던 어느 날 밤. 군고구마를 팔기 위해 아무도 없는 광장 한복판에서 오랫동안 서 있던 적이 있어요. 내가 좋아서 선택한 일이지만, 그땐 참 쓸쓸하더라고요. 맘이 시리니 몸도 이내 추워졌어요. 머리 속엔 온통 빨리 집에 들어 가고 싶단 생각 뿐이었고요."

"군고구마 통 쪽은 참 따뜻해요. 저온화상에 걸릴만큼요. 문제는 반대편 부위에요. 언제나 얼어터지기 일보 직전이니까요. 체내 온도의 '부익부 빈익빈'이 내 몸 안에서 벌어지는 거죠. 그래도 구세주 같은 '핫팩'에 기댈 수 있어서 다행이예요. 이건 비밀인데, 겨드랑이와 발바닥에 붙이면 효과 만점이에요. 길거리 겨울을 보내는 사람의 실용적인 노하우에요. 한 번 믿어 보세요."

-청주 용담광장에서 2년째 군고구마를 판매하고 있는 한준 학생이 인터뷰를 마치고 자신의 군고구마통 일명 '준고구마'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김지훈기자
"광장에서 종종 뵈는 노숙자 한 분이 계세요. 안쓰러운 마음에 고구마를 건넨 적도 있고, 집에 일찍 가고 싶은 날이면 남아 있는 고구마를 몽땅 드린 적도 있어요. 그러면 스스로에게 항상 뿌듯했으니까요. 그런데 그분이 제게 먹을 걸 건네더라고요. 저 뿐만 아니라 광장 모든 노점상들에게 자신의 것을 나눠주었어요. 참 부끄러웠어요. 그 분은 진심으로 자신의 것을 나누고 싶어하는 기운이 느껴졌으니까요. 스스로에게라도 생색냈던 제 감정과는 다른 진짜 마음이요."

"광장에 사람이 적당히 모였다 싶으면 고구마를 꺼내 들어 먹어요. 준고구마의 유일한 마케팅 수단인 거죠. 배고파서 먹을 때도 있다는 게 함정이지만… 모락모락 피어나는 뜨거운 김 사이로 후후 불어 먹는 게 핵심이에요. 노란 속살을 내보이는 것도 포인트고요. 달달한 군고구마 향에 비주얼 자극이 합쳐지면 정말 강력한 필살기가 되거든요. 주변 사람들이 순식간에 손님으로 변해 제게로 몰려들어요. (웃음) 사실 예전부터 고구마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군고구마를 팔다보니 고구마의 참맛을 알게 된 거죠."

-청주 용담광장에서 2년째 군고구마를 판매하고 있는 한준 학생이 인터뷰를 마치고 자신의 군고구마통 일명 '준고구마'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김지훈기자
"밤 10시경이 피크타임이에요. 술 한 잔 걸친 아저씨들은 빈손으로 집에 들어가질 않거든요. (웃음) 어떤 분들은 젊은 나이에 기특하다며 용돈까지 꼭 쥐어주세요. 그런 분들은 한결같이 '나도 예전에 이거 해봤어'라며 말문을 여시죠. 그럴 때마다 맘이 묘해져요. 제게 했던 칭찬과 격려가 어쩌면 제가 아닌 과거의 자기 자신일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드니까요. 어쨌든 고마워요. 기분도 좋고. 그런데 놀랍기도 해요. 세상에 그렇게 많은 분들이 군고구마 장사를 했다는 게요."

"청주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도시라고 생각했어요. 얼마 전 서울에 가기 전 까지는요. 서울이 참 좋더라고요. 지하철도 재밌고, 건물도 크고요.(웃음) 그런데 좀 무섭기도 했어요. 위치를 물어도 대답해 주는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어쩔 줄을 몰라하던 순간 어떤 사람이 뜬금없이 천원만 달라고 하더라고요. 거절했죠. 그랬더니 지갑을 보여달래요. 그래서 순순히 열어 보였는데 재빨리 지갑 속 만원을 꺼내들고 달아났어요. 누가 그런 일을 상상이나 했겠냐고요. 하아, 서울이 그런 곳인 줄이야."

/김지훈·김희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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