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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4.12.23 14:44:50
  • 최종수정2024.12.23 14:44:50

구본숙

미술평론가·수필가

조선 시대는 유교 사상을 기반으로 한 시대로 여성으로서 꿈을 펼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그러나 신사임당(1504~1551)의 아버지 신명화는 딸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보고 교육에 힘썼다. 7세부터 미술을 가르쳤으며, 조선 왕실에서 구해온 귀한 작품을 딸에게 보여주고 그려보도록 했다. 특히 조선전기 화가 안견의 작품을 가져와 그리도록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작품이 찢기거나 손상될 우려도 있었겠지만 어린 딸을 믿고 교육에 도움이 되고자 했다.

신사임당은 다양한 그림을 보고 그리며 실력을 쌓아갔다. 미술교육에 있어 모작은 관찰력과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다른 사람의 작품을 보고 그리며 타인과 자신의 생각을 비교하는 능력도 배양된다. 신사임당은 모작을 통해 실력을 쌓아나갔으며, 긴 시간 쌓은 실력을 바탕으로 개성을 지닌 작품이 탄생하기에 이른다.

출가외인(出嫁外人)이라 하여 조선 시대는 여성이 결혼하면 남편의 집에서 사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신사임당의 집안에서는 반대로 사위를 집안으로 들였다. 19세에 남편 이원수와 결혼하여 4남 3녀를 출산했다. 오늘날로 비유하자면 출산과 육아를 친정에서 도움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다자녀를 출산하였음에도 그림에 시간을 더 투자할 수 있는 이유이다. 출산과 양육으로 말미암아 여성의 사회적 성공은 누군가의 도움이 따른다. 그 역할이 친정이 될 수 있고 남편이 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현모양처이자 여류화가로 화자 되는 만큼 자녀를 양육하며 남편의 학업에 충실히 도움을 주었으며 자신의 그림도 게을리하지 않은 알찬 삶을 살았다. 삶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과 더불어 스스로 실력과 노력도 갖추고 있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조선 시대 여류화가로는 신사임당이 유일무이하다.

신사임당의 작품은 색감이 단정하고 구도가 조화롭다. 5만 원권 화폐를 통해 작품을 가까이 감상할 수 있다. 지폐의 앞면에는 간송미술관 소장 '묵포도도'와 동아대학교 박물관 소장 '초충도 수병'이 표현되었다. 당시의 화풍은 도화서를 중심으로 한 산수화가 주를 이루었다. 중국회화의 영향을 바탕으로 조선 시대의 독자적인 산수화 양식이 발달하던 시기였다. 대표적인 예로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있다. 그러나 신사임당은 주류를 따르지 않았다.

도화서에서 그려지던 산수화 양식보다 일상 속에서 볼 수 있는 포도와 풀벌레 등을 주제로 한 그림을 그렸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따스한 시각으로 관찰하고 대상의 특성을 파악하여 얇고 매끄러운 붓 터치로 그려진 그림은 화면 안에서 조화로운 구도를 이룬다.

신사임당의 작품들은 시간이 지나서도 큰 사랑을 받으며 수를 놓는 초안이나 민화의 주제로 재탄생 되었다. 외곽선이 깔끔하고 명확하게 표현되었고 다른 영역으로 접목하기에 이질감이 없는 보편적인 미의식이 내재 되었기 때문이다. 어숙권의 『패관잡기』 에서는 안견 다음으로 가는 화가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녀의 작품은 숙종에게도 전해져 큰 칭송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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