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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4.04.22 13:55:22
  • 최종수정2024.04.22 13:55:22

구본숙

미술평론가·수필가

미술 관련 외부 강의를 하고 있다. 비교적 오랫동안 해 온 일이지만, 수강생 앞에서 실수 없이 해내야 한다는 긴장감에 강의 전부터 촉각이 곤두선다. 항상 빈틈없이 연습하지만, 강의 현장 상황과 수강생의 반응 여부에 따라 준비해 온 것을 완전히 발휘하지 못할 때도 있고 준비해 온 것과 조금 다르게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행여 실수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에 여과 없이 내보내지는 생방송과도 같은 예민한 느낌이다. 완벽함을 기하지 말자는 다짐도 해 본다. 그러나 수강생들을 생각하면 항상 준비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더 앞선다.

미술을 어린 시절부터 해서인지 앞치마나 작업복을 입고 방해받지 않는 혼자만의 작업이 편하다. 온전한 몰입이 가능하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이다. 스스로가 성장하는 느낌도 든다. 무엇보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없어 마음이 편하다. 이 시간만큼은 아무런 걱정 없이 행복하다. 그러나 모든 예술가가 자신의 작업에만 치중할 수는 없다.

그 접점에 실기교육이 있다. 강단에서 강의할 때 보다 자유롭지만, 온전한 개인 작업의 시간보다 보다는 더욱 신경을 써야 하고 가르침을 전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다. 학생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일인데, 각자 개성이 다른 다양한 학생을 접하게 된다. 또, 실력이 좋은 학생들의 그림을 봐 줄 때면 따로 연습하지 않아도 강사로서의 실기교육 능력이 늘어난다. 교육현장은 서로에게 이점이 있다.

어느 날, 고개를 숙이고 긴 머리카락으로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도록 가리며 그림을 그리는 학생이 있었다. 왜 그렇게 그림을 그리는지 물어보니 부끄러워서 그렇다고 답한다. 미술을 잘 하는 학생들의 경우 어린 시절부터 해 온 경우가 많은데 중학생이 되어 그림을 처음 배우게 되었다는 학생의 말을 들으니 그 부끄러움이 이해가 갔다. 그 학생은 초등학생이 그려야 할 그림을 지금 그리고 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즐겁게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던 것이다.

모두가 즐거운데 혼자만 서러운 그 기분은 나도 잘 안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그것을 경험하는 그 학생이 안쓰러웠다. 그래도 그 학생은 그림을 배우지 않는 것보다 시간이 지나면 배우는 것이 훨씬 가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다소 과하게 박수를 치면서 온 마음을 다해 칭찬해 주었다. 다만 늦게 시작해서 진도가 늦을 뿐, 감각이 뛰어나서 금방 실력이 늘 것이라는 말을 해 주었다. 같이 그림을 그리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 학생이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며칠 뒤, 그 학생은 머리카락으로 그림을 가리지 않고 그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의 따스한 칭찬에 용기를 얻었고 내가 오기를 기다린다고 한다. 잘 가르치는 것보다 학생을 이해해 주는 것이 시작하는 단계에서 더 중요하다. 늦게 그림을 배우는 경우, 그 과정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가 극복하기 나름이지만 주위의 따스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희망과 용기가 되곤 한다. 특히 교육에 있어 더욱 그렇다. 나 역시 칭찬을 받았던 기억은 오랫동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어떤 상황에서도 힘과 용기의 원천이 된다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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